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시골의 크리스마스는 조용하다. 크리스마스 시즌, 서울의 길거리, 반짝이는 장식을 한 고층 건물의 외관, 교회나 백화점 앞의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 연인들, 화장품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캐롤 소리, 빵집 앞에 예쁜 포장의 케이크 상자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모습 등, 도시에서 쉽게 보던 광경이 떠올라 아련한 마음에 잠길 때도 있다. 며칠 전의 동지 날에도 조용했었다. 올해의 동지는 애동지라나. 음력 초에 동지가 들어 있으면 애동지라고 하는데 이땐 팥죽 새알심을 안 먹는단다. 그래서 동지도 그냥 조용히 지나갔다. 아마도 신정 정초도 조용할 것만 같다.

우리 부부는 시골에 내려오면서 몇 가지 결정을 하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첫째는 늦가을에 지내는 묘사이다. 우리가 모시는 조상의 산소는 모두 다섯 기인데 이번 묘제를 지내면서 앞으로 늦가을의 산제사는 더 없을 것이라고 고유(告由-이유를 밝혀 아뢰는 말)를 드렸다. 자손이 나이 들어 무리라고 죄송하다는 말씀과 더불어.


이제 곧 새해가 되면 우리 부부의 나이가 칠순이 된다. 칠순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모르던 점이 있어 여기서 밝히자면 칠순은 우리 일반 나이로 70이 됨을 알리는 말이다. 만 70세가 아닌 것이다. 나도 남편도 동갑이라 같은 해에 칠순을 맞는다. 벌써 그렇게? 옛날에 70 나이가 고래희(古來稀)라 했지만 지금은 70은 노인 축에도 끼지 못한다. 내 경우 키나 얼굴이 작은 편이라 어려(?) 보이는지 아직까지도 전철의 경로석에서 눈 흘김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나이는 나이다. 여러 가지 질병과 무관하지 못하다. 무리하면 탈나는 것은 어느 나이에서도 그러겠지만 역시 노년에서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묘사를 그만 모시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남편이 장손이라 제사 문제도 있다. 우리 대에까지만 제사를 지낼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벌써 얘기해 놓았다. 명절 두 번도 남들과 조금 다르게 준비하고 있다. 일단 명절에 술 대신 차를 사용한다. 그리고 설 명절 차례는 음력설이 아니라 양력설에 지낸다. 그러면서 양력 설 전날이자 그 해의 마지막 날을 아이들과 함께 맞는다. -셋! 둘! 하나!- 외치면서 샴페인을 터뜨리지는 않지만, 옛 관습처럼 그 날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질까봐 밤을 새우지도 않지만, 한 해를 보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온 식구들과 함께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내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자칫 바쁜 생활에서 사라지기 쉬운 대화를 이 때 만큼은 복원하고 싶어서다. -두런두런- 얘기를 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며느리들이 좋아한다. 왜냐고? 이렇게 되면 음력 설 명절의 긴 휴가가 오로지 그들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의 심사숙고는 돌아가신 선조 분들과 다음 대인 후손들과의 수평적인 고려 속에서 오랫동안 맴돌았을 것이고 결국 내린 그 결정을 온 가족이 환영했다.
우리는 대신 시골에서 설 명절을 보내는 맛에 흠뻑 빠질 생각이다.


제사는 모두 서울서 지낸다. 아이들의 직장이 서울이며 제사는 평일에도 지내야 하며 참사하는 친척 어른들도 서울에 모두 살기 때문에 시골에 옮겨 올 수 없다. 그러므로 말일을 하루 남기고 우리 부부는 서울에 올라갈 예정이다. 동쪽과 남쪽 전부 통유리로 된 영천의 거실에서 찬란한 새해 첫 햇살을 맞고 싶은 바램을 뒤로 하고 말이다.


올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20년이 있을 것 같다. 이모님이나 친구들의 어머님이 90넘은 연세로 건강히 생존해 계시니 우리도 아무렇게나 살 수는 없다. 두려움과 불안이 교차하는 칠순 나이다.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뽀빠이! 도와 줘요! 용기가 필요해!!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