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세대 재기, 여론결집 돕는 계기되길

▲ 투데이코리아 김성기 부회장.

지난해 TV조선의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 트롯’에서 불붙은 트롯 열풍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침체된 사회 분위기를 일깨워주는 활력소로 기대를 모은다. 새해들어 후속작 ‘미스터 트롯’이 종편 출범 이후 최고의 시청률(25.7%)을 기록하는 대박을 터뜨리면서 열기를 더했고 다른 방송사들의 유사 프로그램까지 가세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트롯 리듬에 중장년층은 물론 청년층으로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다.

젊음을 충동하는 아이돌그룹의 댄스음악이 TV 방송을 휩쓸면서 전통가요는 홀대를 받아 KBS ‘가요무대’ 등 몇몇 프로그램에서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는 처지였다. 중년을 넘기면서 경제·사회의 흐름에서 밀려나고 가정 내에서도 찬밥이 된 은퇴자와 실직자들은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늦은 밤 쓸쓸하게 흘러간 노래를 시청하는 모습으로 뇌리에 박혔다.

그러나 트롯이 대중음악의 한가운데로 다시 돌아오고 열풍이 사회 전반에 확산하면서 이런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스 트롯’이 발굴한 송가인의 전통가요가 축 늘어져 있던 가요팬들 어깨에 신바람을 넣어주고 ‘미스터 트롯’의 어린 가수와 현역 가수들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선율과 화려한 무대로 시청자들의 귀와 눈길을 사로잡았다. 돌아온 트롯 인기가 나이 들고 소외된 올드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궈 자신감을 회복하고 교감의 폭을 넓히는 계기까지 만들어 주었다.

나이 든 계층이 자칫 언성을 높이다가는 ‘꼰대’로 몰려 경원당하기 쉬운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업에 실패한 자영업자와 중소상인들은 실의에 빠져 할 말을 잃고 하루하루를 술과 한탄 속에 지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부분 은퇴자도 사정은 별로 나을 게 없어 등산이나 바둑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각자 집안 사정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경제·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은 구심점이 약해 여론에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정치권도 나이든 계층의 요구는 외면하거나 비하하기 일쑤다.

이런 사정을 단숨에 바꿔줄 처방이 나오기 어렵겠지만 트롯 열풍이 일말의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는 높다. 실의에 빠진 세대를 위로하는 일은 대중음악이 가진 순기능이며 좋은 선물이다. 한동안 밀려났던 트롯이 다시 주무대로 돌아오면서 올드팬도 자극을 받아 다시 한번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게 마련이다. 이런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침체된 사회 분위기에 좋은 자극제가 된다는 측면에서 더욱 큰 선물로 받아들여 진다. 아직 일할 여력이 있는 은퇴자와 실직자들이 다시 경제활동에 뛰어들고 문화소비에서도 한 몫하게 되면 침체된 사회와 경제 전반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태어난 베이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신노년층’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50대 이상을 ‘신중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에 제한된 현상이겠지만 은퇴자들의 소비성향이 백화점을 비롯한 주요 매장의 매출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고 한다. 일부 당구장이나 음식점들은 최근 경기침체 속에서도 소비 여력이 있는 은퇴자들이 단체 손님으로 찾아와 그럭저럭 유지하는 형편이라는 말도 들린다. 아직 일부 소비성향에 제한된 현상이지만 은퇴자나 노년층의 경제잠재력 총량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드팬의 자각은 국민 판단과 민심을 호도하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억지 논리를 내세워 국정을 외통수로 몰아가는 정치권에 대해서도 경고를 날린다. 노년층 민심은 40~50대와 청년층에 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4월 총선을 앞두고 미묘한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기초연금이나 공공부문 지원 확대에 감격할 것이 아니라 조국 전법무부 장관 사건부터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까지 ‘내로남불’로 가는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독선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 반발이 감지된다. 지난해 10월 광화문 집회 이후 여론조사 등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난 보수의 결집현상이 트롯 열풍으로 촉발된 올드팬의 귀환과 함께 어떤 상승작용을 불러올지 관심을 끈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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