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차산업

    [기획] 대항해시대를 이끈 ‘염장고기’ ‘쉽비스킷’ ‘자우어크라우트’

    영양분의 ‘소금고기’ 포만감의 ‘벽돌건빵’ 그리고 질병예방의 ‘양배추’
    기사입력 2018.12.2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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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jpg▲ 청(靑)나라 건륭제(乾隆帝)와의 무역협상에 나선 영국의 조지 맥카트니(George McCartney). 유럽 측 시각에서 그려져 청나라인들의 모습이 다소 부정적이다. 맥카트니가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만 엎드린다”며 황제에 대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거부함에 따라 협상은 결렬된다. 그럼에도 무릎을 꿇은 맥카트니 뒷편의 영국인이 엎드린 모습에서 보듯 당시 영국에서는 ‘차이나파워’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했다.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널리 알려지다시피 글로벌시대는 유럽의 대항해시대(Era dos Descobrimentos)가 시발점(始發點)이다. 중동세력 부흥으로 비단, 도자기, 차(茶), 향신료 등 중국, 인도와의 교역로가 끊길 위기에 처하자 유럽은 총칼을 앞세워 해상교역로를 닦기 시작해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이른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말의 어원이다.

    유럽 각 국은 아시아, 남·북미 등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켰으며 착취, 기술발전, 독립 등 파란만장한 과정 끝에 전세계가 ‘1일 생활권’으로 묶이고 본격적인 자유무역시대가 열린다. 이 시대의 수혜를 톡톡히 입은 대표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오로지 제조, 수출만으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반열에 올라섰다. 한민족 역사상 우리나라가 이같은 부흥기를 맞은 건 사실상 처음이다.

    중국 등 동아시아가 폐쇄적이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 ‘부유했기’ 때문이다. 명·청(明靑) 등 중국 역대왕조는 거대한 영토,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했기에 타국과의 무역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기원전 221년에 이미 진(秦)나라로 통일왕조를 이룩한 중국과 달리 사분오열된 채 상대적으로 자원부족에 시달린 유럽 각 국에게 무역은 필수적이었다.

    특히 중국과의 교역이 그러했다. 유럽에는 생산기술이 없는 비단, 도자기, 차 등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7~18세기 프랑스에서는 중국풍 미술품인 시누아즈리(Chinoiserie)가 귀족층에서 유행할 정도였다. 차는 지금도 영국인들의 필수 기호식품이다. 영국군은 훗날인 1899~1901년 중국에서 일어난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 진압 때 베이징(北京)에 입성하면서도 ‘중국산 홍차’를 마셨다.

    우리 역사책에는 유럽열강의 아시아 침탈만이 부각되지만 서방은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중국을 ‘잠자는 용(龍)’으로 여기며 두려워했다.

    명·청 두 왕조 시기 중국을 찾은 유럽 선교사들은 ‘대륙의 힘’을 본국에 전파했다. 앞서 원(元)나라 때 중국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중국찬양 일색인 ‘동방견문록(Divisament dou Monde)’을 저술해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한다. 이 동방견문록은 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고 한다. 문 닫고 그들만의 사치를 누리느라 정작 시대변화에 뒤쳐진 중국의 실상을 서방이 알아차린 건 1894~1895년 발발한 청일(靑日)전쟁을 통해서다.

    물론 유럽은 그 이전인 1840~1842년 1차 아편전쟁, 1856~1860 2차 아편전쟁 등에서 중국에 승리한 바 있다. 전세계 은자(銀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청나라와의 교역에서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던 대영(大英)제국은 급기야 ‘아편’을 팔아 만회하려 했으며 이에 청나라 조정이 반발하자 전쟁을 일으켜 승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중을 기하며 관망만 하던 유럽은 청일전쟁에서 일본 같은 ‘작은 나라’에게마저 중국이 패하는 것을 보자 비로소 연합군을 구성해 의화단운동에 개입하는 등 대륙을 갈기갈기 찢어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시 역전됐던 유럽과 중국 경제는 약 100년만인 20세기 말 들어 다시금 뒤집혔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로까지 부상했다. 유럽은 경제위기를 겪을 때마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이 달러를 풀어주기만을 바라며 눈치를 보고 있다. 한계를 느낀 유럽은 1993년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키고 중국과 같은 거대한 단일경제권 구축을 도모했지만 근래 영국이 브렉시트(Brexit)를 통해 EU 탈퇴를 선언하는 등 많은 진통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2.jpg▲ 염장고기의 실제 모습. 보는 이에 따라서 다소 충격적일 수 있으니 주의.
     

    소금고기와 벽돌건빵, 유럽인을 바다로 이끌다

    상술한대로 글로벌시대를 연 관문은 대항해시대이다. 그러나 이 때 유럽이 순조롭게 전세계로 뻗어나간 건 아니었다. 혹독한 희생과 고통이 뒤따랐다. 당시 기술로서는 대서양, 인도양 등 거대한 대양(大洋)을 건너 옆 대륙으로 간다는 건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실제로 무수한 사람들이 항해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범선(帆船)을 이용한 오랜 항해에서 무풍(無風)지대나 태풍과의 조우 등 갖가지 난관이 기다렸지만 가장 곤란한 건 뭐니뭐니해도 ‘식량보급’이었다. 식수는 비가 내릴 때마다 받아서 보관하거나 섬에서 보충하면 된다. 하다 못해 럼주 등 술로 얼마간은 버틸 수 있다. 범선을 움직일 바람이 없는 지역, 태풍이 부는 지역에 당도하더라도 식량만 있다면 바람이 다시 불 때까지, 태풍에서 벗어날 때까지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식량이 없으면 이 모든 게 불가능해진다.

