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지난주에는 서울서 손님 여러 분이 다녀갔다. 숙박은 아니고 아침에 버스 또는 기차로 내려와 점심을 같이 하고 영천의 볼거리를 둘러보기도 한 후 오후 서너 시에 올라간 것이다. 그 참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세상이 참으로 좋아진 것 같다. 세상이 좋아졌다는 것은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것인데 나는 길이 잘 닦여 교통이 편해진 것을 좋은 것 중 하나로 본다. 옛날, 고속도로 깔 때 길 위에 누워 공사 진행을 막으려던 사람도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었겠지만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게끔 공사가 진행되어서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그 수많은 길을 편편하게 한 덕분에 시골에 사는 사람들도 수술을 서울서 받으려고 아픈 몸을 이끌고 갈 수가 있고 이 머나먼 영천 집까지도 찾아오려는 친지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은 우리가 준비한 삼겹살 그릴 구이를 평상에서 즐기고 오전 내내 끓인 가마솥 국밥을 식사로 들고 갔다. 전부 남자들이었지만 그 중에 설거지 전문이라고 자처하시는 분이 있어 떠난 후엔 손님이 왔다 간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깨끗했다. 배웅하고 돌아와서 고택의 툇마루에 앉아 말끔한 평상 쪽을 보면서 흐뭇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는데 아뿔싸! 내 눈에 고양이 두 마리가 분명 삼겹살 냄새가 아직도 떠돌고 있을 평상 쪽을 더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런! 그 쪽은 너무나 깨끗했다. 고기는 다 먹었는데........ 국밥은 남았겠지? 서둘러 솥으로 가서 고기를 건져 조그만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 그 곳에 두었다. 방으로 들어가 숨어 내다보니 내 기척에 도망갔던 녀석들이 접시 주변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츳! 다음번에는 고기가 남는다고 억지로 다 먹지 말고 녀석들 몫을 남겨 줘야겠다.


시골의 삶은 이렇다. 동물과 식물이 다 고려 대상에 드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형님 댁에서 제사가 있어 방문했더니 돌아가는 길에 제수를 싸 주시면서 하는 말씀이 의미심장하다. 우리 집 현판식이 있을 때 손님들이 먹다 남은 막걸리를 보고 생각했는데 내게 말하는 것을 깜빡하셨다고. 무어냐고 물으니 감나무에 제일 좋은 영양제가 막걸리라는 것이다. 작년에 감을 잔뜩 달았던 뒤뜰의 감나무가 올해는 잎을 성글게 달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형님이 알려 주었다. 한 해 기운을 다 써 버려서 그렇다고. 우리 집 감나무까지 걱정해 주는 형님의 오지랖이 너무 고마웠다. 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막걸리 다섯 병을 사 가지고 왔다.


-미안해. 감나무야. 따 먹을 줄만 알았지 밥 줄 줄은 몰랐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에는 아침 식사 때 부치는 계란 프라이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매일 같이는 아니지만. 고양이들한테 인사를 하고 싶을 때다. 말없이 서 있는 나무들에게도 더 관심을 보이게 된다. 잎이 꼬부라져 벌레가 꼬인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래서 남편과 농약을 사러 간 것도 관심의 일부다. 옆집 아저씨 말에 의하면 감나무 꽃이 피면 곧 벌레 퇴치 약을 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농약 치는 시기는 약간 늦은 점이 없지 않다.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 감꽃이 피고 복숭아 적과가 시작되니 그 때 약을 치려는 마음을 먹어야겠다. 약 치는 것을 처음엔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아주버님에게 부탁하려 했었는데 어느새 단골이 되어버린 농약가게 젊은이가 약치는 기계 사용법을 상세히 설명해 주며 용기를 주어 남편이 처음으로 해보겠다고 했다. 줄 길이가 50미터나 되어 한자리에서 옮기지 않고 약을 칠 수 있고 높은 곳에 약이 도달할 수 있도록 분무기 길이도 길다.


이래서 귀촌 가족이 어느새 농사꾼이 되어가나 보다. 주위 자연의 모든 것을 공짜로만 보지 않고 밥도 주어가며, 병도 고쳐주며, 즐길 수 있게 되어가니 말이다.


진짜 농사꾼이란 이런 사람 맞죠?


<작가>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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