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재난에 여야 대립...소방관 국가직 문제도 책임공방

▲ 강원 고성 일대가 화염에 휩싸였다

[투데이코리아=권규홍 기자] 지난 4일 오후 7시경 강원도 고성군 미시령 터널 부근에 있던 개폐기가 터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개폐기의 전선이 빠지면서 발생한 스파크는 주변으로 튀면서 불이 붙었다. 당시 강원도에 몰아닥친 강풍은 작은 불꽃을 큰 화재로 번지기에 충분했다.


최초발견자의 진화와 급히 출동한 소방서의 진화작업에도 불구하고 화재는 강풍을 타고 고성을 비롯 속초로 번졌고, 동해와 인제에서도 발생한 화재는 강원도 일대로 크게 번졌다. 긴급 출동한 소방차들이 불을 끄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청와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전국의 가용 소방인력과 장비들을 강원도로 긴급히 급파했다. 전국 곳곳에서 화재 진압에 투입된 소방차는 820대, 진화차 162대가 동원됐고 소방헬기 14대가 연신 물을 퍼 날랐다.


소방청 외에도 국방부는 강원도에 군 헬기 32대와 육군 장병 16500명을 보내 산불진화에 투입했고, 해군 1함대를 화재 진화에 투입시켰다. 주한미군도 소방 헬기 2대를 지원해 화재진압에 나섰다.


5일 오전 9시, 정부는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고 강원지역에 비상령을 내려 대대적인 산불진화작업과 동시에 생업시설 피해예방, 이재민들의 대피, 부상자들의 치료 등에 총력을 기울였다. 6일 오후 4시, 소방청은 고성, 속초와 강릉, 동해 등에 걸린 소방 대응 비상단계를 하나 둘 해제했다.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 등 5개 지역의 피해면적은 잠정적으로 1757㏊, 전소된 주택은 401채, 창고 77채, 관광세트장 158동, 축산시설 925개, 농업시설 34개, 건물 100동, 공공시설 68곳, 농업기계 241대, 차량 15대 등이 소실됐다. 인명피해는 사망자 2명 부상자 15명(11일 현재)이었고 이재민 722명이 21개 임시 거주시설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소방관 국가직은 언제쯤?

이렇게 국가적인 재난이 한번 휘몰아치자 관심은 소방관들의 국가직 여부에 쏠리고 있다.


9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소방관들의 국가직을 찬성하는 국민이 78.7%로 드러났다. 반대는 15.6%, 모름 및 무응답은 5.7%로 나타나며 소방관의 국가직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론 조사 이외에도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청원이 청원 시작 5일 만에 234,756명(10일 기준)을 돌파하며 소방관의 국가직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소방관의 국가직 여부는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행안위에서 여야는 국가직 문제를 두고 ‘남탓공방’을 벌였다.


▲ 강릉시 옥계면에서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법안소위에 소방관 국가직화 법안이 상정되어있었는데 자유한국당 원내지도부가 ‘통과는 어렵다’고 지시해 의결직전에 무산됐다”며 자유한국당을 겨냥했다.


같은 당의 이재정 의원 역시 “모든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야당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법안 통과가 무력화됐다”며 “소방관 국가직화 청와대 청원 20만을 넘겼으니 국회가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가직 전환에 반대하는건 아니다”라며 “다만,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두고 행안부, 소방청,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간의 의견조율이 미흡했다”고 말하고 “업무역할의 구체적 배분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난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는 정치권

하지만 국가적인 재난상황마저도 정쟁의 도구로 일삼으려는 일부 의원들의 태도가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다.


여야의 대립은 지난 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이석 문제부터 불거졌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참석차 국회에 있었던 정 실장은 산불이 났음에도 불구 국회의원들의 질의를 받느라 자리를 뜨질 못했다.


보다 못한 홍영표 운영위원장은 “강원 산불이 나서 정 실장을 보내 드려야 한다. 의원들의 협조를 바란다”고 했으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유감이다) 그러면 정 실장 질문 순서를 조정했으면 된다”고 말하고 “야당 의원들 먼저 하게 했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맞받았다.