    언뜻 생각하면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면 되지’라고 여길 수 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게 ‘현장조달’이다.

    대항해시대 범선에는 어부가 아닌 ‘군인’이 탑승한다. 자연히 조업기술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어디까지나 ‘군함’이기에 조업도구로 선내를 꽉꽉 채워넣는 대신 ‘함포’ 등 무장이 우선시된다. 어부가 아닌 사람이 소량의 그물로 잡아올린 얼마 간의 물고기로 최소 수백명의 수병(水兵)들을 ‘매 끼니’ 배불리 먹일 수는 없다. 무인도에서의 수렵·채집도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유인도(有人島)를 만나 보급받을 날만 기다리며 손 놓다가는 대번에 ‘선상반란’에 직면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뱃일’은 극한의 육체노동을 요구하기에 충분한 영양보충은 필수적이다. 학대가 만연한 특유의 ‘병영문화’로 악명 높았던 구(舊) 일본해군마저 영양보충을 위해 ‘카레라이스’라는 신메뉴를 만들어 수병들에게 배급할 정도였다. 그만큼 수병은 ‘먹을 것’을 필요로한다. 만약 현장조달이 해답이었다면 수천~수만년의 그 긴 시간 동안 군사를 이끌고 장거리원정에 나섰던 그 많은 치자(治者)들이 보급에 ‘골머리를 앓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대항해시대 때 머리를 싸매고 식량보급 방법을 찾던 유럽인들은 두 가지 식재료에 주목한다. 바로 ‘건빵’과 ‘고기’다.

    잘 알려지다시피 건빵이 딱딱한 건 장기보존을 위해 수분을 빼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다에는 해풍(海風)이 존재하기에 약간의 수분이라도 존재하는 건빵은 배에 싣고 출항하면 얼마 못 가 눅눅해져 썩고 만다. 이에 유럽인들은 물기란 물기는 모조리 뽑아낸 ‘쉽비스킷(Ship Biscuit)’이라는 ‘극한의 건빵’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이 쉽비스킷이 얼마나 ‘단단’했냐면 심지어 ‘흉기’로 쓰일 정도였다. 식감이 벽돌과도 같아 자연히 씹는 건 불가능했으며 때문에 물에 풀어 죽처럼 끓여먹었다. 밀도가 높은 쉽비스킷을 물에 풀 경우 양이 대폭 늘어나 소량으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단단한 건빵에도 바구미 애벌레가 들끓는 경우가 잦았지만 수병들은 단백질 섭취(?) 겸 눈물을 머금고 ‘건빵죽’을 먹었다.

    가혹한 육체노동에서 빵만 먹고 견딜 수는 없다. ‘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살아있는 가축을 배에 실을 경우 얼마 못 가 동이 나는 건 물론 배멀미 끝에 줄줄이 죽어나간다. 가축에게 먹일 건초 등을 실을 공간의 여유도 없다. 설상가상 배설물을 방치할 경우 전염병이 돌게 된다. 이에 유럽인들은 선상 육류섭취를 ‘염장고기(Corned Beef)’로 해결했다.

    염장(鹽藏)고기는 이름 그대로 ‘소금을 친 고기’다. 소금이 뿌려질 경우 삼투압현상에 의해 수분이 빠져나가 장기보존이 용이해진다. 그런데 이 염장고기를 우리가 흔히 먹는 ‘소금구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염장고기 제조의 1차 목적은 당연히 ‘맛’이 아닌 ‘보존’이었으며 때문에 세균이란 세균은 모조리 죽이기 위해 말 그대로 ‘소금물’에 푹 절이기를 반복했다. 소금도 모자라 초석(硝石)도 듬뿍 발랐다.

    자연히 이 건 ‘사람 먹을’ 물건이 아니었다. 극한의 짠 맛은 불쾌감을 넘어 ‘재앙’이었다. 색깔은 ‘인분’을 연상케 하는 누런 색이었다. 수병들은 일단 염장고기를 물에 ‘씻은’ 뒤 삶아 먹었지만 식수도 부족한 판에 ‘고기 씻을 물’이 넉넉할 리 없었다. 바닷물에 씻을 경우 짠 맛은 ‘배’가 된다.

    그래서 수병들은 획기적인 ‘퓨전음식’을 개발한다. 쉽비스킷 죽에 염장고기 소량을 풀어 끓인 ‘랍스카우스(Lobscouse)’라는 죽이다. 색깔은 여전히 ‘인분’이었고 맛은 ‘뭣’ 같았지만 여러 걱정 없이 안심하고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에는 충분했다. 이 요리는 2003년 헐리웃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 : 위대한 정복자(Master and Commander : De l'autre côté du monde)’에서 상세히 묘사된다. 궁금하다면 보도록 하자. 영화 자체도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3.png▲ 제임스 쿡(James Cook)과 그의 범선.
     

