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회장

농어촌공사는 올해로 창립 110주년을 맞습니다. 1908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수리조합이 옥구 서부수리조합인데, 그 시점을 농어촌공사의 창립으로 보는 것이지요. 때는 대한제국 융희 2년 12월 8일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고종이 퇴위하고 연호가 광무에서 융희로 바뀐 뒤에 일제의 조선통감부가 대한제국 탁지부에 압력을 행사하여 1906년에 ‘수리조합조례’가 공포되었고, 1908년 7월에는 ‘수리조합 실시요령 모범규약’이 제정 시달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라북도 옥구군 옥구면과 미면의 논 270ha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농업용수를 확보 공급하기 위해 처음으로 설립된 수리조합이 바로 ‘옥구 서부수리조합’인 것입니다.

비록 일제의 강압에 의해 수리조합이 설립되기는 했지만, 이 옥구 서부수리조합만큼은 당시 관내 유지였던 전라북도 참사관 김 상희 선생을 중심으로 한국인이 주도하여 설립하였고, 조합원도 대다수가 한국인이었습니다. 관할 면적의 70% 이상이 한국인 소유였고, 조합비를 포함한 자체 조달로 일체의 경비를 충당하였던 이른바 자립조합의 원형이었지요. 이 조합이 이렇게 설립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수원(水源)으로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제(米堤)와 선제(船堤)라는 두 개의 저수지가 있었던 덕분이었습니다. 조선 중종 25년, 1530년에 편찬된 ‘신동국여지승람’ 옥구현 산천조에 기록된 이 ‘쌀 밑 방죽’, 즉 ‘미제 저수지’는 옥구현 북서쪽 10리 지점에 있는 둘레 3.3km의 저수지로서 그 지역의 관개용수를 공급했으며, 이를 관리하는 수리공동체 조직인 ‘미제 수리계(水利契)’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저수지는 오늘날 전북 군산시가 자랑하는 ‘은파유원지’로 남아있는데, 그 가운데에 농어촌공사 창립 100주년 기념탑이 2008년에 세워져 있습니다.

농어촌공사는 농사철이 시작되는 4월 상순부터 통수식(通水式) 행사를 전국 각지의 저수지에서 거행합니다. 겨우내 닫아두었던 저수지 수문을 열어서,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겸해 농지에 물을 공급하기 시작하는 행사이지요. 그중 가장 오래된 통수식이 바로 1927년에 시작된 백파(百波) 통수식입니다.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였던 운암제(옥정호, 현재의 섬진댐)의 낙양취입보 수문을 열어 김제, 정읍, 부안, 고창 지역 33,000ha의 광활한 호남평야에 영농급수를 시작하는 행사였지요. 이를 기념하여 동진강 상류의 물줄기가 김제와 정읍으로 갈라지는 낙양동산에 ‘일원종시백파(一源從是百波, 하나의 물의 원천이 내려와서 백 개의 물결이 되도다.)’라는 글을 새긴 ‘백파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1925년에 이 저수지를 완공하면서 동진수리조합을 설립하였을 때에는 저수량이 약 6천만 톤이었으나 1965년에 준공된 다목적댐인 현재의 섬진댐 저수량은 4억 6천 6백만 톤에 이릅니다. 이 댐은 농어촌공사와 수자원공사, 한국수력원자력공사의 3개 기관이 공동 관리하고 있지요. 한수원은 발전, 수공은 전북 서남지역 광역상수도를 담당하고, 2억 5천 8백만 톤의 농업용수는 농어촌공사가 관리하고 있는데, 농업용수를 충분히 확보해두기 위해 이 댐 수위를 188.68m로 유지하게끔 협약이 되어있답니다.

백파 통수식이 열리는 낙양취입보의 물이 김제만경평야를 적시고 흘러갑니다. 이 나라 제일의 곡창지대인 이 ‘지평선’들에 백제시대에 축조된 ‘벽골제’ 저수지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이 벽골제의 구조물 유적은 이 저수지가 아마도 ‘세계 최초’의 방조제였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 서쪽 바다에 약 1,500년 후에 우리 후손들이 자력으로 축조한 33.9km, ‘세계 최장’의 새만금 방조제가 있지요. 이 모두가 우리의 자랑이 아닐 수 없기에, 앞으로도 이런 전통을 더욱 소중하게 이어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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