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법 운운하지만 필요하면 스프링쿨러 당연히 설치해야 ...

<정우택 논설위원>
대한민국의 정부 종합청사에 스프링클러가 없다? 퀴즈가 아니다. 21일 새벽에 불이 난 세종로 정부 종합청사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구닥다리 장비인 소화기와 소화전이 전부였다. 한심하고 걱정될 뿐이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된 지 열흘 만에 세종로 정부 청사에서 불이 났다. 21일 0시30분경 정부 청사에서 불이나 5층과 6층 일부를 태우고 35분 만에 진화됐다. 다행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세종로 청사 5층에는 국무총리실과 통일부 사무실이 들어있고, 6층에는 대통령 비서실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전기누전, 전열기구 과열과 담뱃불이 화재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세종로 청사 화재는 늘 반복되는 문제가 다시 한 번 반복됐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소화시설이 문제였다. 1급 국가 시설임에도 화재 시 자동으로 물을 뿜는 스피링쿨러 시설이 없었다. 소방 관계자는 30년 전에 청사 건물을 지을 때는 스프링클러 설치 규정이 없었다고 '말 같지 않은 말'을 했다.

당시에 규정이 없어서 그냥 지었더라도 스프링클러가 필요하면 당연히 설치했어야 하지 않을까? 세종로 청사는 1999년에도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때도 이런 지적이 있었다. 1급 국가시설에 소방법 운운하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한마디로 국가와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더 한심한 것은 비상시 보고 체계다. 보도에 따르면 화재가 발행하고, 소방 당국에 의해 화재가 진압된 후에 행정자치부장관에게 화재 사실이 보고됐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이 정도로 안이하게 근무하니 불이 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정부 청사는 금연구역인데 행자부 장관은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는 얼빠진 말을 하고 있다.

숭례문이나 정부청사 화재에서 보듯이 화재예방, 실제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해당 공무원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어떻게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신속한 보고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숭례문이나 정부 청사는 중요 국가 시설이 화재와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의 일부일 뿐이다.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수십만 명이 바글거리는 지하상가와 대형 쇼핑몰, 도심 주민의 대부분이 거주하는 고층 아파트와 고층 사무실... 모두 한 순간의 실수로 큰 재난을 가져올 수 있는 시설들이다.

정부와 소방당국은 중요 건물과 시설에 대해 화재예방과 효율적인 화재 진압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슨 일이 터지면 소방시설을 점검한다고 법석을 떨고,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며 까맣게 잊는다면 국민들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태안 앞바다의 기름유출 사고, 숭례문 방화사건, 세종로 청사 화재 사건 등은 모두 자연 재해가 아닌 인재로 새롭게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좋은 징조가 많아야 하는데 시끄럽고 걱정스러운 일이 자꾸 터져서 하는 말이다.

이제 새 정부가 탄생하는 것을 계기로 공무원들도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형 사고와 화재처럼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그게 국민에게 봉사하는 길이다. 정우택 논설위원 jwt@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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