    줄초상을 해결한 만병통치약, 양배추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빵과 고기를 충분히 배급받음에도 선원들은 여전히 줄줄이 쓰러졌다. 바로 비타민C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괴혈병(壞血病)이다.

    1741년 리처드 워커(Richard Walker)는 기록(출처 ‘역사의 원전’. 바다출판사)에서 선상 괴혈병 확산 현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르 메르 해협을 지난 얼마 후부터 선상(船上)에 하나둘씩 괴혈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래 계속된 항해기간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선원들에게 쌓인 피로, 그리고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여건으로 인해 괴혈병은 매우 급속히 퍼져 4월 말까지는 이 병에 조금도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4월 한 달 동안 센추리언 함상(艦上)에서 무려 마흔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우리는 그 질병이 최악의 상태에 와 있었고 북쪽으로 올라옴에 따라 기세가 수그러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에 있어서는 5월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4월보다 곱절 가까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6월 중순에나 상륙할 수 있었기 때문에 희생자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200명 이상이 죽은 뒤에는 앞 돛대 당번으로 근무능력 있는 사람을 여섯 명밖에 배치할 수 없었다.

    <중략> 가장 특이한 현상은 단 하나의 사례만 가지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것인데 여러 해 전에 아물었던 상처가 이 지독한 병에 걸리면 도로 터져 버린다는 것이다. 센추리언호에 탄 노약자 한 사람에게 가장 놀라운 사례가 나타났다. 그는 50여년 전 보인 전투에서 부상당한 일이 있고 바로 치유돼 그 긴 세월 동안 아무 일 없었는데 그가 괴혈병에 걸려 병이 진행됨에 따라 옛 상처가 도로 터져버린 것이다. 마치 아물었던 일이 없는 것처럼 된 경우다.

    아니, 이보다 더 놀라운 일도 있었다. 부러졌던 뼈가 이어져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것이 괴혈병 앞에서 풀어져 버려 접골(接骨)이 안 된 상태로 되돌아간 경우도 있었다.

    <중략>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건강한 것처럼 보이는 데 자신감을 얻어 그물침대 밖으로 나가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가 갑판에 닿기도 전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갑판을 걸어다니고 약간의 일도 할 수 있던 사람이 힘을 바짝 쓰는 일을 하려다가 한순간에 쓰러져 죽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 항해 동안 많은 우리 선원들이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같은 괴혈병 유행 원인이 ‘채식부족’으로 규명된 건 1753년이다. 육지에서는 채소를 흔히 접할 수 있기에 괴혈병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비좁은 배에는 병력, 무기, 식수, 건빵, 고기와 스트레스 해소용 술에 이어 채소는 미처 실을 여유도, 생각도 없었기에 괴혈병이 크게 유행하게 된다.

    이에 해군 수뇌부는 소금에 절인 양배추인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범선에 싣도록 하지만 선원들의 큰 반발에 부닥치게 된다. “별 걸 다 먹이려 한다”는 지적에서부터 “고기배급량을 줄이려 한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불만까지 터져나왔다. 특히 영국이 그러했다. 축구장 난동으로 유명한 ‘훌리건(Hooligan)’의 사례에서 보듯 영국 서민층 남성들은 ‘남자다움’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다. 또 영국요리는 간소하기로 ‘악명(?)’ 높다.

    선원들의 저항이 커질 경우 선상반란 등 위험이 있었기에 강경책을 쓰기도 어려웠다. 수뇌부가 강경하게 나간 경우는 구 일본해군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에 18세기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바로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인간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쿡은 출항 후 일부러 장교들에게만 자우어크라우트를 대량배급하고 수병들의 것은 확 줄여버렸다. 처음에는 양배추 시식을 거부하며 남자다움을 과시하던 수병들은 점차 “장교만 먹는 걸 보니 귀한 게 틀림없다”며 동요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수병들은 앞장서서 ‘장교와 수병 간 동등한 양배추 배급’을 요구하기에 이르며 ‘채식’은 해군에 정착하게 된다.

    유사사례로 동양에는 각기병(脚氣病)이 있다. 비타민B 복합체 중 하나인 비타민B1 결핍으로 인한 증세로 쉽게 말해 도정된 백미(白米)만 먹을 경우 발생한다. 근대 들어 각기병에 시달린 곳은 이미 여러차례 언급된 구 일본해군이다.

