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기 부회장

지난 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결정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의 면면을 보면 경제 실정에 매우 다급해진 문재인 정부가 내년 총선을 겨냥한 강수를 던졌다는 판단이 선다. 민생 보다 이념에 편향된 정책에 집착한 나머지 경제가 갈수록 침체로 빠져들자 정치적 노림수를 경제정책으로 포장한 ‘예타 면제’를 앞세워 지역 민심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전국 17개 광역 시 도에서 요청한 32개 사업 가운데 23개 사업(24조1000억원 규모)에 대해 예타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정부가 먼저 나서 지방자치단체에 예타 면제사업을 신청하도록 독려했다. 앞서 주로 일자리 관련 사업에 29조6000억원 규모의 예타를 면제해준 것까지 포함하면 현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결정된 면제 사업의 규모가 53조원에 가깝다.

이번에 면제된 나온 23개 사업 중 남부내륙철도(김천~거제)와 울산외곽순환도로, 서남해관광도로 등 7개 사업은 이미 예타를 받은 적이 있지만 경제성과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문 대통령의 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공약한 남부내륙철도사업은 전임 지사 때 예타에서 탈락했다가 이번에 살아나는 특혜를 받았다. 막상 본인은 최근 여론조작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낙제점을 받은 사업까지 다시 신청을 받아 예타를 면제했으니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학생을 뒷문으로 입학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만큼 경제성이 떨어지고 예산낭비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예타 면제 23개 사업 중 18건 20조5000억원 규모의 사업은 도로 항만 철도 공항 등 SOC(사회간접자본) 관련 사업이다. 8000억원으로 잡힌 새만금국제공항 사업은 경제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중복투자 논란까지 빚고 있다. 무안, 청주, 양양, 군산, 울산 등 전국 14개 지방공항 가운데 10곳이 적자에 허덕이는 처지에서 경제성에 의문이 드는 국제공항을 더 짓겠다는 계획이다. 차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인근에 무안국제공항이 있는데 국제승객 수요가 미미한 새만금 지역에 또 국제공항이 들어서면 무안까지 적자폭이 커질 우려가 높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예산 낭비하는 토건사업에 치중해왔다고 맹렬히 비난해왔다. 예타 부실을 막기위한 법안도 추진했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SOC 투자를 통한 인위적 경기 부양은 하지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SOC사업이 예산낭비라는 생각은 매우 편협한 주장이다. 불필요한 중복, 과잉투자를 피해야 한다는 건 당연하지만 생산과 투자, 물류를 촉진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SOC를 기피할 이유가 없다.

이번 예타 면제가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SOC사업이라서가 아니라 중복, 과잉 투자에 따른 예산낭비 우려 때문이다. 정부도 예산낭비의 소지가 클뿐더러 준공 이후에도 유지 관리 등 적자가 누적될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주요 정책 결정자들의 우선 순위에 경제적 성과와 미래 성장 가능성 보다 정치적 득실 계산이 먼저 자리 매김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적임금인상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 등의 영향으로 고용이 격감하는 등 일자리 참사가 빚어지고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기존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소득이 줄고 일자리를 잃은 국민에게는 매우 미안하다면서도 주요 정책에서 이념의 근간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식이다. 경제 실정의 영향으로 국민의 지지가 더 떨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 예타 면제는 이를 만회해 내년 총선까지 겨냥하겠다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역숙원 사업을 실시하면 우선 지역민심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막대한 예산이 들고 적자가 우려되는 사업이라 해도 계산은 그 다음의 일이다. 언론이 들고 일어나 비난 여론이 대두할 소지도 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현 정부의 결단을 부각시키는 확성기가 될 뿐이다. 이번 사업으로 곳곳에 들어설 공항과 철도, 도로가 정부와 여당 치적을 추겨 세우는 송덕비로 보이는 효과도 기대함 직하다. 아무래도 경제는 뒷전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중단된 원전 건설부터 재개하고 세금을 줄여 민간 투자와 소비를 진작시키는 선순환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정권이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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