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올 겨울에도 어김없이 반갑지 않은 불청객 조류인플루엔자(AI)가 찾아들었다. 해넘이, 해맞이 행사가 취소되는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힘겨운 방역 사투가 전개되고 있다. 정부는 올 겨울에도 AI가 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지난 10월부터 심각단계에 준하는 AI 특별방역대책을 추진해왔지만 끝내 이를 막지 못했다. 2003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AI가 2014년부터는 연례행사처럼 4년 연속 발생하게 됐다.

현재 치사율이 높은 고병원성 AI가 확인된 곳은 전북 고창의 오리농장을 비롯해 전남 순천만, 제주도 하도리 등 3곳이다. 모두 철세 도래지이거나 인근지역이다. AI의 잠복기는 최장 3주나 된다. 전북 고창에서 처음으로 감염의심 오리가 발견된 시점이 지난달 17일이니 오는 7일까지가 고비다. 고병원성 확진 판정이 난 곳의 주변 농장에서 아직까지 추가 감염이 나오지 않고 있어 천만다행이지만 이미 감염됐을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더구나 이번에 고병원성 AI로 확진이 난 바이러스는 세 곳 모두 H5N6형으로, 그간 외국에도 없는 신형으로 밝혀져 잠복기나 전파력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올해는 그동안 엄청난 수업료를 치른 학습효과 덕분인지 정부의 초동 대처가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지난해에는 AI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으나 이번에는 발생 첫날 신속하게 위기단계를 심각으로 올리고 가금류의 이동을 전국적으로 48시간 동안 중지시키는 ‘일시 이동중지’ 명령도 하달됐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고병원성 AI 바이러스 확진 판정이 난 고창군 농가만 해도 그렇다. 이곳은 국내 최초로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축산전문 사업자인 ‘참프레’의 위탁을 받아 오리를 사육하는 계열 농가다. 참프레는 ‘국내의 열악한 사육환경과 생산시스템을 개선하여 업계의 선도기업으로 소비자의 안전을 지켜왔다'고 자랑해 온 기업이다. 그러나 이 농가의 축사 시설은 노후화돼 비닐이 찢겨져 있었고 야생조류 분변이 축사 지붕 여러 곳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철새도래지인 동림저수지와 불과 250m 떨어진 곳인데도 이같이 허술하게 관리돼 왔다.

가장 시급한 것은 AI가 더 이상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인간 감염을 막는 일이다. 고병원성 AI는 사람에게도 감염이 될 수 있다. AI 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위험성이 큰 것은 인간 대 인간 전염이 가능한 변종 조류 독감이다. 인간끼리의 전염이 가능한 변종 바이러스는 2005년 베트남과 2006년 중국, 태국 등에서 발견돼 약 33%의 사망률을 보였다.

지난해와 같은 최악의 ‘AI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방역과 예찰활동은 물론이고 AI가 의심되면 즉시 신고하는 등 사육 농민의 적극적인 협조가 긴요하다. 앞으로 겨울 철새는 본격적으로 날아올 것이다. 당장 이달부터 내년 1월까지 전국적으로 120만~ 130만 마리의 철새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수은주는 영하로 떨어져 AI바이러스가 전파되기에 최적의 기후가 될 것이다. 기온이 낮아질수록 바이러스의 생존력은 강해지는 반면, 소독 효과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강원 지역도 안심할 수 없다. 철새가 찾는 원주의 원주천과 섬강, 강릉의 경포호 등이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곳과 멀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이곳에서 고병원성 AI가 나타날 경우 평창올림픽 안전과 흥행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올림픽 기간 중 80개국에서 취재진 등 40만명 정도가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자칫 국가 이미지까지 손상되지 않을 까 우려된다.

AI 사태가 장기화하면 으레 달걀과 닭고기 대란이 일어나고 제빵업계를 비롯해 음식점과 사료산업, 육류가공업 등 연관업종의 연쇄 피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가까스로 청정국 지위를 회복한 가금류 수출이 또다시 중단돼 가금육 업계의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젠 AI를 근절시키기 위한 근본대책이 강구되어야 하겠다. 정부가 방역대책을 강화하고 있는데도 해가 거듭될수록 피해가 심해지는 등 현재의 방역방법이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만연할 때마다 확고한 대책없이 방호복을 입고 가금류를 살처분하는 것만이 능사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AI 발생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보다는 백신 정책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는 등 사전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AI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근본대책이 되지 않을까 사료된다. 또한 위생 문제를 야기하고 전염병에 약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밀식 사육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등 가축의 사육환경 개선 방안도 적극 검토돼야 하겠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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