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아침 눈 뜨기가 두렵다. 가슴 조마조마하고, 화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요즘 연일 계속되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TV를 켜자마자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가 부쩍 늘어났고, 감염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는 뉴스를 접하는 국민들은 안타깝고 불안하다.

불안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민들을 화나게 하는 소식으로 이어진다. 문재인 대통령 말씀대로라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이미 진정됐어야 한다. 대통령이 말한 ‘고비를 넘겼다’던 게 언제던가. 귀한 목숨을 잃은 국민이 두 자릿수로 증가했고, 감염자는 1천여 명에 이르렀다.

신천지를 중심으로 바이러스 폭탄을 맞은 대구 경북지역의 어려움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구 코로나’라는 말을 사용하질 않나, '대구 봉쇄'를 입에 올려 대구 시민들의 가슴을 후벼 파 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당정청(정부 여당) 협의한 뒤 여당 대변인 발표이니 아무리 변명해도 ‘봉쇄’를 협의했던 건 사실일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대구에 내려가 사과하는 일까지 빚어졌다. 비상시국에 이처럼 사려 깊지 못하고 치밀하지 않은 행동이 반복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 한심하다.
 
뒷북치는 코로나 대책
 
입만 열면 마스크 착용하라면서 마스크 사려고 2백 미터씩 줄서 기다리다가 허탕 치게 만드는 사회다. 생산량이 부족해서라면 말도 안한다. 이제야 정부는 마스크 공급 대책을 내놓는다.
 
바이러스 감염자가 1천명에 이르고서야 대량 감염의 원인인 신천지 신도 명단을 뒤늦게 확보, 전원 검사한다고 한다. 뭐든 뒷북이다.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국민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는다.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이 ‘코로나가 한국에서 역수입될라’ 걱정하며 적반하장 우릴 조롱한다. 웨이하이나 칭타오 등 중국 각 도시가 한국인 입국 규제에 나섰고, 대응이 서툴다며 우리나라에 훈계하려 든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인을 바이러스 취급하려는 움직임도 우릴 부끄럽게 한다. 아프리카 섬나라 모리셔스에서는 한국 신혼부부 17쌍을 공항에서 곧바로 수용시설로 보냈다. 이스라엘은 우리 국민 400여 명을 그들 전세기에 태워 돌려보냈다.
 
베트남에선 한국 여행객 수십 명을 창고 같은 수용소에 보내기도 했다. 미국은 한국을 여행경보 최고등급으로 격상, 여행을 규제하고 나섰다. 중국과 같은 등급이다. 세계 각국이 우리나라를 코로나 바이러스 취급하고 있다. 코리아 포비아(한국 기피증)가 심각해지고 있다.
 
심해지는 코리아 포비아
 
우리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멈칫거리는 사이 중국, 러시아, 베트남, 북한, 몽골 등 중국 인접 국가들은 일찌감치 출입국을 통제, 바이러스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국과 빗장을 걸고 무역 중단 등 다양한 전염병 확산 방지대책을 편 베트남은 현재 확진자가 16명, 이 중 15명은 완치됐다는 보도다. 발 빠른 초동대처가 국민을 위기에서 보호했다.
 
우리에겐 뭐가 문제인가. 우선 당장 눈앞의 코로나 대책 미흡을 꼽을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문제와 리더십의 문제를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 또 있을지도 모를 유사한 위기상황 대처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중국 눈치 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시진핑 주석의 상반기 방한이 걸려있고,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통한 대북한(對北韓) 관계 개선을 우선시하는 정부의 방침이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중국 출입국 통제를 미적거리게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중(韓中) 교역의 비중 등을 감안, 섣불리 중국과 왕래를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연계되는 문제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국민 생명은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다
 
정부 내에서도 질병관리본부는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 제한’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사태 초기부터 수차례에 걸쳐 ‘대중국 출입국 전면 제한’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나 의사협회는 방역 관련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아닌가. 국민들의 목숨이 걸린 사안과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 경시되는 대처방식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야당, 언론, 신천지 탓만 하다가 사태가 악화하면 뒷북치는 대책으로 뒤따라가는 정부 대응이 이처럼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고비를 넘겼다”고 대통령이 장담케 한 과정도 의문이다. 그렇게 대통령에게 상황 판단을 하게 한 시스템의 문제다.
 
질병관리본부의 건의를 무시하고 터무니없이 낙관케 한 사람이 누구인지 가려내 문책해야 할 터이다.
 
어찌된 일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실책을 한 관계자를 문책하지 않는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 보이지 않는다. 규율을 세우고 재발방지를 위해 필수요인인데도 문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국가 통수권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 아니던가.
 
훌륭한 리더는 위기에 빛을 발휘한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위기에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한 지도자는 역사에 남는다.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죽을힘을 다해 구해야 하는 것이 국가 존재의 이유다. 국격(國格)을 높이고 국민의 자존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지도자의 으뜸가는 책무다.
 
지금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대중(對中) 우호를 위해 국민의 목숨이나 국가의 체면, 국민들의 자존심을 희생하지는 않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대한민국 국민은 아무리 어려운 환난(患難)일지라도 능히 극복할 저력이 있다.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리더가 절실하다. 문 대통령에게는 이 위기가 곧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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