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후 전국 보급 돼 대중화… ‘순대 스테이크’ 등 이색순대도

▲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당면순대.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최근 서울 대학로에 본점을 둔 전통순대 전문점 S사가 조선시대 조리서를 토대로 한 전통순대 복원에 성공해 화제다.


S사는 앞서 조선 후기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근거한 ‘1877 슌대’를 출시한 바 있다. 이번에는 ‘주방문(酒方文)’을 바탕으로 한 ‘소(牛)순대(팽우육법)’을 선보였다.


‘소순대’는 소고기, 선지, 소대창으로 만든 순대다. 주방문은 1600년대 후반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미상 조리서다. ‘소순대’ 시연식에는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 식품명인 9호 조정형 명인, 요리연구가 홍신애 등 요리계 저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17세기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요리책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등에 따르면 순대는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요리이기에 집안 어르신 생신 등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순대가 대중화된 건 6.25전쟁 이후인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찹쌀 등이 들어가는 고급요리였으나 전쟁 후 당면공장에서 건조 중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면순대’가 탄생하고 전국으로 보급됐다는 게 통설이다.


전국민의 입맛을 급격히 사로잡은 당면순대는 간, 허파, 위(오소리감투), 염통 등 다양한 내장이 섞이고 박정희 정부 때의 ‘분식장려운동’ 등 영향으로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길거리 분식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국민간식으로 자리잡았다.


지역별로 찍어먹는 양념도 달라 수도권과 충남에서는 고춧가루 섞인 소금에, 경북과 강원도에서는 새우젓이나 후추 섞인 소금에, 경남과 부산에서는 막장이나 후추 섞인 소금에, 호남에서는 초장이나 흰 소금에 찍어먹는 게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종종 인터넷상에서는 어느 지역 양념이 순대와 궁합이 좋냐를 두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양념이든 모두 맛있다는 게 미식가들의 중론이다. 지역불문하고 공통양념인 ‘떡볶이 국물’에는 누구나 이견이 없다.


▲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랑받는 ‘순대군’과 ‘떡볶이양’ 커플.


순대 제조법은 각 지역 특산물과 결합되면서 독특한 형태의 순대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강원 속초에서는 오징어순대가 유명하다. 경기 용인에서는 삶은 채소와 고기 등이 듬뿍 들어간 백암순대가, 충남 천안에서는 채소와 찹쌀만으로 만드는 병천순대가, 세종특별자치시(옛 충남 연기군)에서는 선지가 주를 이루는 피순대가, 전남에서는 막창을 사용하는 암뽕순대가, 제주에서는 암뽕순대와 유사한 막창순대가 대표적이다.


이북에서 순대는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평양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고기순대가, 함경남도 함흥에는 남한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아바이순대와 명태순대가 있다. 재중동포(조선족)도 예외는 아니라서 돼지 피가 들어간 연변순대와 창자 대신 채소를 쓴 채소순대가 유명하다.


순대는 ‘주당’들의 술안주로 사랑받기도 한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안주이지만 순댓국, 술국, 순대(곱창)볶음, 순대전골 등으로 재탄생해 미식가 주당들의 입맛을 책임진다. 퇴근길 얼큰한 순댓국 하나에 소주 한잔 또는 점심시간 반주 한잔은 묵힌 스트레스를 싹 날려버린다.


순대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식품으로 애용됐다. 고대 그리스 서사시인 ‘오디세이아’에는 양의 위에 피, 비계를 채워넣고 구워먹는 요리가 등장한다. 영국에는 창자에 피·고기·오트밀 등을 채워넣고 삶아먹는 ‘블러드소시지(블랙푸딩)’가, 스페인에는 쌀·선지·비계를 사용하는 ‘모르시야’가 있다. 스코틀랜드에는 ‘순대 확장판’이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순대와 형태가 흡사하면서 크기가 큰 ‘해기스’가 있다.


귀한 날에만 먹던 귀한 전통요리에서 국민간식으로 자리잡은 순대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S사는 ‘순대 스테이크’를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내일은 또 어떤 이색순대가 등장해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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