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심성 공약 대신 재정 개혁으로 신뢰 얻어야

▲ 투데이코리아 김성기 부회장.

보험과 연금 제도는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재난과 사고에 대비하고 은퇴나 장애 발생 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국가가 사실상 주관하는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로 꼽힌다. 그러나 신뢰를 근간으로 장래를 담보해야 할 제도가 청년 세대로부터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지에 균형을 잃은 불안한 재정 상태가 언제 폭탄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은 1977년 직장의료보험제도 도입으로 시작돼 1988년 농어민 지역보험 가입과 이듬해 도시지역 자영업자 가입이 이뤄져 전국민 보험으로 자리 잡았다. 1988년 공적연금으로 도입된 국민연금은 연금관리공단이 관리해 노령연금과 유족연금 장애연금 등을 지급한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제도를 설계할 당시에 비해 인구의 고령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된 데다 수지 균형 등 설계 자체에 오류가 적지 않아 재정 건전성에 의문이 제기된 지 오래다. 젊은층은 지금 당장은 정부지원금과 적립금 등에 힘입어 두 제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그들이 노년에 의지할 10년 20년 30년 뒤까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창업에 뛰어든 소상공인들은 오히려 그때까지 물어온 보험료 합산액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불신한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현금기준으로 지난해 1778억 원의 단기수지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당기수지가 3조2000억 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20조 원까지 쌓였던 적립금이 올해 17조 원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고령 인구가 늘면서 지출이 늘었고 특히 초음파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와 중환자실, 응급실 등 종전 비급여 항목에도 보험을 적용해 보장성을 강화하면서 적자가 급격히 커졌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의 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10조 원의 누적적립금을 활용해 보장성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보장성 강화로 현재의 환자를 위한 혜택은 늘어나고 있지만 건강보험의 장기 재정전망은 불투명하다. 청년 세대는 정부가 보장성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생색을 내면서 재정이 어려워지면 결국 보험료를 올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에게 부담을 떠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지원금을 확대하는 방안 역시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국민연금도 20~54세의 주근로연령대는 급격히 줄고 월 100만 원 이상 수급자는 빠르게 늘면서 재정 건전성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보험료 수입원인 주근로연령대는 2017년 2654만 명에서 올해 2316만 명으로 340만 명 감소한 반면 100만 원 이상 수급자는 2013년 5만1985명에서 올해 23만8287명으로 급증했다. 국민연금 초기 도입된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인해 아버지 세대는 기여분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누렸으나 젊은 세대에게는 ‘더 내고 덜 받는’ 연금이 될 전망이다. 이런 예상에서 젊은 세대의 반발이 적지 않고 ‘궁민연금’이라는 냉소까지 나온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초기 연금제도개편의 골든 타임을 놓쳐 안정화가 어렵게 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회예산처는 지금과 같은 속도로 악화되면 건강보험은 2026년, 국민연금은 2054년 재정이 바닥날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재정이 소진되기 전 보험료율을 대폭 올리거나 지원금을 투입해 공적 기능을 유지하겠지만 이를 부담해야 하는 주체는 미래 세대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2030세대를 겨냥한 청년 정책을 내놓기에 바쁘다. 여당 측에서 느닷없이 모병제를 들고나와 논란을 일으켰고 야당에서도 청년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등 온갖 잡다한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청년층의 불신을 해소할 근본대책에는 미적거리면서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각종 지원금을 늘리거나 비현실적인 제도를 주장하는 포퓰리즘에 의존한다.

정부 여당부터 국민을 현혹할 게 아니라 형평성에 맞게 청년 세대와 기성 세대의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근본적인 정책이 절실하다. 재정을 풀어 수당 몇 푼 쥐어주거나 허술한 단기 일자리 만들어 생색내는 선심성 정책은 되레 재정 악화를 불러 청년 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사탕발림에 불과할 뿐이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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