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엇갈린 국회… 바른미래당, 논평 없어 ‘눈길’

▲ 25일 6.25전쟁 68주년 중앙행사에 참석한 해외 참전용사.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6.25전쟁 68주년을 맞은 25일 여야는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평화’를 강조한 반면 자유한국당은 ‘경계’를 주문했다. 바른미래당은 공식논평이 없어 눈길을 끌었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체제와 이념을 넘어 이산가족 문제는 기본적 인권문제로 가장 우선적으로 풀어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일회성 이산가족 상봉을 넘어 정례화, 상시화될 수 있도록 8천만 겨레가 뜻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8월15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갖기로 했다.


최경환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6.25전쟁 68주년을 맞아 이제는 종전선언을 통해 휴전상태를 종식시키는 것만이 6.25 희생자들 염원을 실현하는 길”이라며 “민주평화당은 한반도 비핵화, 종전선언, 평화협정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국민과 함께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혜선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길었던 반목의 세월을 뒤로 하고 남북이 함께 손 잡고 새로운 한반도 미래를 활짝 열어야 할 때”라며 “이것만이 나라를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친 이 땅의 호국영령들을 진정으로 기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당은 “더욱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김성원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남북, 미북정상회담으로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통한 한반도 평화의 꿈은 진일보했다”면서도 “북한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 조치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는데 한미훈련 중단, 잇따른 우리 군 자체훈련 연기, 주한미군 철수 거론 등 국민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50년 6월25일 우리가 무방비 상태에 놓인 그 순간 북한이 공격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최소한의 방어훈련마저 포기하고 북한 선의를 기대하는 게 올바른 방향인지 되짚어봐야 한다”며 “그 어느 때보다 평화분위기가 조성되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욱 경계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은 대변인단을 통한 별다른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정부는 북한 지역의 한국군 및 경찰 유해, 납북자 송환을 위한 협의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유해를 모셔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6.25전쟁 68주년 중앙행사가 열렸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 김성태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조배숙 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6.25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발발했다. 앞서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한 틈을 타 김일성은 선전포고 없이 소련, 중국 승인을 얻어 전쟁을 일으켰다.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 중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6.25는 한미의 ‘북침’으로 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근래에는 ‘남침’을 인정하고 있다.


당시 북한은 집단지도체제에 가까웠다. 소련으로부터 북한 지도자로 인정받기 위해 김일성과 다투다 밀려난 박헌영은 남침 시 남로당 등 남한 내 공산주의자들이 대거 호응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김일성이 서울을 점령하고 3일이나 쉬는 동안 호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승만 정부가 강력한 공권력으로 반체제주의자들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는 후일 김일성이 박헌영에게 ‘미제 간첩’ 누명을 씌워 숙청하는 빌미가 됐다. 정적들을 모조리 제거한 김일성은 1972년 ‘수령’에 올라 1인 독재는 물론 혈통세습까지 자행했다.


6.25전쟁은 역사상 첫 이념대립에 의한 전쟁이자 유엔연합군 참전 전쟁이다. 당초 북한의 남침을 묵인했던 소련, 중국은 막상 유엔결의안 표결에서는 기권했다. 이로 인해 전세계 63개국(병력지원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물자지원 20개국 등)이 한국을 도와 한반도로 향했다.


북한군의 파죽지세 앞에 낙동강까지 몰렸던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 성공 등으로 인해 역습에 성공해 압록강 근처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통일을 목전에 앞두고 중국이 북한을 도와 파병함에 따라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다. 약 3년간의 전쟁 끝에 남북은 휴전상태로 오늘날까지 남게 됐다.


일부 반미주의자들의 ‘미군·국군 학살’ 주장에 가려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은 전쟁 과정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1950년 6월28일 ‘서울대병원 학살’, 같은해 7월21일 ‘대전형무소 학살’ 등을 저질렀다. 이 외 부상, 굶주림, 질병 등으로 인해 약 350만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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