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이 꽤 많이 쌓였다. 날씨가 흐리니 이 눈이 하루 종일 녹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눈을 보니 언제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떠올랐다.

- 자! 내가 한 번 눈을 치워 보는 거야.- 제 집 앞의 눈을 치워야 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서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현관 앞으로부터 마당 길, 들어오는 초입 길, 그러다가 큰 길 까지 쓸었다. 중간 대추나무 아지매 댁 앞도, 배롱나무집 앞도 다 쓸었다. 기다란 싸리비로 쓱쓱, 썩썩. 눈바람이 사납게 날리며 말끔해진 길에 다시 눈을 깔아놓지만 재미있다. 힘을 너무 주지 말고, 차분하게, 발을 나붓나붓 내딛으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쓸었다.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말하길, 밖을 내다보니 눈이 예쁘게 치워져 있길래 누가 고맙게도 눈을 쓸어 주셨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내가 바로 그 고마운 사람이라오.” 말하며 우린 한바탕 웃었다.
마을의 스피커가 울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두 번씩 산불 방지를 위해서 영천시에서 마을마다 돌아가며 알리는 홍보 메시지다.
-바람이 심하니 집에서 하는 소각행위는 절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시골서 살다보니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음식 쓰레기는 밭 귀퉁이에 따로 모아 퇴비로 삼는다 해도 종이며 플라스틱, 유리병은 어쩌란 말인가? 마을마다 분리수거하는 곳이 따로 없으니 면에서 구입한 쓰레기 봉지 속에 이것저것 모두를 넣을 수 밖 에 없다. 그런 후에 자동차에 싣고 마을과는 좀 떨어진 대로변에 있는 지정 쓰레기 수거 장소에다가 버려야 한다. 하지만 실지로 그렇게 처리하는 가구는 드물고 집집마다 드럼통을 사서 가운데 부분을 네모로 잘라 종이며 플라스틱을 태운다.

그래서 난 몇 년 전 한 젊은 사업가가 시작한 –재활용품 자판기-를 떠올렸다. 재활용품을 넣고 휴대폰 번호를 넣으면 돈이 적립되어 1000원 이상일 때부터 은행구좌에 이체되는 구조이다. 그이의 사업설명회에 참석했던 기억을 되살려 연락처를 수소문해 보았다. 지금 과천에서 –네프론-이란 이름으로 시험운행을 하고 있는데 꽤 인기를 모으고 있단다.

아직 플라스틱과 페트병만 취급하고 있지만 유리병도 수거하도록 기계를 업그레이드 시킬 계획이란다. 내년에는 서울시와 구미시로 납품 대상을 넓히게 되었단다.

그 기계가 영천에도 왔으면 좋겠다. 영천 뿐 아니라 시골 방방곡곡에 비치되었으면 좋겠다. 보통의 자판기 보다는 관리가 쉽지 않을까? 일반 자판기는 그 안에 돈과 물품이 있으니 절도의 표적이 될 수 있어 관리자가 꼭 필요하지만 이 자판기 안에는 재활용품 밖에 없으니 편리한 곳에 그냥 두어도 되지 않을까? 자판기 통을 비울 관리 인력이야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네프론-이란 이름 자체가 신체의 불순물을 걸러주는 콩팥 세포의 이름이란다.

저녁 무렵 다시 확성기가 울리며 산불 방지 방송이 시작되었다. 앞으로는 마을의 스피커에서 다음과 같은 안내 방송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폐품을 팔아 모은 돈으로 유명한 뷔페 집에 갈 예정입니다. 여러분께서는 11시 30분까지 회관 앞으로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향 창으로 내다보니 길 위에 아직까지 눈을 치운 싸리 빗자루 자욱이 남아있다. 언제나 우리 마을이 이렇게 깔끔하면 좋겠다. 재활용품을 함께 열심히 모아서 ‘네프론’에 가져가면 일년에 한번, 반년에 한 번은 모두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함께 모으는 즐거움도 클 것이다.

그 날을 위해 모두들 화이팅!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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