▲ 조은경 작가

외국 여행을 마치고 오랜만에 영천 집으로 돌아왔다. 영천에서 살기 시작한 뒤 제일 먼저 느끼기 시작한 것은 집으로 방향을 잡기 시작하면 발걸음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빨리 가고 싶은 곳, 그곳이 영천이 되었다. 배추는 튼실하게 자라고 있고 가운데에는 결구까지 되고 있다. 사람들이 끈으로 매어주어야 한다느니 말들을 할 정도로 큰 덩치가 되었다. 대구에 사는 친구와 전화하다 보니 지금쯤 매어 주는 게 알이 차는데 좋다고 한다. 그래 큰 놈은 매 주기로 했다. 형님한테 짚을 얻어서 매어 주는데 옛날부터 여러 용도로 쓰인 짚이 정말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게 부러지거나 꺾어지지 않는 탄력성으로 초가집 지붕이며 짚신 등에 얼마나 많이 쓰였던가.
농촌의 일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에 감나무가 둘 있는데 한 나무는 감이 거의 안 열려서 처음엔 감나무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딱 두 개 열렸다. 대조적으로 다른 나무는 빨간 감을 가득 매달고 있다. 옆집 분들이 감을 다 딴 후 긴 장대 두 종류를 빌려주었다. 대나무로 만든 전통식 장대보다 알루미늄으로 된 3단 작대가 더 유용한 것을 알았다. 하지만 우리 것은 워낙 옛날 감나무라 키가 너무 크다. 아래쪽 감만 따서 모아 두었다. 감을 따다 보니까 옆의 복숭아 과수원에서 이웃분이 약을 치고 있다. 내년 농사의 준비로 복숭아나무 속에 있는 벌레를 미리 죽이는 작업이라 했다. 농사란 정말 만만치 않아 보인다.
시간 맞춰, 때 맞춰 해 주어야 할 일들이 많은 것이다. 잡초와 해충과 병을 방제하고 필요한 영양 비료를 제 때에 또는 미리 미리 주는 것이 요체인데 과연 내가 흉내나마 낼 수 있을까?
아랫집의 잡초로 버려졌던 밭의 흙이 오늘 일어나 보니 예쁘게 일구어져 있다. 어제 저녁쯤 관리기로 땅을 뒤집었던 모양이다. 그 밭의 농부는 지금 이 가을 무엇을 심을 생각일까? 형님은 지금 심는 작물로 마늘과 시금치가 있다고 했는데.......
조용한 하늘에 가끔씩 총소리가 ‘딱’ 하고 울려 퍼진다. 처음엔 인근에 사격 훈련장이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사과 과수원에서 새를 쫓는 딱총 소리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멧돼지가 밤새 밭에 들어와 땅콩을 헤쳐 먹었기 때문에 수확이 확 줄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잡초와 해충과 벌레 뿐 만 아니라 새와 멧돼지나 오소리 등 동물로 인한 피해도 만만히 볼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수확하는 얼굴은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내가 볼 때, 농부는 맨 땅에서 금을 캐는 광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뚝딱하면 배추가 생기고 뚝딱하면 땅콩이, 고구마가 생기니 말이다. 감이나 대추 같이 나무에서 열리는 작물은 거의 보너스란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도 귀촌주부인 내가 하는 말이지 귀농하는 분들은 좀 더 절박하게 경제적인 부분을 따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농촌은 농업을 생계 수단으로 삼는 분들만 사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얼마 있어 그 넓은 공간이 텅텅 비게 될 것이 때문이다. 나처럼 농업을 모른 채로 농촌을 즐기는 사람이 더욱 더 와서 살기를 바란다. 농업을 다만 취미로 보는 사람 말이다.
취미니까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그런 생각으로 농업을 바라보는 사람 말이다.
남들이 아름답게 가꾼 농촌을 공짜로 본다고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다. 농사를 지어야 농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도 가도 황야라면 농촌에서 사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농업을 생계로 열심히 하는 분들께 감사하며 무궁화 꽃도 심고 잔디도 심고 가꾸고 오래된 고택이며 정자도 기름칠하며 아름답게 가꾸는 것으로 보답하려 한다.
넓은 하늘과 태양과 꽃과 바람을 온 몸으로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나의 농촌을 사랑한다.
안녕! 내 사랑!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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