이후 야당이 국민 안전에 무관심하다는 비판 논란이 커지자 나 원내대표는 “정 실장이 당시 심각성을 보고하고 이석이 필요했다면 양해를 구해야 했는데 그런 말이 없어서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고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지난 4일 강원 산불이 나자 자신의 SNS를 통해 “오늘만 인제, 포항, 아산, 파주 네 곳에서 산불, 이틀 전엔 해운대에 산불. 산불 왜 이리 많이나나?”라고 올렸다 강원도민들이 인명피해를 입고 건물이 불에 타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야당 대변인이 이런 게시물을 올렸다는 것에 분노한 누리꾼들은 민 대변인을 비판했고 결국 민 대변인은 게시물을 삭제했다.


하지만 민 대변인은 이 같은 논란 뒤에도 “대형산불 발생 네 시간 후에야 문 대통령이 총력대응을 지시했다. 불이 북으로 번지면 진화하라고 했다. 빨갱이 맞다”는 게시물을 공유한 것이 드러나 누리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같은 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역시 이번 산불을 두고 “촛불정권이 산불정권이 되었다”라는 게시물을 SNS에 올려 비난을 받았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8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런 발언들을 문제 삼으며 “불의의 산불로 큰 피해를 당한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행동을 해선 안된다”며 당원들에게 언행에 주의할 것을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야당 일부의원들의 이 같은 태도에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청와대의 고민정 부대변인은 9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강원 산불화재가 있었던 4일 저녁, ‘신문의 날’ 행사를 마치고 언론사 사장과 술을 마셨다는 등 터무니없는 가짜뉴스가 시중에 떠돌았다”며 “이런 거짓말을 누가 믿겠는가 해서 처음엔 대응하지 않았으나 일부 정치인들이 면책특권에 기대어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 최초 거짓말을 유포한 ‘진성호 방송’과 ‘신의 한수’에 대해 청와대는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로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밝힌다”라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알렸다.


이어 10일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허위조작정보대책특별위원회)역시 이번 강원 산불 재난관련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법적 조치에 들어가기로 했다.


박 의원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발생한 허위조작정보는 정부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노린 중대한 범죄행위이자, 국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 행위다”라며 “충격적인 것은 이번 허위조작정보가 정부의 재난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을 기대하고 허위조작정보 효과의 극대화를 노린 것으로, 이러한 저열한 정치적 의도에 대해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 KBS 1TV ‘오늘밤 김제동’ 방송 화면 캡처


재난 주관방송인 KBS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일 KBS 1TV ‘뉴스9’는 산불보도와 관련 세 차례 현지와 연결 방송을 진행했지만 뉴스가 끝난 뒤 정규 편성된 방송을 그대로 내보냈다. 첫 특보는 오후 10시53분에야 시작돼 11시 5분까지 10여분 정도 진행됐다. 이어 정규프로그램인 생방송 ‘오늘밤 김제동’이 방영됐다. 이후 11시25분이 돼서야 특보 체제로 전환됐다. YTN과 연합뉴스TV는 각각 밤 10시와 10시40분 재난방송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KBS 공영노조는 10일 ‘산불재난 외면 김제동 방송, KBS는 공공의 적이 되었나’라는 제목의 노보를 통해 “재난방송을 해야할 시간에 방송된 ‘오늘밤 김제동’은 국민들을 더욱더 화나게 만들었다”면서 “불 활활 타오를 때 산불 대피요령 안내 자막조차 방송하지 않았다. 재난 주관방송이지만 컨트롤 타워조차 없었다”고 지적했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처럼 우리나라에 손꼽을 만한 사건·사고는 재난에 대한 미비한 대응책과 안전 불감증 등에서 비롯된 일들이 많다.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더 큰 재난을 불러올 수 있다.


엄청난 위력의 자연재해를 인간이 다 막을 순 없다지만 항상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준비하는 자세가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고 우리의 인명을 살리는 길이다.


정부나 국회 뿐 아니라 언론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자연 재난을 정쟁의 도구로만 삼지 말고 보다 발전적인 방향에서 재난안전대책을 다시한번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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