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지하경제’ 장악한 레드마피아와 ‘모든 폭력의 아버지’ 무기상

▲ 레드마피아 조직원들. 앞에 앉은 남성은 실은 교도관이다.


소비에트연방의 잔해에서 태동한 레드마피아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레드마피아(Red Mafia)는 러시아 등 슬라브계 조직폭력단을 통칭한다. 마약카르텔(Drug Cartel)이 장악한 아메리카대륙, 삼합회(三合會)·야쿠자(やくざ) 등이 버티고 있는 동아시아 대신 유럽 지하경제를 휘어잡고 있다.


전세계 조직폭력단 중 정치권과의 유착 면에서 ‘1등’은 단연 레드마피아다. 레드마피아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러시아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잘 알려지다시피 러시아는 1917년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등 볼셰비키(Bolsheviki. 급진 공산혁명 세력)에 의해 발발한 10월혁명(볼셰비키혁명)으로 로마노프(Romanov) 왕조가 붕괴되고 소련공산당 1당 독재체제로 전환하게 된다.


레닌은 물론 그의 뒤를 이어 1인 독재체제를 수립한 ‘강철의 대원수’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은 ‘자본주의 반동’ ‘미제(美帝) 간첩’을 색출한다는 구실로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제정러시아에서 군권을 쥐었던 군인들도 대거 혹한의 시베리아 굴라그(Gulag.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가 ‘사상교육’을 빙자한 구타 끝에 줄줄이 죽어나갔다. 얼마나 숙청됐냐면 후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치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맞서 싸울 지휘관이 부족하다고 측근이 하소연 할 정도였다.


이같은 피비린내 나는 ‘사회 정화작업’ 속에서 사회 최고 밑바닥의 ‘조폭’이라고 무사할 리 없었다. 제정러시아 귀족과 멘셰비키(Mensheviki)·트로츠키(Trotsky)주의자 등 정치인·학자, 언론인, 군인, 무고한 시민에 조폭과 속칭 ‘양아치’까지 합쳐 스탈린 치하에서 숙청된 인구가 무려 ‘2000만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소련, 중국 등 공산국가들이 조직폭력에 민감한 것은 그들이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인간성을 극도로 말살하는 전체주의 하에서 ‘일탈’은 허가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명의 일탈을 묵인하면 마을이 일탈하게 되고 나아가 도시가 일탈하게 된다. ‘모두가 공평하게 나눈다’는 미명 하에 콜호스(Kolkhoz. 집단농장) 등을 운용한 공산권 입장에서 그 누구보다 ‘이윤’에 집착하는 조폭은 체제를 위협하는 존재인 셈이다.


더구나 ‘공평한 분배’에 공정함을 기한다는 이유로 온 나라의 자산을 한 곳에 끌어모은 뒤 대다수를 ‘착복’하고 극소수만 국민에게 ‘공평하게’ 배급하면서 “이게 다 미국 때문이다”를 외치는 독재자 입장에서는 자기 밥그릇이 줄어들게 된다. 붉은군대, 인민해방군 등 ‘당(黨)의 군대’라 쓰고 ‘합법적 사병조직’이라 읽는 무리들과 국가보안위원회(KGB), 국가안전부(MSS) 등 ‘국가 공인 폭력조직’이 있기에 공산독재 정권으로서는 조폭과 유착할 필요성도 거의 없다.


▲ 푸틴 시대 들어 부활한 붉은군대(Red Army) 행군 퍼레이드.


그렇게 철저히 음지에서 움직이던 슬라브계 조폭들이 양지로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한 계기는 1991년 12월 소련 붕괴다. 하루아침에 나라가 사라지고 러시아 전역은 10월혁명 때와 견줄만한 사회적 혼란에 휩싸인다. 길거리에는 실업자들이 쏟아져나왔으며 자본주의로의 급격한 체제전환 하에서 해외자본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합법적 회사’를 차릴 수 있게 된 레드마피아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반쯤 무정부상태인 상황에서 직장을 잃은 붉은군대·KGB 출신 ‘인간백정’들과 석·박사급 고급인재들을 영입하는 한편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 레드마피아가 러시아 경제를 급속도로 장악하는 가운데 정부도 자의반 타의반 이들과 물밑에서 협력했다. 조폭은 정치인에게 거액을 ‘상납’하면서 동시에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정치인은 조폭의 뒤를 봐주는 전형적인 부패의 형국이 펼쳐졌다. KGB의 후신(後身)인 연방보안국(FSB) 내부문건에 의하면 레드마피아는 한때 러시아 GDP의 40% 이상을 장악했다.


