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 타파없인 뱃속에서부터 영어 배워도 사교육 해결 못해

<정우택 논설위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하루가 멀게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있다. 특히 대입이나 수능 개선과 관련해서는 학생들과 부모들도 헷갈리고 심지어는 대학 간에도 찬반이 엇갈릴 정도다. 학교 교사들로 의견이 서로 다르다.

이번에는 인수위원회가 영어교육을 '한방'에 해결하겠다고 했다.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게 아예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경숙 위원장의 말을 빌리면 기러기 아빠를 두고 볼 수 없으니 영어교육으로 인한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도 롯데 호텔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창립총회에서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웬만한 생활영어를 거침없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영어 과외를 받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어만 잘하면 군데도 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군대에 가지 말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한다는 생각이다. 대학생들이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영어학원으로 다 몰리면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은 걱정이다.

인수위의 이번 발표는 영어로 인한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고 학생들을 영어지옥에서 구출하기 위한 큰 결단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영어 교육 문제가 나오면 말하기를 강화하거나 교과서 범위 내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것, 학교 별로 원어민 교사를 두어 학생들이 외국인을 접하게 하는 것이 고작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영어 과외를 받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겠다고 했고, 이 위원장은 기러기 아빠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 발언은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빼놓고 있다. 왜 기를 쓰고 영어 과외를 받는 것인지, 왜 자녀를 외국에 보내는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 공부는 우습게 여기며 학원 공부에 매달리고, 부모가 고생하면서 자식들 과외 공부를 시키고, 외국에 공부하러 보내는 것은 목적이 딱 하나다. 좋은 대학, 소위 일류대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소위 일류대학을 나와야 취업, 사회생활, 직장생활이 탄탄대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학벌주의와 지연으로 오염돼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능력이 있어도 소외받는 게 우리 사회다. 회사든 공직 사회든 일류대학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이다.

솔직히 학벌주의만 없어진다면 교육 문제는 자연적으로 해결된다. 능력중심의 사회가 된다면 학생들이 밤 12시까지 학원에서 보낼 이유가 없다. 또 부모들이 자녀들 학원비 대느라 뼈가 빠질 이유도 없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하나가 해결되는 것이다.

한번 보자.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아무리 향상되고, 입시 제도가 바뀌고, 수능이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는데 그게 바로 입시다. 영어 실력이 향상되고, 수능이 개선된다고 모든 학생이 원하는 대학, 소위 일류대학에 모두 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처럼 정해진 인원만 갈 수 있다. 나머지는 울어야 한다. 그러니 또 다른 경쟁이 있게 마련이다.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은 수능 개선이나 입시제도 변경, 영어 교육의 강화가 아니다. 이런 것들은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벌주의 사회를 능력중심 사회로 바꾸는 것이다.

물론 수 십년 동안 내려온 것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학벌보다 능력 사회로 만들어 가겠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질 않고 있다. 생각이 없는 것인지, 지금처럼 학벌사회로 계속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학벌사회가 사라지지 않는 한 유아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는 노인대학에서 영어로 수업을 해도 학생들은 일류 대학을 가기 위해 '합격'과 '탈락'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아예 수능 없이 대학에 간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든 평가를 받아야 한다. 모두 일류 대학에 갈 수 없으니 누구는 웃어야 하고, 누구는 울어야 한다.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고, 사회생활에 차별이 없다면 굳이 학원에서 밤을 새울 필요가 없을 것 아닌가. 또 부모들도 자신들은 먹지도 못하고 고생하면서 월급을 학원비나 유학비로 다 털어 넣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학벌주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영어교육 강화니, 사교육비 절감이니, 공교육 회복이니 하고 아무리 말을 해봐야 한마디로 '헛다리 긁는 것' 밖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않고 교육정책을 만들고 있으니 그저 자녀들만 불쌍하고, 부모들만 고생할 뿐이다.

정우택 논설위원 jwt@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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