    쌀밥을 먹은 수병들이 나가떨어지는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유학을 다녀온 군의관 다카기 가네히로(高木兼寬)는 장교와 수병 간 식단의 차이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가 해군성 동의를 얻어 수병식단을 혼분식 또는 양식(洋食)으로 바꾼 결과 우리나라와 전세계 많은 나라들에게는 ‘불행하게도’ 구 일본해군에서의 각기병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전투력이 갖춰지자 구 일본해군은 태평양전쟁에서 미드웨이(Midway)해전 등 미국과 일전을 벌이게 되고 그 결과 약 10만명의 미 해병·육해군 장병이 목숨을 잃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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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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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지소미아 파기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 김충식 편집국장|2019-08-23
  • 정부는 22일 한국과 일본간 맺고 있는 지소미아(한일군사안보협정)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긴급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한일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 을 종료하기로 결정하였으며, 협정의 근거에 따라 연장 통보시한 내에 외교경로를 통하여 일본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밝힌 지소미아 파기 이유는 "정부는 일본 정부가 지난 8월 2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한일간 신뢰훼손으로 안보상의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수출무역관리령 별표 제3의 국가군'(일명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함으로써 양국간 안보협력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라며 협정종료를 선언했다. 우리 정부가 일본과 지소미아(군사정보협정)를 체결한 것은 2016년 11월 23일이다. 협정문이 명시한 군사 비밀은 「당사국이 생산하거나 보유한 국가안보 이익상 보호가 필요한 방위 관련 모든 정보」로 양국이 교환하는 정보의 수준을 한국은 군사 2급 비밀(Secret)과 3급 비밀(Confidential)로, 일본은 극비 · 특정 비밀(Secret)과 HI급 비밀(Confidential)로 정해 1급 비밀을 제외한 모든 정보가 교환 대상이다. 이 협정의 발효로 한일 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동향 등 대북 군사정보를 미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은 정보수집 위성 5기, 이지스함 6척, 지상레이더 4기, 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77대 등 고급 정보자산을 통해 얻은 영상정보 등을 한국에 제공하게 되며 한국은 탈북자나 북 · 중 접경지역의 인적 네트워크(휴민트), 군사분계선 일대의 감청 수단 등을 통해 수집한 대북정보를 일본에 전달하게 된다.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청와대는 8·15 경축사를 통해 문 대통령이 유화 메시지를 보냈지만 일본 측 반응이 없었던 점을 주요한 의사결정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말 화해를 하고자 했다면 좀 더 적극적인 메시지가 필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지적을 배경으로 풀이하면 결국 8.15 경축사에서 화해의 제스처는 쇼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애초에 일본과의 문제를 해결이나 봉합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갈등의 확대 심화 내지는 일본과의 결별 자체가 목표였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같은 결정을 공식 발표하기 전에 미국 정부에도 전달했고 그간 미국 측과 충분한 소통을 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한국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실망스럽다며 한일간의 대화를 촉구했다. 국민은 청와대를 믿고 싶다. 그러나 청와대의 설명과 달리 나온 폼페이오의 반응을 보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의문이 생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를 통해 “함께 잘 사는 나라,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를 강조했다. 또 “우리의 경제활동 영역이 한반도 남쪽을 벗어나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나라”를 주장했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말 조차도 최근의 사태를 보면 과연 그 말이 진실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2019년 2.4분기 가계동향(소득부문) 결과에 따르면 하위 20% 소득은 123만5000원, 상위 20% 소득은 942만6000원으로 빈부격차는 더 늘어났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은 고려대와 서울대, 부산대 의전원에 합격한 것이 과연 공정한 기회로 합격한 것인지 의문이다. 또 일본과의 경제전쟁 이어 지소미아 파기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등 전통적 우방인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주국방의 새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말이다.
  • [박현채 칼럼]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른 파생금융상품
  • 박현채 주필|2019-08-23
  • 키코(KIKO) 사태가 빚어진 지 10년만에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이 거액의 원금 손실을 보게 되는 사건이 다시 등장, 파생상품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등 금융회사가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상품을 파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일자, 문제의 파생상품을 설계·판매한 금융사 등을 대상으로 오늘(23일)부터 고강도 검사에 들어갔다. 문제가 된 파생상품은 선진국 금리에 연계된 DLS(파생결합증권)와 이를 모아 펀드로 만든 DLF(파생결합편드)다. 판매 규모는 총 8224억원으로 독일 10년물 국채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과 미국 CMS(달러화 이자율스왑) 5년물 및 영국 CMS(파운드화 이자율스왑) 7년물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상품 등 두 가지다. 이들 상품은 해외금리가 만기까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최고 연 4%의 수익을 주지만 기준치 미만으로 떨어지면 원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잃는 구조로 되어 있다. 독일 국채금리 연계 상품은 현재 판매액 전체가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했고 현재의 금리 수준이 9~11월 만기까지 이어지면 원금의 95%를 잃게 된다. 미국·영국 CMS 금리 기준 상품은 이보다는 손실 폭이 작지만 현재의 금리 수준이 유지될 경우 내년 만기 때 총 손실률이 56%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2008년에 터진 키코 사태와 판박이다. 수익률 상단이 정해져 있고, 손실률은 무한정이라는 것이 똑같다. 단지 키코는 환율 변동에 기초한 것이고 이번에 문제된 상품은 국채 금리변동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번 상품은 글로벌 금리인상, 다시말해 긴축을 예상하고 만든 상품이다. 