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폭군” “인간의 친구” 모순덩어리 ‘곰의 세계’

▲ 무시무시한 ‘포스’를 뿜어내는 곰.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보양식 대국’ 이달 초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사건이 벌어졌다. ‘웅담(곰쓸개)’ 채취를 위해 한 농가에 갇혀있던 곰 3마리를 시민들이 ‘구출’한 것이다.


이 반달가슴곰들은 강원도 한 농가에서 사육되면서 산 채로 복부에 호스가 꽂힌 채 쓸개즙이 뽑히던 중 보다 못한 시민들 3천639명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사들임에 따라 극적으로 구조됐다. 이들 중 2마리는 청주, 1마리는 전주에 각각 이송돼 비로소 고된 생활에서 벗어났다.


‘곰요리’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도처에 있기에 쓸데없이 조국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 홋카이도(北海道) 등 일본 일부지역에서는 곰고기가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통조림이 판매되고 있으며 핀란드에서는 수렵기간에 한해 곰요리가 허용된다. 미국에서도 ‘곰고기버거’ 등이 팔리고 있다. 중국은 ‘곰발바닥’을 별미로 친다.


‘난폭함’의 대명사로서 한 때 공포영화 단골주역이었지만 테디베어(Teddy Bear), 마샤와 곰(Masha and the Bear) 등 ‘귀여움’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미련 곰탱이’ 등 조롱의 대상이 되면서 심지어 요즘 말로 ‘웅담 셔틀’ 신세까지 겪어야 하는 ‘모순덩어리’ 곰의 세계를 알아본다.


▲ 곰과 사람의 체격차를 실감할 수 있는 사진.


‘맷집’ ‘근력’ ‘민첩’ 3박자의 곰


곰은 포유류 식육목 곰과에 속하는 동물이다. 반달가슴곰 등 소형종에서부터 그리즐리(Grizzly. 회색곰), 북극곰 등 대형종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한반도에서는 한 때 곰이 거의 사라졌으나 복원작업이 이뤄져 반달가슴곰, 우수리불곰 등이 현재 서식하고 있다. 식용곰 수입은 1981년부터 시작됐으나 웅담채취가 동물학대 논란을 일으키면서 1985년 금지됐다. 약제용 웅담거래는 허용돼 국내 사육곰 540마리 중 도축기준(생후 10년 이상)을 충족한 개체는 444마리다. 다만 ‘곰고기’는 불법이니 주의하자.


곰은 호랑이와 함께 한반도에서 토테미즘(Totemism. 원시종교) 대상으로 숭상받았다. 단군신화에만 해도 곰이 사람으로 변한 웅녀(熊女)가 등장한다. 서양 일부 국가에서도 곰은 신성시 돼 북유럽 바이킹 전사인 베르세르크(Berserkr)는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싸우면서 ‘그 기운’을 얻으려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라 ‘불곰국’ 러시아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상징은 곰이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는 마스코트로 곰이 선정되기도 했다.


곰은 흔히 ‘귀여움’ ‘미련함’ 등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식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맹수’다.


그리즐리의 경우 키는 최대 3m, 체중은 최대 600kg에 육박한다. 한 청량음료 캐릭터로 친숙한 북극곰은 체중이 ‘1톤’에 달하기도 한다. 곰은 잡식성이라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며 특히 ‘단 것’을 좋아해 벌목 등으로 서식지가 황폐해지는 오늘날에는 민가를 ‘습격’해 사람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소형종인 반갈가슴곰만 해도 힘은 인간의 근력을 훨씬 상회한다.


과거 극진공수도(極眞空手道) 유단자인 신장 190cm의 윌리 윌리엄스라는 선수가 야수과 싸운답시고 길들여진 아성체 곰에게 덤벼들어 정권과 킥을 수 없이 날렸으나 곰은 ‘티끌 하나 없이’ 멀쩡한 채 오히려 놀아주는 줄 알고 좋아하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과 공포’를 던진 바 있다. 윌리엄스는 상당한 장신에 근육질의 거구였으나 두 발로 일어선 곰이 앞발로 슬쩍 밀치자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사람이 곰에게 접근하는 건 절대금물이다. 전세계 도처에는 길 가는 새끼곰들이 귀여워 접근했다가 뒤따르던 어미곰에게 공격당해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 사례가 적지 않다. 곰의 위력은 2015년작 헐리웃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 실감할 수 있다. 곰은 심지어 사람이 쏜 더블배럴샷건 총알을 맞고서도 돌격해 말 그대로 주인공을 ‘오체분시’ 직전까지 만든다.


▲ 이런 게 현실에서 가능할 리 없다!(사진=게임 ‘철권’의 한 장면).


특명 “곰과 만나 살아남아라!”


이미 많은 곰이 서식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곰과 ‘마주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마주쳤을 경우 ‘죽은 체’ 하는 것은 위험하다. SBS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실험한 결과 곰은 마네킹을 보고 피하기는 커녕 다가와 사지를 찢어버렸다. 곰 입장에서 ‘호기심’에 ‘살살’ 만지는 게 사람에게는 치명상으로 작용한다.


