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은 한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 친지들과 반갑게 만나 먼저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면서 한해 건강과 행복을 축원하는 날입니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농경사회에서 대표적인 농한기였던 이때를 우리 선조들은 고마운 이웃들과 서로 마음을 열고 행복을 나누는 즐겁고 훈훈한 명절로 삼았습니다. 특히 올해는 제가 반세기만에 귀향한 고향마을에서 처음 맞는 설날이고 대보름이라 일생을 통해 가장 촌스러운 명절이기도 합니다.

다산 정 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 정 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는 농촌의 일상을 잘 그려낸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 정월 조에 설날과 대보름의 촌스러운 풍속이 꽤 자세하게 나옵니다. “정조(正朝)에 세배함은 돈후한 풍속이다. 새 의복 떨쳐입고 친척 인리(隣里) 서로 찾아 노소남여 아동까지 삼삼오오 다닐 적에 와삭버석 울긋불긋 물색(物色)이 번화하다. 사내아이 연날리기 계집아이 널뛰기요 윷놀아 내기하기 소년들 놀이로다. 사당에 세알(歲謁)하니 병탕(餠湯)에 주과(酒果)로다.” “보름날 약밥제도 신라적 풍속이라 묵은 산채 삶아내니 육미(肉味)를 바꿀 소냐. 귀 밝히는 약술이며 부름 삭는 생률(生栗)이라 먼저 불러 더위팔기, 달맞이 횃불 혀기, 흘러오는 풍속이요 아이들 놀이로다” 어떻습니까?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설날에 흰 가래떡으로 만든 병탕, 즉 떡국을 먹고 대보름에는 약밥과 부럼을 먹었습니다. 1849년에 홍 석모(洪錫謨)가 저술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설명이 나옵니다.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늘려 만든 가래떡을 얇게 엽전 두께만큼 썰어 장국에다 끓인 다음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어 조리한 것을 떡국이라 하는데 제사에도 쓰고 손님 접대에도 사용하는 세찬에 빠져서는 안 될 음식이다.” “찰밥에 대추, 밤, 기름, 꿀, 간장을 함께 쪄서 잣과 버무린 약밥은 신라 적부터 내려온 풍속이고, 보름날 이른 아침에 날밤, 호두, 은행, 잣, 무 등을 깨물면서 부스럼이 삭기를 기원하는 것이 부럼이다”
설날은 만물이 새로 시작하는 날인만큼 장수와 재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떡국을 먹었다고 합니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지난해 피땀 흘려 수확한 가장 소중한 곡식인 쌀로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었습니다. 이 떡국에 한 해 동안 무사안녕을 비는 촌사람들의 순수한 소원과 지난해 풍년농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약밥과 부럼에도 ‘참으로 소박해서 가장 촌스러운’ 사람들의 정성과 슬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됩니다.

설날의 대표음식이 떡국이듯이 한국 농업의 대표작물은 누가 뭐래도 쌀입니다. 쌀로 만든 떡국은 우리 민족의 육신과 영혼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떡국과 약밥, 부럼을 비롯한 촌스러운 전통음식들은 영원히 공존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입맛이 변해도 한해를 시작하는 명절에 늘 함께하는 떡국처럼 우리 농업과 농촌도 민족의 역사와 생활 속에 항상 함께 하고 또 발전해나가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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