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형 지명절차 문제제기..시종 청문진행 발목잡아

한 냉온탕 오가다 표결불참..민주.민노 동조로 무산

첫 여성 헌법 기관장 탄생으로 기대를 모았던 전효숙(全孝淑)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가 사흘동안 진행된 여야간의 지루하고 날선 공방 속에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국회는 8일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전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한나라당이 인준표결 불참 선언과 함께 인사청문특위의 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면서 인준안을 본회의에 상정조차 못했다.

전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지명절차의 적법성 여부를 둘러싼 법리 공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파행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후보자가 헌재 소장으로 지명된 후 헌법재판관을 사퇴, 민간인 신분이 된 것이 청문회 첫날 첫 질문을 통해 불거진게 청문회 내내 순탄한 진행의 발목을 잡았다.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의원이 논란의 불을 댕겼다. 조 의원은 첫날인 6일 오전 청문회 시작과 함께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헌재 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임명한다'는 헌법재판소법 12조를 근거로 "민간인인 전 후보자에 대해선 헌법재판관 재임명 절차를 밟는 것이 우선"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것.

한나라당도 이 같은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는 수준에서 넘어가는 듯 했으나 점심시간에 `위헌소지가 있다'는 일부 헌법학자들의 유권해석을 접한 뒤 사후 책임론 등을 우려한 듯 돌연 강경기조로 산회, 오후 청문회를 보이콧하는 `극약처방'을 감행했다.

정부.여당이 위헌소지를 없애려고 청문회 이틀째인 7일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전효숙 헌법재판관 및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으로 보완.수정해 제출하고 한나라당이 이를 수용키로 하면서 논란은 매듭지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엔 한나라당 내부 이견이 청문위원들을 다시 강경쪽으로 내몰았다. "청문회를 그냥 진행하자"는 원내지도부와 "이대론 안된다"는 최고위원회가 정면충돌하면서 입장정리에 난항을 겪은 것.

논란 끝에 청문회 참석으로 결론이 나긴 했으나 한나라당 청문위원들은 예정보다 4시간 늦은 오후 2시에야 청문회에 임할 수 있었다.

청문회 마지막 날인 8일도 여진은 계속됐다. 정부.여당이 보완수정해 제출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의장이 본회의 의결 절차 없이 인사청문특위로 넘긴 것이 적법한가를 놓고 공방이 벌어졌고, 국회의장의 월권 시비로까지 논란이 확대됐다.

결국 한나라당은 `청문회 원천무효' 방침을 재확인한 뒤 오후 의총에서 표결불참과 함께 청문경과보고서 채택거부 입장을 정리했다. 임명동의안의 본회의 상정을 원천적으로 막으려고 상정의 전제조건인 청문경과보고서 채택조차 못 하게 한 것.

물론 청문경과보고서 없이도 우리당이 국회의장으로 하여금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하도록 하는 `외길수순'은 있었으나, 잠재적 `원군'이었던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처리연기'를 요청함에 따라 직권상정마저 어렵게 됐다는 후문이다.

한나라당이 인준표결 불참을 결정한 데는 표결참석시 임명동의안이 통과, 혹은 부결되든 정치적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과시에는 반대당론을 정한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 당내 분란 가능성이 우려되고, 부결시에는 헌정 사상 첫 여성 헌재소장 탄생 저지와 함께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여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민노당은 여당의 단독처리에 대한 정치적 부담감 때문에 막판에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1 야당의 불참으로 명분이 약해진 가운데 자칫 `실속'도 못 챙기고 여당의 들러리만 서는 꼴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전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가 일단 14일 본회의로 연기되긴 했지만 처리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나라당이 추후에도 표결에 참석할 가능성이 낮은 데다 민주.민노당 역시 여당의 단독처리에 대한 부담감을 쉽게 떨칠 수 없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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