이에 따라 미국 등 각국 기준금리가 오르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중 무역 분쟁 등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흔들리면서 각국 금리가 급락하자 문제가 터졌다. 파생금융상품은 위험도가 높아 상품을 판매할 때 투자자의 동의를 구하고 신청서류에 고객의 동의 서명을 받는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이 불완전판매 등을 이유로 소송을 하더라도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은 위험성이 높은 상품을 자신의 결정으로 선택했다는 자필 서명과 원고 상당수가 주가연계증권(ELS), 주식 등 위험도가 높은 상품 투자경험이 풍부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 신뢰를 최우선시 해야 하는 금융사가 기대수익이 고작 연 4%에 불과한데도 원금 손실 위험이 최대 100%나 되는 초고위험 파생결합상품을 고객의 동의를 얻었다는 사인 하나만으로 책임을 회피한 채 아무 거리낌 없이 판매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고객 위험을 부담하고 관리하는 금융사 본연의 역할을 방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금융 불안정은 이미 예견됐던 사안인데 금융사들이 금리와 연계된 고 위험 상품을 공격적으로 판매한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도 공식 성명을 통해 “키코와 DLS 사태의 공통점은 비전문가인 기업이나 개인에게 은행이 초고위험의 옵션 상품을 권유했다는 것”이라며 “은행의 이익 우선주의와 금융당국의 허술한 감시와 규제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문제 상품을 설계한 증권사와 판매한 은행, 상품 운용사를 대상으로 상품구조에 문제는 없는지, 오로지 금융사의 수입 증대만을 위한 불완전판매는 없었는지 등을 점검하기 위한 검사에 들어갔다. 금융당국으로서는 마땅히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이같은 검사를 통해 문제점이 있으면 이를 시정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칫 자본시장 자체를 위축시켜 더 많은 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망된다. 사실 파생상품시장은 2011년 '건전화 조치'로 크게 위축됐다. 한국거래소가 관리하는 장내파생상품 거래대금은 2011년만 해도 하루 평균 66조원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45조원으로 32% 가까이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 거래대금은 17조원에서 6조원으로 65%가량 격감, 전체 투자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14%로 쪼그라들었다. 반면에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50%와 36%에 달해 외국인들이 파생상품 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파생상품시장이 또다시 주저앉으면 국부유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게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2011년 건전화 조치로 파생상품 전문가가 대부분 시장을 떠나 이번 사태가 초래됐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숙련된 전문가가 많았다면 DLS가 추종하는 해당국가 금리나 시장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 봐 이번 사태와 같은 심각한 손실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금융사의 과욕과 운용자산 쏠림 현상, 투자자의 자산 배분 어려움 가중 등 저금리가 유발한 여러 가지 금융 시스템 부작용 중 하나로 간주된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불완전판매 문제 등을 해결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참에 금융업계의 '시스템 문제' 자체를 철저히 점검해 근원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보다 주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lt;투데이 코리아 주필&gt;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 [김성기 칼럼] 경제실정까지 ‘반일’로 덮을 순 없다
  • 김성기 부회장|2019-08-20
  • 아베 정권의 무역보복으로 촉발된 일본과의 갈등이 경제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국내에서 반일(反日)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화와 협상의 길’을 언급하면서 경색된 양국 관계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 자극한 반일 감정은 일본 여행 자제와 불매운동으로 위세를 떨치면서 국내정치에도 이른바 ‘친일대 반일 프레임’이 미묘한 변수로 떠올랐다. 그동안 국민 정서를 대변한다고 자부해온 신문과 방송 등 전통 언론은 물론 인터넷과 모바일 동영상까지 반일 정서에 휩쓸린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일단 반일 정서가 일단 큰 흐름으로 가닥을 잡게 되면 언론의 속성 상 눈덩이가 커지 듯 확대 재생산되는 수순으로 굴러가기 쉽다. 최근 일본 여행객수와 신용카드 사용액이 격감하고 맥주와 화장품 유아용품 사무용품에 이르기까지 일본 상품 수입이 크게 줄어 시장점유율이 바뀌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선제 보복에 나선 일본이 오히려 위기로 몰리고 있다는 식의 과장된 전망도 나온다. 지나친 반일 감정의 확산을 경계하는 사설이나 칼럼 등이 가끔 보이지만 아직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반일대 친일 프레임이 굳어지면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 지지율이 반등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뒤 민주당은 ‘물 만난 고기’처럼 반일 감정 확산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나타나 내년 4월 총선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을 담은 보고서까지 공개돼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켰다. 서울 중구는 대로변과 상가에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NO Japan’ 배너기를 내걸었다가 상가 입주자와 주민들로부터 지나치다는 항의를 듣고 철거했다. 반일과 극일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금융시장 혼란과 수출 차질 등 심각한 경제현안은 여론의 관심 순위에서 밀리는 느낌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마찰이 심화되는 세계 수출시장의 여건과 한일간 갈등이 확산되는 추세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현상쯤으로 여기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처한 어려운 현실에 외부변수에 따른 불가피한 요인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시장경제 원리에 역행하는 정책들의 부작용이 누적돼 경제가 활력을 잃은 상태에서 세계수출시장의 불확실성과 갈등이 겹쳐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는 분석이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추진해온 소득주도성장(소주성)과 주52시간 근무제, 탈원전 정책 등을 대표적인 ‘반(反)시장 정책’으로 지목할 수 있다. 게다가 환경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추진한 4대강 보철거 방침 등 국민에게 혼란을 주는 정책이 이어졌다. 국토교통부가 오는 10월부터 서울 과천 분당 등 전국 31곳 투기과열지구 민간택지 아파트에 확대 적용키로 한 분양가 상한제도는 시장 기능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가격통제 제도로 꼽힌다. 토지 감정평가액과 표준건축비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하겠다는 방침인데 당장 해당 지역의 아파트 분양가를 누르는 단기 효과는 있겠지만 길게 보면 아파트 공급을 위축시켜 오히려 기존 집값을 자극하는 부작용이 크다. 