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2일 알려진 가운데, 조야는 이 소식에 대한 설왕설래로 시끄러웠다.

아마도 그 논란은 방송통신위의 중차대한 위상과, 최 내정자의 성향과 포지션에 대한 우려가 더해진 복합적 상승효과 덕일 터이다.

방송통신위는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를 본보기로 해서 만든 기구로, 정부의 방송·통신 정책을 책임질 기구다. 구체적으로는 KBS 이사 추천,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의 선임, 방송사 인허가 등의 권한이 이 기구에 있으며, 새 시대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는 IP 티비 역시 이 기구에서 정책의 큰 틀을 맡으며, 인터넷 이용 문제도 관장한다. 이들 부문의 인허가도 갖고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즉 인쇄매체를 제외한 언론 영역, 특히 기술 진보에 따라 점차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영상 문화 영역에 대한 정책을 총괄하고 주요 인사권을 행사하는 속된 말로 '힘센' 기구다.

한편, 최 내정자는 종이매체인 '동아일보'의 경력이 있으며, 여론조사기구인 '한국갤럽'에서 일한 바 있다. 그러나, 방송 실무에 대해서는 밝지 못한 것으로 전한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깊은 인연이 있는 이른바 '6인회 멤버'다.

언론단체들이 이번 인선을 비판하는 것은 이러한 기구 특성과 그의 배경 때문인데, 방송을 잘 모르는 인사가 방송정책을 쥐고 있는 게 온당하냐는 논란과 함께, 방송통신위를 정치적으로 '장악', 즉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을 비롯한 주요 언론 기관장을 줄줄이 '정치적으로 임명'해 나갈 가능성이 예견된다는 것이 우려의 골자라 하겠다.

이런 와중에, 최 내정자는 "방송통신위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킬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는 한편, "전문성은 없으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조정자 역을 할 수 있다"고 포부를 공개하고, "전문성 문제는 참여인사들을 적극 활용, 해결하겠다"고 부연설명했다.

지금 이 대목에서 우려를 내놓는 이들의 말이 적중할지, 혹은 최 내정자가 초심을 지킬지에 대해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기서는 시각을 잠시 돌려, 방송에 문외한에 가까우며 정권의 최측근으로 뒷배가 제법 막강한 그가 오히려 방송통신위를 진정으로 살릴 인물이 되기를 당부하며, 지난 정권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닮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강 전 장관은 검사 경력이 없는 판사 출신으로, 나이나 사법시험 기수에서도 파격적으로 어린 터에 법무부장관에 기용됐다. 법무부와 검찰을 개혁하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암묵적 요청이 짙게 깔린 인선이었다. 그녀의 개혁 드라이브는 검찰 고위인사들을 내내 불편하게 했으며, 일선 검사들에게도 어느 정도 불안감을 줬고, 결론적으로 검찰과 법무부의 문화를 어느 정도 고쳐놨다.

그러나 그녀를 전직 장관으로서 훌륭하다고 추켜세우는 것은 검사들을 '검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닦달(?)했다든지, 혹은 일부 고위 간부들을 인사이동이라는 수단으로 몰아세워 법복을 벗고 스스로 걸어나가게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녀의 과단성은 이런 경우에도 빛났겠지만, 때때로 당시 열린우리당과 맞서 검찰과 법무부의 온당한 항의를 전할 때 빛났다고 생각된다.그리고 강 전 장관은 인사권자인 노 전 대통령의 의중과는 다른 '대북송금 특검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정도로 법무부 수장으로서 소신도 발휘했다.

검찰과 법무부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개혁을 늘 강조했지만,그런 동시에 검사들과 직원들에게 부드러우려고 노력했으며, 바쁜 일정 속에서도 교정 공무원의 순직 시에는 유가족에게 신경을 써주는, 조직 수장으로서의 배려도 잊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이기에 떠나는 때에는 그저 '점령군'이 아니라 아쉬움과 박수 속에 '장관님'으로 떠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사료된다.

최 내정자의 경우도 이같은 강 전 장관의 임명 초기와 같지 않은가 한다. 지금은 방송을 모르고, 정권 실세로서 점령군처럼 지명된 처지임을 스스로도 부인하지는 않을 터이다. 방송 분야 개혁에 목마른 이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사납게 닦달이라도 하려는 생각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배경과 초심 외에도, 강 전 장관이 그랬듯, 조직을 마냥 다그칠 것만이 아니라 챙기고 이해하며 진정으로 체질변화를 추구할 때 최 내정자 역시 박수받으며 떠날 명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방송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항상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조직을 활성화하고 해당 산업에 구태를 씻어내며, 그런 한편, 방송부문과 방송통신위 직원들의 온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귀를 열면 진정으로 소통하는 수장이 될 수 있을 터이다. 만에 하나, 이 대통령이 부당한 방송 장악의 의도를 내비칠 때가 있다면, 최 내정자가 가장 가까운 측근이자 당선 공신이기에 가장 강력한 방패막이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다.

요는, 최 내정자가 방송통신위의 위상과 의길르 가장 확실히 죽일 수도, 가장 확실히 살릴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과제이자 갈림길이겠으나, 특정 정권에 봉사한다기 보다는 국가와 국익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판단하면 크게 틀린 길을 가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체 최 내정자가 강 전 장관보다 못할 게 뭐란 말인가? 올 때는 점령군처럼 미운 모습으로 왔다 해도, 물러갈 때는 부하직원들에게 진정 아쉬움을 남기며 박수받으며 떠나는 존경받는 고위공직자가 하나 더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임혜현 기자/투데이코리아 정치부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