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론. (자료사진)

투데이코리아=유한일 기자 | # 하늘을 까맣게 뒤덮으며 마치 새 떼를 연상시키는 수백대의 드론이 호수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미국 대통령을 향해 날아온다. 위험을 느낀 경호원들이 드론을 격추시키려 사격을 가하지만 역부족이다.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한 사상 초유의 ‘드론 테러’가 발생한 미국은 충격에 휩싸인다.
이달 초 개봉한 영화 ‘엔젤 해즈 폴른’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드론 테러를 실감나게 다룬 동시에 우리에게 드론의 위험성을 깊게 각인시켰다.

드론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날개’로 불리며 관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드론 시장은 연평균 17%씩 성장해 2017년 140억 달러(약 16조7000억 원)에서 오는 2022년 305억 달러(약 36조7000억 원)까지 몸집을 키울 전망이다.

우리 정부 역시 드론을 미래먹거리로 삼고 드론 산업 규모를 오는 2026년 4조4000억 원까지 신장, 기술경쟁력 세계 5위권, 사업용 드론 5만3000대 상용화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드론은 장밋빛 전망과 동시에 우리 안보와 안전을 위협하는 명암을 지닌다. 산불 진화, 물품 배송, 농약 방제 등에서 널리 사용돼 온 드론이 다른 한 편에서는 테러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얼마 전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9월 14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정유 시설 2곳이 드론 테러로 인해 불탔다. 이 테러로 인해 사우디 하루 원유 생산량의 절반에 달하는 평균 570만 배럴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사우디와 미국 등은 이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드론을 이용한 대형 테러에 긴장하고 있다. 테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 해외 국가에서는 활주로에 날아든 드론 때문에 항공기 운행이 멈추고 공항이 마비되는 등의 사례가 다수 있다. 우리나라도 결코 안전지대는 아니다.

▲ 사우디 아라비아 부크야크에 있는 국영 아람코 소유의 아브카이크 유전 내 정유시설이 9월 14일(현지시간) 드론 공격을 받아 검은 연기가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민간위성업체 플래닛 랩스 제공)

◆ 원전·청와대 주변 ‘윙윙’

쉬운 조작법, 뛰어난 접근성 등의 장점을 가진 드론이 테러의 용도로 사용될 경우 그 피해는 막대하다. 이미 청와대와 원전 등 우리나라 주요 시설 주변에 불법 드론이 출몰한 사례는 다수 파악됐지만 이를 막을 뚜렷한 법안은 마련돼 있지 않다.

지닌달 국정감사장에서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안티드론 장비인 ‘드론 재머’를 직접 작동·시연하며 원전 안전의 위협요소인 불법드론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 마련의 시급함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원전은 적의 공격 시 타격 목표 1순위에 해당하는 국가 핵심 시설이다.

송 의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 원자력발전소 주변에서 무단으로 비행·출연한 드론은 총 16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13대는 올해 나타났다.

현행 항공법령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 반경 3.6km 이내는 ‘비행금지구역’으로, 반경 18km 이내는 ‘비행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불법드론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 방안은 재밍 기술이다. 하지만 현행 전파법 58조에 따르면 통신에 방해를 주는 설비의 경우 허가가 불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같은 법 82조에 따르면 무선통신 방해 행위에 대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드론 재머가 규제로 인해 사실상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또 지난 2014년에는 경기 파주·백령도·강원 삼척에서 잇따라 북한 드론이 추락했다. 당시 이 드론들에서는 청와대 전경 및 군 시설을 촬영한 사진이 다수 발견됐다. 또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지난해 청와대 주변 불법 드론 적발 건수만 3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 (자료사진)

◆ 사생활 침해 우려...하늘에서 추락하는 드론은 ‘흉기’
드론 위협은 테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카메라가 달린 촬영용 드론의 경우 아파트 단지 내에서 비행하게 되면 사생활 침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고, 드론이 대중화되면서 사고 위험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인천 송도국제도시 한 고층아파트 창문에 드론이 수시로 출몰한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실제 송도 아파트 입주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창문 밖에 드론이 떠 있어 소름이 끼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소음으로 정신적 피해가 크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특히 드론은 유동인구가 많거나 인구 밀집지역 상공을 비행하다 추락하면 대형사고나 재물 손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5월 5일 경북 칠곡군이 주최한 어린이날 행사에서는 드론이 추락해 30대 여성이 코뼈가 부러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드론은 한 인터넷 언론사가 행사 사진·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드론이 차량이나 건축물에 부딪혀 피해가 발생했지만 주인을 못 찾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드론 뺑소니’ 사건도 발생했다.

◆ 정부는 ‘안티드론’ 육성 발표...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

기술의 발달로 사회 시스템이 변하고 있는 만큼 그에 맞는 제도와 법 역시 발걸음을 맞춰야 하지만 드론 관련 법안은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 석유시설 드론 테러가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불법드론 운용을 방어하기 위해 전파법 등에서 금지하고 있는 재밍 장비 도입·운영을 합법화, 국가중요시설을 보호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안티드론 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발의된 법안은 이번 20대 국회에서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공격용 드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안티드론법(전파법·공항시설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올해 국회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어 연내 통과는 힘들 전망이다.

이 밖에도 △2017년 12월(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외 9인) △2019년 1월(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 9인) △2019년 3월(김재원 자유한국당 의원 외 9인) △2019년 6월(정점식 자유한국당 의원 외 9인) 드론 관련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4건 발의됐지만 현재까지 국회에서 잠만 자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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