건설업계는 가뜩이나 경제가 침체에 빠진 어려운 시기에 정부가 활로를 열어 주기는커녕 위축된 경기를 억누르는 조치라고 반발한다. 야당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단기처방이라고 비난한다. 경제정책 결정에는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부작용도 따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을 미리 마련하고 수정 보완을 거쳐 정책의 강도를 조정하게 된다. 소주성이나 주52시간 근무제, 탈원전 등 정책은 시행과 함께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정부가 이미 수정 보완에 나섰다. 그러나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민간의 요구에 크게 미흡하거나 이마저 현실과 맞지 않아 폐기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반일 감정의 확산에 고무돼 경제 실정까지 어물쩍 덮고 넘어가려 하면 부작용이 고질로 남아 두고두고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된다. 국민이 경제난으로 겪어야 할 수출 부진과 부도, 폐업, 실직의 고통은 깊어지고 자칫 경제적 번영의 기반까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지나치게 선거의 표를 의식한 정책 결정은 부작용을 키우는 악순환을 불러 감당하기 어려운 큰 화를 불러올 위험이 높다는 경고를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lt;투데이코리아 부회장&gt;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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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기자수첩] 홍콩시위, 넋 놓고 보다 한국경제 타격 올 수 있다
  • 김태문 기자|2019-08-21
  •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홍콩 반정부 시위가 새로운 악재로 떠올랐다. 홍콩은 한국의 4번째로 큰 수출상대국이자 중국으로의 수출 우회로였다. 따라서 홍콩 경제가 흔들리면 한국에 타격이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홍콩의 대규모 시위 사태가 중국 중앙정부의 무력개입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으면 한국경제에도 상당한 충격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對홍콩 무역액은 480억 달러로, 이 가운데 수출이 460억 달러(약 56조원)에 달했다. 수출액 기준으로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로 홍콩으로 수출되는 제품의 대부분은 중국으로 재수출되는 상황이다. 우리 기업들이 홍콩을 중계무역지로 적극 활용하는 것은 동아시아 금융허브로서 무역금융에 이점이 있고, 중국기업과 직접 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낮은 법인세와 무관세 혜택도 장점으로 꼽힌다. 주요 수출품목은 반도체로 지난해 홍콩을 상대로 한 수출액이 274억1111만 달러로 60%를 차지했고,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기기와 기계류는 전체 수출액의 82%에 달했다. 이에 따라 홍콩 사태가 격화하면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가뜩이나 쪼그라들고 있는 대(對)중국 수출이 더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중국으로의 수출은 작년 대비 16.6% 줄었다. 한국 기업들이 홍콩을 중국 수출의 중간 단계로 활용하는 건 중국과 직접 거래하는 것보다 법적·제도적 리스크가 적고 무관세 등의 혜택이 많아서다. 2003년 홍콩과 중국이 체결한 포괄적경제 동반자협정(CEPA)에 따라 홍콩은 중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에 관세를 면제받는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린다. 이때 홍콩 내 외국 기업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한국 기업들은 중국 진출에 홍콩을 활용해왔다. 홍콩이 동아시아 금융·물류 허브로서 우리나라 핵심 수출품목의 중국 시장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금융권 일각에서는 향후 사태가 악화하면 금융시장 불안은 물론 중계무역 등 실물 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관련 홍콩 관련 금융투자 상품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홍콩H지수(HSCEI)는 국내 증권사들이 발행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기초자산으로 많이 쓰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발행된 ELS 가운데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포함한 상품(중복 집계)은 39조9072억 원어치에 이른다. ​올해 전체 ELS 발행금액 52조1981억 원의 76.5%다.​ 금융당국은 당장 국내 ELS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ELS는 만기 내 기초자산 가격이 정해진 기준 아래로 떨어질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하지만 홍콩 사태가 장기화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기자수첩] 부끄러운 줄 모르는 그들의 ‘친일가’
  • 권규홍 기자|2019-08-13
  • 지난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일본 아베 내각은 수출규제 조치라는 카드를 꺼내 들어 사실상 우리나라에 대해 경제 전쟁을 선포했다. 국민들은 이에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전개했고, 일본 관광을 취소했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는 자매결연 도시로 지정된 일본의 각 도시와의 교류도 중단하며 일본 정부의 대응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 이후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계속 이어졌고,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조치를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의 보좌관인 에토 세이이치는 지난1일 한국 국회의원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올해 71세인데 한국에 한 번 가봤다. 과거 일본인들이 매춘 관광으로 한국을 많이 갔는데 그런 걸 싫어해서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조사 과정에 참여했지만, 불법적인 정황을 찾지 못했다”고 하여 한국 의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또한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린 국제예술제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정부의 요구에 전시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며 우리 국민의 반일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그릇된 망언은 일본 정치인들에게서만 나오진 않았다. 극우단체인 엄마부대의 주옥순 대표는 지난 1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사죄해야한다”고 말해 시민사회의 공분을 샀다. 또한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반일 종족주의 ’를 통해 “일제의 식민지배 기간에 강제 동원이나 위안부 성 노예는 없었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이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여야할 것 없이 비판이 제기됐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구역질이 난다”고 비판했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비상식적이고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다”고 평가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두통을 유발한다. 