소련 군부(軍部) 쿠데타를 무혈(無血)저지한 영웅이자 보드카 중독자였던 러시아연방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은 이를 저지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소련의 억압적인 체제 하에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러시아 국민들은 올리가르히(Oligarch. 신흥재벌)들의 횡포를 자본주의의 한 단면 쯤으로 이해했다.


이같은 혼란을 ‘정리’한 건 사실상 ‘21세기 차르(Tsar. 황제)’로 등극한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이다. KGB 출신인 그는 실세총리와 대통령을 오가면서 1999년부터 오늘날까지 장기집권하는 과정에서 스탈린에 버금가는 숙청을 실시했다. 많은 올리가르히들이 실종되거나 재산을 압류당한 채 해외로 망명했다. 푸틴의 심기를 건드린 자는 ‘공개처형’됐다. 2006년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FSB 요원을 ‘방사능을 탄 홍차’로 암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6년에는 사병조직인 대통령 직속 ‘국가근위대’ 창설을 공식화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쓸모 있는’ 레드마피아들은 살아남았다.


오늘날 레드마피아는 ‘정권 비호’ 아래 러시아 내부는 물론 전 유럽 암흑가를 지배하면서 마약, 살인, 탈세, 밀수, 인신매매 등 온갖 범죄에 개입하고 있다. 심지어 ‘핵물질’ 밀거래를 한 정황도 있다.


이들은 동아시아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 장소는 다름아닌 ‘부산’이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부산 동구 초량동의 속칭 ‘텍OO촌’에서는 말단 조직원이 취객들에게 ‘권총’ 구매를 권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2003년 4월17일에는 레드마피아 조직 간 항쟁이 벌어져 수산업체 관계자로 위장하고 입국한 한 조직원이 부산 도심 아파트에서 권총에 살해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근절은 어려운 형편이지만 우리 역대 치안당국의 노력으로 이들은 적어도 한국 민간인들에게는 손 대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 자동소총을 든 채 전방을 경계하는 어린이들. 핸드폰이나 태블릿PC를 갖고 노는 여느 문명권 아이들과의 눈빛과는 사뭇 다르다.


“죽음을 판다” 무기상을 상징하는 ‘피의 다이아몬드’


‘군인’은 매춘 등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인류의 직업 중 하나다. 인류는 이미 두 발로 일어서기 전부터 서로의 먹이를 빼앗기 위해 ‘살인’이라는 행위를 했다. ‘지능’을 갖춘 뒤로는 문명의 발전에 따라 채집물, 곡식, 영토, 자본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행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무수한 살육의 과정에서 ‘무기’가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그리고 ‘유통업’도 성행했다.


바로 이 무기 유통업자가 ‘죽음의 상인’이라 불리는 무기상이다. 오늘날 무기거래는 하나의 ‘비즈니스’다. 전세계 모든 나라가 군대를 육성하고 있으며, 동구권 어느 나라에서는 늘씬한 여성모델들이 정장 차림의 바이어들에게 전차·장갑차를 소개하는가 하면,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는 10살도 안 된 남자아이가 흙투성이 군복을 입은 채 자동소총을 겨누고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다.


거기다 무기는 ‘소모품’이다. 무기는 언젠가는 반드시 고장나며 엄청난 규모의 탄약을 필요로 한다. 탄약은 순식간에 소모된다. 월남전에서 미군이 적 1명을 사살하는데 약 2만발의 탄약이 쓰였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탐욕과 복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람은 죽지만 그의 아들이, 그의 손자가 대를 이어 전장으로 나선다. 수요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무기공장의 불빛은 24시간 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그나마 총기 청정지역이라 실감이 안갈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 곳곳의 분쟁·범죄지역에서 ‘수억 명’이 ‘그 짓’을 하고 있다. 무기거래가 천문학적 규모로 흥하는 이유다.


