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조국 전법무부장관과 그 가족이 몰고 온 회오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어젠다는 큰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도덕성과 염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이 명확해졌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그 누구의 언행(言行)이건 법을 어겼느냐, 아니냐를 떠나 사회 보편의 가치인 도덕성을 무너뜨렸다면 엄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큰 교훈을 주었다.

두 번째의 의미는 이른바 민주화 운동세력, 586세대에 대한 재해석이 가해졌다는 점이다. 물론 다수의 그들 세력은 민주화에 기여했으며 오늘의 세태와는 전혀 달리 건전하고 맑은 삶을 영위하고 있음은 부인해선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사태 진행과정에서 기득권화한 이들 일부 세력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사실은 서글프다. 자신들만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의 허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언행의 이중성과 내로남불은 과반의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이미 국민들을 좌절과 분노로 이끈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 세력은 똘똘 뭉쳐 저항하고 변명하며 궤변으로 일관했다. 일부 진보인사의 자성(自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태풍속의 찻잔이었을 뿐이다.

이번 사태는 운동권 기득권세력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줬다. 그들은 도덕적이지도 않고, 사회를 책임질 자질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사태가 이 사회에 던진 과제다. 어떻게 작용할지 두고두고 지켜볼 일이다.

언론의 기능 없이 조국사태 밝혀졌겠는가

조국 사태와 언론에 관해 살펴보자. 한마디로 말하면 야당의 힘만으로는 조국 일가의 부도덕과 비리 의혹을 파헤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취재 보도 과정에서 과열도 있었고, 일부 오보도 있었을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큰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과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대의(大義)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가피한 요소로 인정되는 것이 성숙한 민주사회의 기본 원리다. 언론자유의 보장은 언론이 사익(私益)이 아닌 공익(公益)을 우선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켜져야 할 명제다.

조국 옹호에 발 벗고 나선 류시민 작가의 경우 좌충우돌 언론 때리기에 분주했다. 진실에 다가가려는 언론의 보도를 가짜뉴스로 몰아세우고, 중요한 정보를 가진 인사를 취재하지 않았다고 JTBC를 비난했다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KBS기자가 여성이라서 검찰로부터 정보를 흘려 받아 보도한다는 망언을 자신의 유튜브방송에서 내보냈다가 성희롱 파문에 휩싸였다. 자신들의 편인줄 알았던 JTBC와 한겨레신문이 조국 옹호에 소극적이었다며 비난하는 망발도 일삼는다.

누가 누구를 가짜뉴스라고 매도할건가


류시민 뿐 아니다. 여당 지도부는 물론이고 입 달린 국회의원들 다 나와 조국 의혹 파헤치는 언론의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였다. 대통령까지 조국이 장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진솔한 사과보다는 언론에 책임을 묻는 식의 발언으로 언론을 언짢게 한다. 언론은 동네 북인가.

사실 언론만큼 자기통제와 자정(自淨)기능이 강한 조직이 있는가. 진실에 가장 빨리 접근하려는 취재경쟁은 때론 과열일지라도 불가피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진 오보(誤報)에 대해선 자체 내의 엄혹한 반성과 제재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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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릴레오 유튜브같은 방송과 달리 신문이나 방송은 데스킹이나 게이트키핑 시스템을 거치는 겹겹의 통제장치가 작동한다. 일부 관제(官制)언론이나 특정 이념에 치우친 매체 말고는 모두이처럼 건전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아무 제동장치 없는 1인방송 운영자가 기존 언론을 엉터리라고 몰아세우고, 가짜뉴스라고 비난하는 행태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는 지도자들

미국 뉴욕타임즈(NYT)의 아서 설즈버거발행인은 최근 칼럼에서 “사실에 근거해 비판하는 언론이 오히려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전 세계 기자들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최근 몇 년간 세계 50개국 이상의 지도자들이 ‘가짜뉴스’라는 말을 사용하며 언론의 자유 억압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설즈버거는 이어 “언론도 실수를 저지르고, 사각지대가 있다. 때로는 사람들을 미치게 짜증나게 만들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시민으로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조국 사태를 지켜보며 언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본다.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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