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기 부회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취임 후 처음으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같은 새로운 경제정책은 경제 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며 필요한 경우 보완 조치를 언급했다. 다음 날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는 “산업생태계가 이대로 가다가는 무너지겠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면서 정부가 산업계 애로를 제대로 경청했는지, 소통이 충분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1년 7개월 만에 듣는 정책 기조에 관한 자성(自省)이다. 야당과 언론,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이념과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빠른 복지 확대에 따른 재정 부실화, 세제 혼란, 탈원전 에너지 정책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경제 현장에서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들의 반발이 격화됐다. 국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문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지지율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북한 김정은의 행보에 따라 남북관계가 잘 풀리는 듯 보이면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반등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떨어지는 추세를 거듭하고 있다.

경제 정책의 변화 조짐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국민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말이 오르내리고 ‘경제 망가진 뒤 궤도 수정에 나섰다’는 식의 지적이 언론에서 나왔다. 문 대통령의 정책 선회가 경기 침체에 따른 지지율 하락세를 의식한 임시방편인지, 아니면 이념에 편중된 정책을 청산하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산업생태계를 제대로 살려 내겠다는 의도인지 아직 불분명하다는 반응이다. 다만 정부가 기업투자와 혁신 등 민간 부문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큰 정책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시장친화적인 규제혁파와 산업계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면 망가진 경제를 수리할 시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비롯한 대규모 기업투자 프로젝트 착공 지원과 숙박공유 등 공유경제활성화까지 16개 중점 추진 과제를 제시했다. 또 소득주도성장을 수정하고 혁신성장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시적인 단발성 사업을 지원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미래성장 동력을 키울 수 있도록 시장여건을 개선하고 민간부문의 경제 활력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폐기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새 성장 동력과 혁신은 정부가 주도해서 되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뛰는 기업과 인재들이 만들어 낸다. 정부는 시장이 투자와 경쟁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산업생태계의 혁신을 이뤄낼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여건은 중점과제 지정이나 신도시 구상 등 단발성 경기부양으로 힘을 받는 게 아니라 정부가 민간부문의 투자와 기술개발, 새로운 산업 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기조를 지속적으로 분명히 보여주어야 조성된다. 법규를 위반하는 노조의 지나친 요구에 대해서는 정부가 단호한 의지로 대처하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망신주기식 과잉 수사나 과도한 세무조사가 없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경기흐름을 감안해 이미 제시된 부동산 대책과 조세 정책도 세심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고강도 대책이 경기침체기에 나오면서 주택 시장은 이미 ‘거래 절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데 시장흐름을 위축시키는 대책을 지속하는 게 맞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세제 역시 경기 흐름을 감안해 시행 시기와 완급을 조정해야 한다. 세금을 많이 걷을수록 시장의 활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세금으로 조성된 재정을 통해 임시방편의 공공 일자리를 무더기로 양산하기 보다 기업투자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정부가 저수지 등에 설치해온 수상 태양광 사업을 사실상 철회하고 태양광과 연계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가동도 화재 등 안전성을 이유로 긴급 중단시켰다. 아직 효과가 미흡한 태양광과 풍력에 의존하려는 에너지 정책을 재검토해 ‘탈(脫)원전’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조치가 이뤄지면 시장에 산업생태계 복원을 알리는 확실한 신호가 되리라고 본다.<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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