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지난 주말은 아주 바빴다. 금요일, 대구에 결혼식이 있어 다녀왔다. 주말에 형님과 김장을 담그자고 얼마 전 약속을 했던 것이 문제였다. 원래 일요일 날 남편과 시어른들의 묘사를 지내러 갈 계획이 있었다. 남편 말에 의하면 추석 명절이 지나고 대개 두 달 후 날씨가 추워질 때 쯤 조상님들 산소를 돌보기 위해서 묘사란 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한식 청명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묘사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남편은 결혼한 이후에도 한 번도 이 행사를 거르지 않았다. 서울서 직장에 다닐 때는 음력으로 10월 중순 쯤에는 주말을 이용해서 언제나 시골 행을 했다. 이 일은 우리 가족에게 엄청 중요한 연례 행사였다.

그런데 –우린 언제나 12월 1일이나 2일에 김장을 담그는데- 로 시작되는 형님 말에 묘사 생각은 깜빡 잊어버리고 맞장구를 쳐 버렸다. 그 주말 김장 담글 때 같이 담그자고.... 이렇게 해서 약속이 겹쳐버렸다. 겹쳐진 약속은 또 있었다. 대구 사는 친구들에게 이번 김장은 내가 절임배추를 책임지겠다고 큰 소리쳤었던 것이다. 벌써 12월 초인데 언제 배추를 절여주나? 그러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역시 텃밭에 배추씨를 뿌릴 때부터 이런 일은 각오했어야 했었다. 탐스럽게 속이 찬 배추들의 표정을 보니 모두들 –김치 담아 주세요.- 노래하고 있었다. 그래 어떻게 해 보자. 마음속에는 세 가지 다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다가 몸이 탈이라도 나면? 머리를 쓰다가 형님한테 털어 놓았다. 김장을 어떻게 하시는지도 물어볼 겸.

그러자 선뜻 결혼식 다녀올 금요일에 미리 김장 양념 준비를 해 놓을 테니 토요일에 같이 버무리고 아침 식사도 같이 하자신다. 우리 밭에서 우리가 쓸 만큼 배추도 뽑아 배추 절이기도 함께 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니 묘사는 일요일에 할 수 있을 거라고.
-우린 아들, 딸네 것도 같이 하니까 동서 것 조금 더 하는 거야 문제될게 있겠어? 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이나 다름없지-

이렇게 너그러우실 수가........
토요일 아침에 옆집 형님 댁으로 가 보았다. 사람 기척이 안 보인다. 날씨가 엄청 춥고 해서 내심 걱정을 하고는 있었다. 한데서 김장을 하는 건 아니겠지. 어디서 불을 때고 하나?

전화가 와서 의문이 풀렸다. 어제 김장감을 모두 가지고 영천의 아파트 집으로 옮기셨다는 것이다. 따뜻한 아파트에서 딸네 식구 아들네 식구 모두 모여 김장을 담그자는 것이다.
이제 시골의 집들은 대개 농막의 역할만 하는 것 같다. 추운 겨울은 가까운 도시의 아파트에서 보내는 것이다. 무사히 김장을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서 텃밭에서 배추를 뽑기 시작했다. 따뜻한 무궁화 하우스에서 배추 절이기를 하기로 했다. 열심히 키운 배추를 밭에서 정리하고 건물 안으로 운반해서 소금물에 담궜다. 푸른 잎이 많은 김치는 내 로망이었다. 남편도 나도 김치 중에서 푸른 잎 쪽을 좋아한다. 이제 내가 직접 심은 김치로 맘껏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내 텃밭의 배추들은 이제 반 정도 시집갈 준비를 마쳤다. 형님한테 덕 보고 친구들에겐 덕 보여주고.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도나 보다.
다음날 묘사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대구 친구들도 한 차에 가득 타고 도착했다. 예쁘게 절여진 배추를 보고 모두들 미안하고 고맙다고 치하들 했지만 난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몸은 좀 피곤했지만. 사실이었다. 누구에게 줄 수 있어 기뻤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부자가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친구들이 돌아가고 금방 어두워졌다. 하늘엔 음력으로 시월상달의 보름달이 휘영청 달무리를 크게 뿌리며 자리 잡고 있었다. 방금 뵙고 온 조상들의 웃는 얼굴같이 보였다.

멋져요. 달님!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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