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오늘은 귀촌해서 처음으로 맞는 설 명절이다. 양력으로 정초에 서울 집에서 아이들과 차례를 지낸 것도 음력 설 명절에 이 곳 영천 시골에 푸근하게 있으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아침에 침실 동편 창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기원했다.
-올해도 작년만큼만 똑같이 지내게 해 주세요.-
사실 한 해 한 해 나이 먹어 가면서 작년과 같은 컨디션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으로 한 해의 소망을 삼는다.
거실로 나와 남쪽 통유리로 바라보이는 침수정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오늘 우리 침수정을 보며 할아버지께 세배 올릴까?” “그래요.”
우린 정자를 향해 재배를 올린다. 남편의 조부님이자 침수정의 건립자님께.
아마 이 의식은 우리가 이곳에 사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준비해 놓은 떡국으로 아침을 먹는다. 옛날부터 쌀을 귀히 여겨 쌀떡으로 만든 떡국을 한 해의 시작인 설 명절에 먹곤 했다고 한다. 나도 남편도 떡국을 소중히 생각하며 마련하고 소중히 생각하며 먹는다. 그런데 웬 일인지 떡국은 설날에 먹을 때 제일 맛있다. 가끔 그 맛을 못 잊어 음식점에서 시켜 먹기도 하는데 그 때는 지금처럼 맛있지 않았던 기억이다.
오늘은 봄의 시작인 듯 날씨가 포근하다. 햇님이 중천에 오르면서 바람은 점점 잦아든다. 휴대폰에서 기온을 검색해보니 영천의 낮 온도가 8도까지 올랐다.
이제 봄이로구나.
고택의 모든 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마루를 쓸었다.
점심이 지나고 나니 차례를 마치거나 성묘를 마친 남편의 친척 분들이 들러주셨다. 주로 대구에서 사시는 분들, 또는 서울서 내려오신 분도 있다. 마을이 활기를 띄면서 아이들 목소리, 젊은이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는 점점 톤을 높이더니 까르르르 바람을 가르며, 햇빛을 뚫고 달려온다.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이들 목소리가 이 마을을 들었다 놨다 하는 기분이다.
오후엔 남동생과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남동생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 다 큰 아들이 둘 있지만 하나밖에 오지 못했다고 한다. 오빠 역시 외아들과 호젓이 보냈다고 한다. 올케가 미국에서 사는 딸을 만나러 갔기 때문이다. 둘 다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둘씩이니까 다행이다. 우리 집도 둘. 둘이 하루 종일 같이 보냈다. 혼자인 사람도 많다. 오늘 같은 날,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혼자 지내는 사람은 긴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그런 탓에 명절이 싫다는 사람도 많다. 식구가 많아서, 그 많은 식구들에게 한 마디씩 들어서,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취직은 안 되느냐고? 들어서 싫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낫다.
그렇게 서로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몸이 불편해서 나가지도 못 하고 집안에서 하루 종일 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사람은 또 어떠할까?
이 마을에선 이틀 전에 마을 비용으로 모두 사우나 불가마에 데려 가 주었다. 전부 모여서 간식을 먹었고 점심 식사도 했다. 마을 회관에 있는 쌀로 언제나 밥을 지어 먹을 수도 있다. 그러니 혼자 살기엔 그래도 시골이 낫질 않을까? 마을 단위로 행사가 많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챙기기 때문에, 혼자 사는 사람도 보살핌을 받기가 쉬운 곳이 시골인 것 같다. 더군다나 자연이란 친구가 외로움을 달래줄 것이고.
조상님들께 비옵니다. 모두가 즐거운 명절 되게 해 주옵소서.
외로운 사람들에게 삶의 온기를 주세요!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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