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수산물 완전제외 요구 속에 정치권 반응도 엇갈려

▲ 김영란법 개정 이후 개정안에 대한 각계각층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농축수산업계에서는 소비 인식 전환과 완전제외를 요구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이한빛 기자] 부정부패 근절을 위해 지난해 9월 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1년 만인 지난 11일 개정됐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선물비 중 농축수산물 및 농축수산물을 원재료로 50% 넘게 사용한 가공품의 경우 상한비를 10만원으로 높였으며 경조사는 상한액을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줄이는 대신 화환에 대해서는 최대 10만원까지 비용을 인정하도록 예외를 뒀다.


김영란법은 시행 1년 동안 상한액 기준과 적용 범위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됐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농축수산분야로 선물비의 상한액이 5만원으로 제한되면서 시장 매출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올해 명절 농축산물 선물세트 매출은 전년도 설 기간과 비교해 25.8% 감소했고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화훼 소매점 매출액 역시 전년 동기 대비 약 26.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우 도매가격도 7.6% 하락했다.


식사액 상한액 제한으로 인해 외식업도 큰 타격을 입었다. 전체 외식업의 97%를 차지하는 10인 미만 외식업체의 매출액은 법 시행 6개월 만에 12.2% 감소했고 지난 2월 기준 폐업 신고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20.7% 증가했다.


이로 인해 농축수산식품산업계에서는 선물 기준에서 국내산 농축수산물을 제외하고 식사비 상한선을 높이는 등 김영란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김영란법 개정을 위한 가액조정을 논의했으나 좌절됐고 11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재논의한 끝에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11일 김영란법 개정으로 농축수산물의 선물 상한액은 10만원으로 올랐지만 한우, 인삼 등 고가의 농축수산물은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개정안 통과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련부처는 반색했다. 농식품부는 성명을 통해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존중하고 농축산업계의 어려움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과일과 화훼의 경우 가액조정 효과가 커져 소비 수요 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며 한우와 인삼제품의 경우도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개정안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농어민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다행스러운 결정”이라며 “정치권과 공직 사회를 투명하게 하라는 국민들의 명령과 함께 농어민을 잘 살피라는 권익위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청탁금지라는 본래 목적이 희석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선물 상한액을 올렸으니 이제는 식사 상한액을 올리자고 할 것이다. 이런 식의 개정이 이뤄진다면 청탁금지법이 후퇴해 껍데기만 남을 수 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영란법의 목적은 청탁이 될 수 있는 상대방에게 선물 아닌 선물을 안 해도 되는 사회, 청탁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선물 아닌 선물을 거절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도 “우리 국민 중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청렴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김영란법에 합의를 한 건데 1년 만에 개정되며 법의 뿌리를 흔들었다”고 비판했다.


개정안의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영란법 대책TF 팀장을 맡은 이완영 한국당 의원은 “인삼과 한우, 전복 등 고가의 농축수산물은 여전히 혜택을 보지 못하는 만큼 농축수산물의 법 적용 제외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국회 정무위 소속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명절선물로 주고받는 농축수산물에 대해서는 법 적용을 제외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상정한 바 있다.


▲ 화환의 경우 최대 10만원으로 상한액이 적용됐으나 소비가 위축되면서 불황은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련업계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선물비 상한선에서 농축수산물의 제외를 주장해왔던 한국농축산연합회는 기존 주장을 유지하며 추가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홍기 한국농축산연합회 회장(한국 4-H본부 회장)은 “가액 조정 대신 중량 조절 등의 대안이 있지만 이러한 애로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숨통은 트이겠지만 여전히 일부 농축수산물은 수입산에 밀릴 수 있고 시장에서 받는 타격도 큰 만큼 제외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서 제외된 외식업계는 가액 조정이 어렵다면 영세업자를 위해 피부에 와 닿는 구제책을 마련해 달라고 제언했다.


이철 외식업중앙회 홍보국장은 “김영란법 도입과 더불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영세한 외식업자들의 고통이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세제 지원 및 대출 혜택 등의 구제책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이지만 영세 외식업자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가장 좋은 것은 식사비의 상향조정이지만 시행 전과 마찬가지로 반영이 안 되고있어 계란으로 바위치기인 실정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 또는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부 업계에서는 상한액 조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얼어붙은 농축수산물 소비를 해소하기 위한 인식 전환이라고 주장했다.


화환 상한액에 대한 예외조항이 추가된 화훼업계는 개정 방침에 환영하면서도 김영란법 제정 이후 사회적으로 선물에 대해 금기시 하는 분위기를 타파하지 않으면 불황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임영호 한국화훼협회 회장은 “김영란법 제정에 맞춰 저가의 꽃 상품들이 출시됐지만 꽃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는 줄어든 실정”이라면서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꽃 선물을 기피하는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화훼업계의 불황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영란법 개정을 이끌었던 이낙연 국무총리는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는 청탁의 근절이지 상한액 조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총리는 “이번 개정에 따른 상한액 조정은 선물을 주고받는 어려움을 겪는 농어민들의 삶을 두 번의 명절만큼이라도 돕자는 취지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하지만 청탁금지법의 제정취지는 공직자가 선물을 받지 말자는 뜻이다. 시행령 개정은 단지 법으로 규제하는 선을 정하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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