‘미련 곰탱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곰은 상당히 민첩하기에 달아나는 것도 무리다. 곰의 순간 최대속도는 ‘시속 60km’다. 사람 중 가장 빠르다는 단거리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의 최대기록마저 시속 37.6km에 불과하다. 또 맹수는 본능적으로 등 돌리고 달아나는 상대를 쫓아가 물어죽이는 습성을 갖고 있다.


곰은 높은 곳도 곧잘 오르기에 나무 위로 달아나는 것도 현명한 대응은 아니다. 쫓아낸답시고 요란한 소리를 낼 경우 제 갈 길 가려던 곰마저 흥분시켜 도리어 제 손으로 ‘무덤’ 파는 격이 된다. 인간의 근력을 훨씬 초월하는 거대한 몸매에 더해 날카로운 송곳니, 발톱까지 갖춘 곰에 맨 손으로 대적하는 건 설사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이 온다 해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곰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러시아와 쌍벽을 이루는 ‘곰 천국’인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은 홈페이지에서 “곰과 만나지 않는 게 최상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마주친 곰이 자신에게 ‘신경’을 쓴다고 생각될 경우 “나는 먹이가 아니라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사람임을 알게 하기 위해 말을 건다”고 조언하고 있다. 또 먹이를 주지 말고 천천히 ‘옆걸음질’로 멀어질 것을 당부하고 있다. 강력한 화력의 총이 있다면 가장 좋지만 우리나라는 ‘총기 청정지역’이기에 예외로 한다. 상세사항은 NPS 홈페이지(https://www.nps.gov/subjects/bears/safety.htm#Do)에서 확인하도록 하자.


역시 총은 최고라서 2006년 10월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9살 소녀’가 체중 816kg의 불곰을 저격소총으로 잡기도 했다. 다만 총이라 해도 저격소총 등 화력이 월등해야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어설프게 다친 곰은 아예 작정하고 ‘죽이기 위해’ 사람에게 달려들게 된다.


무모하게 곰과 맨손으로 싸워 이긴 ‘희귀사례’도 있다. 올해 5월 초 미국 미시건에서는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를 공격하려던 곰을 본 한 남성이 ‘드롭킥’을 날리고 곰 얼굴을 주먹으로 ‘갈기는’ 등 사투를 벌인 끝에 자신과 강아지 모두 생존한 사건이 벌어졌다. 물론 이는 극히 드문 경우이기에 따라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애초에 곰과 맞서 이기는 사람보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훨씬 많다.


▲ ‘맥주’를 마시며 전우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어린 보이텍.


곰, 나치독일에 ‘반기’를 들다


그런데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은 물론 인간을 ‘동료’로 여기면서 ‘전쟁’에 참전한 곰이 있다. 바로 나치독일에 맞서싸운 자유폴란드군에서 종군한 ‘보이텍(Wojtek)’이 주인공이다.


보이텍이 인간에 대한 친화력을 가진 건 어릴 때부터 사람 손에 길러졌기 때문이다. 보이텍은 1942년 중동에서 어미를 잃은 채 한 소년에게 발견돼 폴란드인 피난민에게 팔려나갔다. 그러나 ‘덩치’ 때문에 먹잇값을 감당할 수 없어 다시 폴란드군에 되팔렸으며 1살의 ‘유년기’였던 보이텍에게 장병들은 보드카 병에 담긴 연유를 먹여 키웠다.


보이텍은 거의 사람 같은 삶을 살았다. 곰 답게 꿀, 시럽 등 단 것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맥주’를 즐겨 마셨으며 ‘불 붙인 담배’도 피웠다. 요즘 같으면 동물보호단체들의 강렬한 항의에 직면했겠지만 그만큼 보이텍이 그 시절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다는 반증 쯤으로 생각토록 하자. 시간차, 문화차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 타 문명권과 내 문명권을 동일시하는 건 그릇된 행위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장병들과 ‘레슬링’ ‘수영’을 함께 즐기면서 살던 보이텍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폴란드가 나치독일에 합병되자 저항군에 소속돼 25파운드 포탄을 나르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이동 시에는 차량 ‘조수석’에 앉아 움직였다고 한다. 보이텍은 심지어 부대에 침투한 ‘스파이’를 적발하는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하사계급’까지 받은 보이텍은 그러나 말년은 그리 좋지 않았다. 종전 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동물원에 수용돼 쓸쓸한 여생을 보냈다. 이따금 ‘전우’가 찾아오면 ‘담배’를 요구했다고 한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조용하게 살던 보이텍은 1963년 12월2일 자연사했다.


다만 누누히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곰을 ‘친근하게’ 봐서는 안 된다. 극진공수도 선수와 싸운 곰이나 보이텍은 어디까지나 ‘길들여진’ 곰이며 따라서 야생곰과 동일시하는 건 무리다. 게다가 아무리 길들여졌다 해도 맹수에 의한 사망사고는 늘 발생하고 있다. 보이텍 등은 곰과 맨 손으로 싸워 이긴 사람처럼 지극히 ‘드문 사례’인 셈이다. 하나뿐인 소중한 인생을 담보로 해서 오기를 부리지는 말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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