역사에 대한 자해행위”라고 비판했다. 계속되는 비판에도 이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으로부터 영업장소를 받아 업자와 수익 일부를 나누는 관계일 뿐이었다”라며 “피해자가 아닌 개인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고 거듭 주장하며 국민적 비판을 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일제치하 36년간 말도 못 할 굴욕을 겪었다. 일본 제국은 우리의 국토를 파괴했고, 수많은 문화재와 자원을 수탈했으며 국민들은 창씨개명과 동시에 강제로 일왕에게 충성을 강요당했고 민족정기는 철저히 유린당했다. 꽃다운 나이의 소년, 소녀들은 전쟁터로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었고, 성 노예가 되었다. 일본으로 태평양으로 동남아시아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강제노역에 동원되었으며 제대로 된 임금 한번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직도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 한 번 받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본 정부의 생각을 동조하며 과거 일은 잊자고 주장하는게 과연 합당한 일일까?  과연 그들은 교단에서, 거리에서, 각종 강연을 통해서 대체 자라나는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일본 식민지배가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논리대로라면, 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기라도 하자는 것일까?  그들의 부끄러운 줄 모르는 망언 속에 사회적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 방송들은 이들의 발언을 열심히 전하며 “한국에서도 아베 내각의 수출규제조치에 동조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해나가며 일본 우익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들의 주장에 대해 “우리들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이후 민족정기 확립을 이루지 못한 후과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주변이 강대국들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이웃 국가들로부터 수많은 압박과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오늘 날의 대한민국은 국가적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누구 때문이라고 얘기하기 전에) 국가적 위기 앞에서만이라도 하나로 일치단결된 국민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대한민국이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잘못된 식민사관을 바로 잡고 당장이라도 그들의 ‘친일가(親日歌)’를 중단시키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기자수첩] 불매운동 본질 벗어난 ‘유니클로 감시’
  • 유한일 기자|2019-08-07
  • 일본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에 나서며 촉발된 불매운동이 심상치 않다. 한국에 자리잡은 여러 일본 기업이 타격을 입은 가운데 일본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는 최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11일 유니클로 일본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 오자키 다케시 CFO(재무책임자)의 “한국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이 이번 유니클로 불매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유니클로 측은 두 차례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유니클로는 이번 운동의 대표 불매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불매운동이 시작된지 약 한 달째로 접어든 지난 2일 취재를 위해 찾은 유니클로 강남역점은 예상대로 한산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대로에 위치했고 3개 층을 쓰는 대형매장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외국인 손님들만이 진열된 의류를 보고 있는 정도였다. 매장은 둘러봤으니 현장 직원들에게 최근 상황에 대해 들어보려 했지만 예상 밖의 반응이 나왔다. 그들은 ‘불매운동’이라는 운을 떼자 “어떤 말도 해드릴 수 없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 매장의 다른 직원들도, 추가 취재를 위해 방문한 롯데월드몰점 직원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매장 한편에서는 직원들이 긴급회의를 하듯이 심각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 취재를 나가기 전 머릿속에 짐작가는 그림이 있었다. 최근 유니클로가 불매운동의 상징처럼 대두한 만큼 매장 내 손님들이 없는 모습은 예상대로 재현됐다. 하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뜻 밖이었다. 적어도 “평소보다 손님이 줄긴 했다”는 말 정도는 해 줄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장 직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최근 본사에서는 각 매장에 ‘매장에 대한 어떤 정보도 말해주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 본사 임원의 실언으로 여론이 악화돼 불매운동의 타깃이 된 만큼 언론 취재 등에 대응하지 않고 몸을 사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직원들은 기자의 신분 확인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는데 최근 유니클로 직원들과 방문객의 사진을 몰래 찍어 인터넷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시해 고발하고 조롱하는 이른바 ‘유니클로 감시’가 생겼다. 이를 자처하는 네티즌들은 인근 유니클로 매장을 찾아 사진을 찍고 ‘이상무’, ‘텅텅 비어있음’ 등의 멘트를 남기거나, 유니클로를 들어가 쇼핑을 하는 손님들을 촬영하고 ‘친일파’, ‘매국노’라고 폄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불매운동의 본질은 상대에 대한 ‘점잖은 항의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일본 기업의 매출에 영향을 주고,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목적이 아니다. 우리의 이번 불매운동이 빛난 이유 역시 국민들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강제가 아닌 자발적 참여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감정적 공격을 펼친 일본과 달리 우리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응을 했다. 우리가 토요타 자동차를 안 타고, 아사히 맥주를 안 마시며, 유니클로 옷을 안 입는 이유만으로 당장 일본이 경제보복을 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다만 우리는 이번 자발적 불매운동을 통해 ‘한국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던 기업을 혼쭐내줬다. 나아가 비상식적 근거로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일본에 ‘한국 국민의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유니클로 감시’ 사례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여준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누군가를 매도하고 공격하는 양상으로 변질되는 순간 지금까지 다져온 내부 결속력이 무너지는건 시간문제다. 더욱이 누군가에게는 불매운동이 생계·생존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들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채 일방적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결코 미화될 수 없다.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향해 활을 겨누는 행동이 과연 애국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 불매운동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머리에 새기고 조금 더 성숙한 접근이 필요한 시기다.
