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판론자들에 의해 제기돼온 이른바 협상 개시의 '4대 선결조건'이라는 표현을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수용했다.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서 한미 FTA를 제대로 맺는데 힘쓰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노 대통령은 이날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FTA 협상추진에 장애가 되는 불필요한 진위 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윤대희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은 전했다.

4대 선결조건 논란 전개 과정
4대 선결 조건 논란은 스크린쿼터 감축,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건강보험 약가 현행 유지,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적용 유예 등을 말한다.

양국간 협상 개시 논의가 구체화된 작년 9월 이후 올해 1월 사이에 정부가 내린 이런 결정들에 대해 FTA 비판론자들은 미국이 제기해온 주요 통상현안 요구를 협상 개시 전에 수용, 협상력을 훼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지적을 해왔다.

특히 작년 9월 대외경제위원회 문건에 선결조건이라는 표현이 사용됐고 우리 정부가 미국의 이런 요구에 대해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사실도 미국내 문건을 통해 확인되면서 비판론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안별로 대응한 것이고 스크린쿼터 감축을 제외하면 실제로 완전히 해결된 내용도 없는 만큼 '선결 조건'은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계속돼왔다.

'선결조건' 표현 수용 배경
정부의 주장처럼 4대 선결조건은 해묵은 통상현안에 대해 현안별로 대응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쇠고기 수입 재개의 경우 축산물 교역기준을 관할하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내 광우병 발생이후 광우병 발생국산 쇠고기 교역에 대한 기준을 완화해 우리 정부로서는 계속 수입을 거부할 명분이 약했다.

OIE 기준 완화 자체가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이라는 영역이 국제사회내 힘을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고 형식 논리로는 미국의 수입 재개 요구를 무조건 거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재개 결정을 줄줄이 내렸다.
이처럼 깊게 들여다 보면 각 현안들은 불가피한 국내외 여건을 반영해 대응한 성격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미국이 그동안 우리 정부에 FTA 협상의 개시 조건으로 이들 현안의 해소를 요구해왔고 완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스크린쿼터 감축 등 성의 표시를 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협상 개시를 위한 조건을 우리측에 요구했고 어느 정도는 관철시킨 것인 만큼 굳이 따지자면 미리 해결했다는 의미의 `선결(先決)'까지는 아니더라도 협상 개시의 전제 조건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협상 개시의 조건에 대해 나름대로 성의표시를 한 것을 처음부터 정정당당하게 밝히지 않고 무조건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한 대가로 한미 FTA 비판론자들과의 논리 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이날 표현 수용은 하나의 객관적 사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불필요한 논란을 지속하기 보다는 협상의 정당성을 제고해 FTA 협상을 제대로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윤대희 수석은 "국익 손상 등을 전제로 협상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변함 없지만 이 문제가 앞으로도 불필요하게 진위논란으로 발전되는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통상의 투명성 제고 계기 삼을듯
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협상 전략에 장애가 되거나 협상 상대방의 상호 신뢰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문서를 공개할 것도 지시했다.

FTA 협상 진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급적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대외 협상보다 대내 협상이 어렵다는 통상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말이다.

국민을 상대로 설득하는게 중요하다는 뜻이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국민에게 최소한 정직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 이른바 중국과의 `마늘 분쟁'을 타결지으면서 2003년 이후에는 중국산 마늘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한 내용이 제대로 공표되지 않아 홍역을 치렀던 사실은 통상의 투명성이 중요함을 역설해준다.

마늘 세이프가드 문제로 한덕수 당시 청와대 수석이 공직을 물러나기도 했다.

공직에 복귀해 이달 18일 퇴임한 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마늘협상과 외환은행 문제의 기본 골격은 같다. 과정이 억울한 면이 있다"고 말해 국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린 공직자가 문책을 당한데 대해 섭섭한 마음을 표시했으나 문제의 핵심은 통상 협상 경과를 둘러싼 투명성이다.

한 통상 담당 관료는 "대외 문제도 있지만 통상을 둘러싼 절차 투명성을 더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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