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증권가 전경



투데이코리아=송현섭 기자 | 금융권은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2019년 한 해를 보냈다. 우선 은행들은 본격화된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종전까지 예대마진에 의존해온 사업구조 혁신에 나서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진전에 따라 AI(인공지능) 도입과 디지털화, 글로벌 진출도 본격화됐다. 하반기 금융시장은 DLF(금리연계파생결합상품)사태로 크게 흔들렸다. 새 국제회계기준 도입을 앞둔 가운데 업황 부진으로 보험사들이 대거 M&A(인수합병)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편집자주>


장기불황 가운데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금리가 1%대로 떨어졌다. 초저금리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만간 기준금리가 0%대까지 하락해 실질 마이너스 금리 진입이 눈앞에 왔다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세계경제의 저금리 기조는 10여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의 늪을 탈출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 양적 완화와 함께 금리를 내리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만큼 금리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과 산업 경쟁력 저하를 막기 위해서라도 추가로 금리를 인하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초저금리에 대한 우려도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장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데 고민이다. 저금리 문제가 최대현안”이라며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디지털 금융혁신과 함께 신수익원 확보차원의 해외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피할 수 없는 중장기적 금융환경 변화로 금리차에 따른 예대마진 위주의 전통적인 은행 영업전략도 수정할 수밖에 없다”며 “금융소비자 역시 혜안을 갖고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 혁신과 해외진출로 활로 모색

당장 금융권에선 예대 금리차로 수익을 거두는 전통적 수익구조대신 본질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디지털 혁신작업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탁월한 국내 ICT(정보통신기술)역량을 토대로 올 한 해 등장한 신금융상품과 서비스들은 소비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이미 보편화된 AI(인공지능)를 활용한 챗봇 서비스는 물론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 도입으로 금융사 직원들의 업무 풍경을 바꿨다. 또한 오프라인 창구를 찾는 고객보다 스마트폰 앱이나 비대면 채널을 통한 업무처리가 대중화되고 빅데이터 사업도 한창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금융사들의 빅데이터관련 사업에선 데이터3법의 입법지연 문제가 걸림돌이다. 정쟁에 휘말려 국회 입법이 지연되자 9개 금융협회와 유관기관들이 거듭 처리를 촉구했지만 연말을 앞둔 아직까지 정치권에선 답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저금리에 부담을 느낀 많은 금융사들은 최근 동남아를 중심으로 대체 신흥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이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금융서비스 수요가 크게 늘고 선진 금융기법 도입을 원하는 현지 금융사들의 이해관계가 맞닿아있다.


특히 해외진출 트렌드는 현지 금융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넘어 각 금융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들간 다양한 협업을 추진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카드사가 현지에서 새 금융상품과 결제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은행의 대출상품과 캐피탈의 할부금융이 동반 진출하는 식이다. 아울러 초저금리 시대는 금리 경쟁력에 기반한 기존 금융상품의 변화까지 요구하고 있다. 물론 투자처를 찾지 못해 금융시장을 떠돌아다니던 1000조 원이 넘는 대규모 부동자산의 향배도 관심거리다.


정부는 일단 초저금리 기조에서 미래 혁신성장 추진을 위해 벤처투자 활성화를 주문하며 금융사들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또한 이달 발표한 주택가격 안정화 대책을 통해 증시 부양에 힘을 쏟을 계획이지만 실물자산의 가치 상승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금리는 일단 은행 예대마진과 순이자마진(NIM) 하락으로 불리하다”며 “보험업계의 경우도 자산운용수익이 감소하면서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주식시장에선 저금리가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며 “대출에 따른 금리부담이 줄어 가계 빚 증가와 부동산 투기 과열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에 국내 통화정책이 양적 완화로 갈 경우엔 리츠(REITs :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시장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순수하게 자산운용 측면에서 본다면 금리에 기반한 기존 상품보다 부동산이 유리하다”며 “초저금리 때문에 증가하는 유동성이 부동산 및 부동산연계 증권으로 몰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DLF 환매중단 사태…후폭풍은 여전

금융투자업계에선 지난 2017년부터 해마다 급성장을 거듭해온 파생결합상품시장이 대규모 손실을 야기하고 신뢰를 상실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 펀드(DLF)와 헤지펀드 운용 1위 라임자산운용이 환매를 중단해 시작된 사태는 심각한 후폭풍을 남기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DLF로 손실을 낸 은행들에게 투자손실의 80%까지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역대 최대 배상비율로 리스크가 높은 상품 영업을 지나치게 독려하고 부실한 내부통제에 불완전 판매한 책임까지 반영한 것이다. 1조 원을 훌쩍 넘는 대규모 피해는 물론 대부분 피해자들이 개인 투자자란 점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앞서 라임자산운용은 지난 10월 펀드 환매를 중단했고 금융당국은 현재도 다양한 의혹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올해 가장 힘들었던 사안을 DLF사태로 꼽을 정도다. 이는 금융사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를 추락시켜 시장주의자인 은 위원장조차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몰고갔다.


이번 사태는 국내 파생금융 시장이 설정 원본액 기준 34조4000억 원대로 줄어들었다. 지난해보다 늘었지만 지난 9월 35조 원대에서 10월을 기점으로 6000억 원 가량 빠진 셈이다. 지난 2016년말 기준 6조6000억 원에서 2017년 12조 원을 넘겼고 작년엔 24조 원까지 급증하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불완전 판매 논란으로 위축된 시장이 내년에 회복될 수 있을지 여부는 시장의 신뢰 회복에 달려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DLF사태로 투자자와 금융사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것”이며 “금융권 전체가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불완전 판매 등 각종 의혹을 해소하고 금융사 차원에선 부실한 내부통제와 고위험성 상품 취급에 대한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9일 보험사 CEO간담회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최악의 위기로 치닫는 보험업계

올해 보험업계는 최악의 실적을 내며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생·손보업계를 통틀어 4∼5개 보험사가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상황이다.


업계는 우선 오는 2022년 새 회계기준 IFRS-17 도입을 앞두고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하는데 각사는 700∼800억 원부터 많게는 5000억 원까지 실탄을 마련했다. 새 회계기준에 따라 저축성 상품을 줄이고 보장성 상품을 늘려야 한다는 점도 보험사 영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급등하고 실손보험에 따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보험료가 오르긴 하지만 업계가 요구하는 인상수위보다 낮아 내년에도 손보사들의 실적이 호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생보사들의 경우 초저금리 기조에서 자산운용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 상위사들조차 실적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업계 전체적으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내시장이 사실상 포화상태”라며 “인구절벽과 소비패턴의 변화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고객층을 제외한 신규 고객이 늘어나지 않고 있는 국내 보험시장의 한계를 지적한 대목이다. 결국 보험업계는 기존 고령층에 의존하는 국내시장의 성장한계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비판받고 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대·내외 악재로 인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서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 보험료를 올릴 수도 없는 처지라서 보험사들의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보험업과 ICT(정보통신)기술이 결합된 인슈어테크 혁신이 시도되고 있다”며 “보수적인 업계 분위기도 창의적인 아이디어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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