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국인 ‘갑질 가해자’ 인지 못해… 강력한 법치주의 도입 목소리 높아

▲ 양진호 회장 폭행 현장(사진=뉴스타파 영상 캡처).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전 부하직원 폭행사건으로 ‘갑질’에 대해 우리 사회가 재주목하고 있다.


일부 기업인의 폭행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10년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재벌 2세’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운수노동자를 폭행하고 ‘맷값’을 지불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가해자는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피해자를 10여 차례 구타하면서 ‘한 대에 100만원’을 지급해 논란을 빚었다.


우리 사회에는 재벌들에 의한 갑질뿐만 아니라 수많은 갑질이 존재한다. 잊을만 하면 사건이 터져 매년 성토가 이어지고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인해 근절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의 갑질에는 어떠한 유형들이 있고 또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 대한민국에 만연한 갑을관계.


권력자에서부터 소시민까지 ‘갑질의 왕국’


대표적 갑질 유형 중 하나는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쉽게 말해 납품업체에 대한 발주처의 갑질이다. 주요사건은 2013년 N유업의 대리점 상품강매 사건이다.


N유업 사건은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 섞인 폭언을 가하면서 속칭 ‘밀어내기(강매)’를 한 사건이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사측은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제안하면서 은밀한 접촉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보복성 계약해지’를 실시해 물의를 빚었다. 2015년 7월 대법원은 사측에 과징금 ‘5억원’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지만 소비자들은 불매운동을 통해 N유업에 철퇴를 가했다.


‘손놈(손님과 놈을 합친 신조어)’에 의한 갑질도 있다. 주요사건은 2014년 ‘땅콩리턴’과 2013년 ‘라면상무 기내 승무원 폭행사건’이다. 두 사건은 널리 알려진터라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갑질은 회사생활에서의 ‘내리갈굼’이다. 임원 A는 사장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부장 B에게 풀고, B는 과장 C에게 풀고, C는 사원 D에게 푸는 식이다. 언어폭력은 물론 심지어는 물리적 폭력까지 가해지며 여성의 경우 성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갑질도 있다.


‘을(乙) 중의 을’인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일부 소시민의 갑질도 있다. 2014년 7월에는 주차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차를 빼달라는 부탁을 받은 한 중년여성이 해당 직원을 무릎 꿇리고 호통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여성은 이후 폭행혐의로 입건됐다. 2015년에는 대전의 한 음식점에서 비닐장갑 낀 손으로 볶음밥을 볶아주던 직원에게 ‘진상’을 부린 사례도 있다. 같은해에는 구입한지 ‘7년’ 된 장신구 무상수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백화점 직원을 무릎 꿇린 사람도 등장했다.


이같은 갑질이 한국에서 만연한 근본적 까닭은 다양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존비어 문화 영향이 꼽힌다. 한국어만큼 높임법이 발달한 언어는 찾기 어렵다. 자연히 권력자에 대한 복종이 강요된다.


두번째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양반문화’다. 대한민국이 건국된지는 이제 약 70년에 불과하며 문민정부가 들어선 건 20세기 말이다. 그 이전까지는 군사정권이 장기집권한 탓에 이른바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병영문화’가 만연했다. 양반문화는 문민정부 이후에도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한국은 유교문화권이며 우리나라 성인남성 대부분은 군복무를 거친다. 때문에 이같은 병영·양반문화는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 잦은 갑질 끝에 법정에 선 패리스 힐튼 남동생 콘래드 힐튼(왼쪽).


강력한 법치주의로 갑질 다스리는 미국


다만 갑질이 비단 한국만의 악습인 건 아니다. 모든 인간은 권력욕, 지배욕을 갖고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진정으로 그 사람의 본래 인격을 시험해 보려면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줘 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약간의 권력을 쥐게 되면 본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몇몇 독립운동가들이 대통령 취임 후 독재자로 변한 사례는 흔하다.


해외의 대표적 갑질사례는 일본 왕실을 꼽을 수 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천황)의 두 며느리에 대한 왕가의 갑질은 현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평민’ 출신인 마사코(雅子) 황태자비는 아들을 낳지 못하자 왕가의 지속적 압박 속에 한 때 은둔하기도 했다. 키코(紀子)비는 요리사, 시종 등에 대한 ‘내리갈굼’ 소문이 자자하다.


작년에는 한 여성 의원이 자신보다 10살 이상 많은 남성 비서에게 폭언을 퍼부은 사실이 드러나 결국 출당조치되고 했다. 도요타 마유코(豊田眞由子)는 비서에게 “이 대머리야” 등 인격적 모독을 가하는가 하면 갑자기 노래를 부르면서 비서를 비난하는 등 ‘기행’도 펼쳤다. 결국 해당비서가 이를 녹취해 공개함으로써 그의 정치생명은 끝나고 말았다. 그는 공식석상에서는 “여성뿐 아니라 모든 남성도 빛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돼 망신을 더했다.


중국도 갑질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 회사에서는 직원 뺨을 때리고 ‘개’처럼 기어다니게 한 사건이 벌어져 파문을 일으켰다. 한 여교수는 비행기 탑승이 불발되자 공항에서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근래에는 갑질에 대한 의학적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권력으로 인한 뇌의 동조화 현상의 저하’를 주요원인으로 꼽고 있다. 타인 특히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타인의 신체와 정신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행위에 대한 쾌감을 느껴 도파민 수치가 증가해 권력중독에 빠지게 되며, 공격성을 높이는 테스토르테론이 증가하는 게 ‘갑질 증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갑질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잡코리아가 직장인 6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갑질을 당했다’는 응답은 88.6%였지만 ‘갑질을 했다’는 응답은 33.3%에 그쳤다.


미국은 강력한 법치주의를 통해 갑질을 억제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납품업체에 갑질을 행하다 법의 철퇴를 맞고 꼬리를 내린 사례가 적지 않다. 권력자들도 약자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다 적발될 경우 민사소송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당해 인생이 ‘매장’당한다. 패리스 힐튼의 남동생은 ‘땅콩리턴’과 유사한 사건을 벌였다가 ‘징역 20년’ 위기를 맞기도 했다. 때문에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은 강력한 법치주의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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