대개 무기거래는 국가 대 국가 단위로 ‘합법적으로’ 이뤄진다. 러시아와의 불곰사업 등을 통해 자동소총, 장갑차, 탱크, 자주포, 순항·탄도미사일 등 무수한 무기의 제조기술을 확보한 우리나라도 세계 톱 수준의 무기수출국이다. 국가 단위에서는 ‘학살’이 아닌 ‘국방’에 초점을 맞추고 무기와 현금이 맞바꿔진다. 때로는 ‘합법적인’ 로비스트가 개입해 원활한 거래를 중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죽여야 하는데 국제사회로부터 낙인 찍혔으면서 자체적 무기생산 역량을 갖추지 못한 세력, 예를 들어 아프리카 군벌이나 소말리아·말라카해협 해적, 각종 반군·테러조직·조직폭력단은 무기를 ‘합법적으로’ 수입하기 어렵다. 무기상은 이같은 ‘틈새시장’을 노리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아프리카 군벌의 경우 현금 대신 ‘다이아몬드’로 대금을 지불하는 경우가 잦다. 시중에 내놓을 경우 원가보다 수십~수백배의 이윤을 챙길 수 있다. 이른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다. 최소한의 윤리나 양심마저 잊은 무기상들로서는 ‘고객’이 이 무기로 대체 무슨 짓을 할 것인가는 관심밖이 될 수밖에 없다.


무기상들은 경쟁상대 제거 등 필요에 따라서는 스스로 손에 피를 묻기히도 한다. 또 국가와 유엔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단히 은밀한 유통조직을 갖춘다. 조직폭력단 개념에 완벽히 부합한다.


▲ 보스니아내전 당시의 합동장례식.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웃이었던 무슬림·기독교인들이 하루아침에 적이 돼 ‘인종청소’라는 이름 하에 서로를 죽이고 죽는 대학살극을 저질렀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참극이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기상은 소련 KGB 출신의 빅토르 부트(Viktor Bout)다. KGB 시절 앙골라 등에서 근무하면서 무기·석유밀매 ‘노하우’를 쌓은 그는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되고 순식간에 ‘고철’ 신세가 돼 창고에 처박힌 채 잊혀진 엄청난 규모의 무기들을 빼돌려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행정부와 사법체계가 사라진 이상 그를 처벌할 주체도, 근거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충성의 대상을 잃고 실업자가 된 많은 고위급 군인들이 그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부트의 무기밀매는 대단히 지능적이었다. 세계 주요국은 물론 유엔 내부에도 ‘협력자’를 심었다. 이 협력자들로부터 자신에 대한 수사정보를 사전입수해 번번히 추적망을 피했다. 합법적 화물선으로 위장한 선박은 물론 자신이 소유한 항공사들도 밀매에 동원했다. 이동 시에는 수십 개의 가명과 여권을 사용했다. 실상 러시아 등 주요국 정부 고위인사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수법들이었다. 이 과정은 2005년 헐리웃영화 ‘로드 오브 워’에서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그가 무기상인으로 활동한 20년간 벌어들인 돈은 ‘순수익’만 ‘60억달러(약 6조7400억원)’에 달한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이 정도이며 주요국 협력자들에게 건네진 돈, 세계 각국 은행에 숨겨진 검은 돈을 합치면 몇 배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미 마약왕들 재산 규모에 못지 않거나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렇게 ‘높으신 분들’의 ‘지갑’을 책임지던 그가 공공의 적으로 ‘찍히게’ 된 계기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의 거래다. 부트는 심지어 9.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에게도 무기를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진다. 전세계인이 발칵 뒤집어져 공분하는 가운데 주요국 고위층 협력자들도 이것 만큼은 손을 쓸 수가 없었으리라. 그들이 ‘입 닦고’ 부트에게 모종의 ‘압력’을 가하거나 ‘약속’을 한 뒤 전화를 끊는 장면을 어렵지않게 그려 볼 수 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무기상이라 하더라도 국가 공권력, 그것도 미국에 대항해서 무사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결국 그는 2008년 3월 콜롬비아 반군조직인 무장혁명군(FARC)과의 거래를 위해 태국에 입국했다가 미국 마약단속국(DEA)에 검거돼 현지 사법당국에 넘겨졌다. 태국 법원은 2010년 8월 부트를 미국으로 추방할 것을 판결했으며 그는 2012년 ‘25년형’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복역 중이다. 하지만 재산몰수는 ‘1500만달러(약 169억원)’에 그쳤다.


부트는 사라졌지만 무기와 사람은 남았다. 그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무기시장은 또다른 무기상들이 갈라먹기 시작했다. 부트가 감옥에 수감된 그해 영국에서는 북한과 아제르바이잔 간 무기거래를 중개하려던 마이클 렌제르라는 인물이 체포됐다. 이듬해에는 나이지리아에서 두 명의 이란인이 무기밀매 혐의로 기소됐다. 올해 8월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이 미 행정부에 부트의 ‘석방’을 요구했다. 피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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