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민족의 긍지로 ‘코로나19‘ 난국을 돌파하자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이른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사태로 온 나라가 수렁에 빠져 두 달이 넘게 흐느적거리고 있다.

17일 교육부가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교 개학일을 4월 6일로 연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사상 초유의 ‘4월 개학’이 현실화됐다.

비단 교육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종교 스포츠 등 전 분야에서 총체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가히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격랑이 대한민국 호(號)를 강타하고 있다. 하루 확진자 규모가 두 자릿 수로 떨어졌다지만 여전히 지역 감염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엄중한 상황이다.

전문가들과 정책 당국자들은 ‘코로나19’사태 장기화 전망을 내놓고 있어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 호는 여기서 그대로 침몰할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반 만년 유구한 역사에서 숱한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있었지만 용케도 이를 극복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우리만의 고유한 민족성과 문화가 뒷받침 되었기에 이러한 성취가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문화민족’의 저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 건축과 불상에서 부터, 그림과 도자기 한 점, 기와 한 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다.

비록 한 발 앞선 중국으로부터 선진 문물을 들여왔으나, 이를 그대로 모방하거나 추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응용, 발전시키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습득, 발전시킨 문명을 후진적인 당시의 왜국(일본)에 전파하는 아량을 보인 사실은 역사적 기록이 웅변하고 있다.

고려시대 상감청자에 대해, 송(宋)나라 서긍(徐兢)의 기록에 ‘금그릇과 값이 같다’고 표현한 것이나, 비색(翡色) 상감청자의 경우, 색깔과 형태미 등에서 세계최고라는 데 국내외 전문가들이 이의를 달지 않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사실, 15세기 이전 이렇게 단단하고 유려한 도자기를 만든 나라는 지구상에서 송나라와 고려 두 나라 뿐이었고, 그 중에서도 고려 청자가 원조(元祖)인 중국을 능가했으니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경주 석굴암(石窟庵) 돌부처의 감은 듯 감지 않은 듯한 가녀린 눈매, 신라 영묘사지에서 출토된 ‘인면(人面)수막새’의 넉넉하고 푸근한 미소야 말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백미(白眉)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그 무엇’이 한국의 미(美)가 아닐런지.

중국에 참으로 크고 많은 석불(石佛)이 있지만, 재질(材質)과 형태미 등에서 석굴암 본존불(本尊佛)을 상대할 만한 것은 없다고 한다. 중국은 사암(砂巖)이나 석회암(石灰巖) 편암(片巖) 등 무른 돌이어서 칼을 사용해 쉽게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우리는 화강암(花崗巖)이라 단단해 칼을 쓸 수 없는 데다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일일이 정으로 쪼아야 하는 고되고 힘든 작업이라는 것.

탑(塔)의 경우에도 우리는 돌탑이 주종(主宗)을 이루지만, 중국은 전탑(塼塔,벽돌 탑), 일본은 80%가 목탑(木塔)이다.

따라서 석물(石物)을 나무처럼 능란하게 다루는 기술은 우리가 단연 으뜸이다.

석가탑(釋迦塔)과 다보탑(多寶塔)을 봐도 그렇다.

석가탑은 정연한 비례(比例)와 수학적인 균형미(均衡美)에다 장식 없이 간결 단정한 남성적 형식미가 빼어난 가장 한국적인 탑으로 석탑 제작에서 정상(頂上)의 경지임을 보여주고, 다보탑은 석가탑을 응용해 다채로운 여성적 형식미를 선보이는 또 다른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다.

이렇듯 우리가 돌을 잘 다루게 된 배경에는 다 이유가 있다.

고인돌(支石墓)의 경우, 전 세계에 산재한 5,300여 개 가운데 무려 3,700여 개가 한반도에 분포돼 있고, 우리나라 지정문화재 2,500여 점 중 700여개가 석조미술(石造美術)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예부터 돌과 더불어 살아온 ‘돌 같은 민족’이라는 것.

어디 돌 뿐이랴!

실존(實存)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긴 형상의 국보(國寶) 금동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의 경우, 팔이 실제보다 길게 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는 기형적인 모습임에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외려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하는 ‘이상적 리얼리티’의 전형(典型)을 실현할 정도이니까.

한국건축은 또 어떤가?

양쪽이 반듯한 대칭(對稱)보다는 비대칭(非對稱)을 선호, 변화와 여유를 주고자 하는 것이 특기할만한 점이라는 설명이다.

창덕궁(昌德宮) 낙선재와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 경주 양동마을 상춘고택 근암고택 등은 이 비대칭 배치를 통해 집 자체의 아름다움 보다 외부공간이 더 좋게 느껴지게 한다는 것.

영주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의 경우, 자연지형(自然地形)을 이용, 측면이 보이도록 변화를 주었다.

이 밖에 회화(繪畵)도 ‘한국의 미’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자화상(自畵像)은 보는 이를 전율케 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부릅뜬 눈, 털끝 하나까지 세밀하게 묘사한 치밀함 등은 추상(秋霜)같은 선비의 표상(表象)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제주도 유배시절 자신을 잊지 않고 귀한 중국의 서책을 구해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고마움의 답례로 그려주었다는 ‘세한도(歲寒圖)’는 절제 단순미가 탈속(脫俗)의 경지를 느끼게 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불과 사흘만에 이상향(理想鄕)을 그렸다는 안견(安堅)의 걸작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고려 불화(佛畵)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물방울관음,일본 천초사<淺草寺> 소장)의 컬러풀한 색감과 단아한 형태,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김홍도(金弘道) 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風俗畵) 등 회화 작품들도 우리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미’를 지켜내기 위해 평생 노력한 불세출의 애국자(愛國者)로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선생과 같은 분이 계셨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3대 부호였던 선생은 사재를 털어 도자기와 미술품 등 귀하디 귀한 각종 문화재 3,000여점을 사들여 미술관을 설립한 시대의 선각자(先覺者)요, 문화재의 수호신(守護神)이었다.

당시 암울한 일제 치하에서 제 한 몸 건사하고 생계유지에 급급한 상황에서 앞날을 내다보고 우리 문화재를 보전하는 데 앞장선 그 혜안(慧眼)과 열정(熱情)에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일찍이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은 “부유함도, 강력한 힘보다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소원했었다.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나라, 그런 ‘아름다운 나라’를 갖고 싶다는 것.

오늘 우리 사회의 ‘아수라(阿修羅)’와 나라의 ‘난맥상’을 볼 때, 국민 전체가 ‘정신 재무장 운동’을 통해 새로운 틀의 ‘문화국가‘를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정직하고 법을 잘 지키는 사회, 예의와 도덕이 있는 사회, 굳건한 공동체의식으로 뭉친 사회, 대대손손 자손이 번성하는 사회, 그리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한국적인 멋과 아름다움을 창조하며 ‘문화민족’의 DNA를 물려준 우리 선조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류석호 강원대 외래교수>

필자 약력
△강원대 외래교수
△전 조선일보 취재본부장
△변협 등록심사위원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