  • [기자수첩] 일본산 불매운동, 그 피해자는 한국도 포함된다
  • 최한결 기자|2019-07-30
  • 최근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우리나라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반도체 사업에 큰 제동을 건지 한 달을 채워간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 3개 항목에 대해 화이트(백색)국가에 지원하는 특권을 없앤 후 다음 달 2일에는 한국을 우방으로 인정하지 않겠단 뜻으로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키로 한 것이다. 지난 4일 규제 발표 이후 약 4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이 제대로 된 답변을 준비해서 가져와야 할 것"이라고 으름짱을 낸 바 있다. 또한 지난 24일(현지시간) WTO 일반이사회에 정부가 파견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팀장은 "일본에게 즉석적으로 일대일 고위급 회담(대화)를 진행하자는 것에 일본이 답변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주 제네바 일본 대표부 이하라 준이치 대사는 "한국이 언급한 조치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진행된 점으로 WTO 의제로는 부적절하다"며 서로 상반된 입장을 되풀이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한 날은 다음달 2일이다. 3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대다수 일본 언론 등은 다음달 2일 각의 결정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도한다"고 말했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이 내려지면 주무대신 서명과 총리 연서 등의 절차를 거쳐 다음달 말쯤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는 '일본은 앞에서 웃고 뒤에서 칼을 꼽는다', '일본은 믿지 못하는 나라'라는 여론이 거세게 불었다. 특히 지난 11일 유니클로의 대주주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오카자키 다케시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일본산 불매운동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안그래도 부정적인 여론에 불을 질렀다. 결국 페스트리테일링은 지난 22일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불매운동을 넘어 일본 여행 가지 않기, 일본산 대체제 구매하기부터 일본 기업을 분류해둔 인터넷 사이트(노노재팬)까지 등장했다. 문제는 한국에 들어온 일본기업이지만 우리나라의 국민들도 불매운동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점이다. 일본산 맥주가 불매운동의 여파로 팔리지 않자 편의점 점주들은 울상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실제 CU에서는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가 발표된 지난 7월 1일부터 21일까지 일본산 맥주 매출이 전월 동기 대비 40.3% 줄어들었다. 재밌는것은 앞서 설명한 노노재팬의 개발자가 뉴스 인터뷰 중 사용하고 있던 사무실 내 키보드가 고가의 일본제로 밝혀져 비판을 받았다. 해당 키보드는 일본의 리얼포스사가 제작한 키보드로 한화로 약 30만 원 대였다. 개발자 본인은 이에 대해 부주의하였음을 사과하며, 다만 이미 사용하고 있는 일본제 제품을 버리는 것과 불매운동은 별개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국가간 개념은 더욱 희석된다. '스파이더 맨 파 프롬 홈'이 지난 2일 개봉하면서 불매운동에 포함되냐 아니냐 논란이 트위터에 일었다. 본사와 일하는 노동자가 미국에 있으니 미국 기업이다, 일본의 뿌리(자회사)를 두고 있으니 일본 회사가 맞다는 식의 논리다. 확실히 말하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배급사가 소니 픽쳐스로 일본의 기업이라고 봐야한다. 공식 홈페이지에도 "Sony Pictures Entertainment is subsidiary(자회사) of Tokyo-based Sony Corporation"라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글로벌 경제시대에는 기업의 국적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당장 대기업들만 보더라도 해외 지사가 많이 존재하며 다자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만큼 자유무역주의에서는 이러한 가치 판단을 조심해야 한다. 또한 이성적 판단이 우선돼야 하는 시점에서 감정적 대응으로 추가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게다가 일본에게 '괘씸죄'를 매긴다면 동북아시아의 중요 요충지인 한반도는 더욱 안보위기에 놓이게 된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다음달 2일 한국을 정말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면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파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지난 18일 정의당 대표는 “일본 정부의 무역규제는 한국을 안보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한국정부는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의 파기를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일본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는 지난 29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요시히데는 "양국 관계가 어렵지만 연대해야만 하는 과제는 굳건히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우리나라로 치면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직위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발언에 대해 괘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이는 일본의 대화 의지로도 엿볼수 있다. 미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연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국무부는 오는 8월로 종료되는 한일 군사정보협정에 대해 "재연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VOA를 통해 지난 18일(현지시간) 밝힌 바 있다. 이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가 독도 인근 한국 영공을 침범하고 북한의 2발의 미사일 도발 등의 현 상황을 봤을 때 한·미·일간 긴밀히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기에 매우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우리나라는 민족성을 잃고 나라를 잃은 슬프고도 치욕적인 과거가 있다. 하지만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지난날 우리 민족이 외교적으로 얼마나 나쁜 선례를 만들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명(明)을 위한 명분만으로 실리를 져버려 청나라에 치욕적인 항복을 한 것도, 을사늑약이라는 잊을 수 없는 상처도 모두 실리보다는 명분에 중요시했던 외교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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