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루소는 선거제도에 대해 불신이 깊었다. 그는 영국의 대의 제도를 보면서 “주권자들인 국민은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사람들은 투표할 때만 주인일 뿐, 다시 다음 선거까지 노예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고 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 대의제는 혹시 이런 모습일까? 아마도 우리 나라에 민주주의가 처음 이식됐을 때에는 이런 루소의 언급과 같은 모습이었을지 모르겠다. 임금님이 다스리던 국가에서 선거란 낯설었다. 더욱이 오래도록 고무신과 표를 바꾸는 국민 수준도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니었다.

이어서 들어선 정권들 역시 국민의 표를 적절히 통솔하는 법을 알았다. 돈과 지역감정, 그리고 연줄을 이용하면서 정치인들은 표심을 자유자재로 구워 삶은 바 있다.이런 터에 “선거로 심판한다”거나 “선거로 정치인들을 다스린다”는 것은 이상적인 대전제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후 우리 나라 대의제의 틀은 변했다. 지난 87년 군사정권 잔재를 뿌리뽑고자 여소야대를 한 이래 우리 나라 국민들의 표를 사용한 정치인 통제는 그 막이 올랐다. 특히나 이번 4월 9일 총선, 뚜껑을 열어본 여야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크게 웃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통합민주당은 비례대표 포함 81석, 당초 대선 패배 후 당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던 사정을 생각하면 선전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 주요 지도부가 등원에 실패했고, 한나라당은 개헌선이 깨진 것은 물론, 모든 상임위에서 다수를 점할 수 있는 실질적 다수(167석 이상)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로써 당내 친박 및 당을 뛰쳐 나간 친박 인사들과 친이 정치인들 사이에 연대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친박 대 친이 갈등이 다시 한 번 불붙을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미 호남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방 행정조직과 지방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이어 국회까지 수중에 넣어 주도권을 잡고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 한나라당 단독의 법안 통과는 물론 대통령의 공직 인사안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대운하 건설 등 주요 현안을 단독으로 밀어붙이는 건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참으로 절묘하다. 마치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장악했던 17대 국회를 생각하게 한다. 탄핵 열풍 후에 국민은 당시 열린우리당에 표를 몰아 과반수 제 1당을 만들어 주면서도, 절대 우위를 누릴 힘까지는 주지 않았다. 결국 152석이던 열린우리당은 다수이면서도 독주는 하지 못하고 사안마다 한나라당 등의 견제를 받았다.

이번도 그렇다. 국민들은 진보민주세력의 실정을 비판해 대선에서 패배라는 쓴 잔을 건넸지만, 적어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다시 한 번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 밑천은 이번 총선을 통해 허락했다.
한나라당에게는 경제부흥의 준엄한 의무와 함께 청와대 열쇠를 내주었지만, 그와 함께 국회에서 일을 소신껏 할 수 있는 의석만 얹어 줬다.

국회에 앉아있는 선량들은 지역구민들, 더 크게는 국가 주권의 행사자들을 그저 표를 찍어주는 거수기 정도로 볼지 모르겠으나, 이렇듯 이제 우리 유권자들은 국회를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총명하다.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는 코드로 진보민주보다는 친박을 고르는 게 효율적임을 간파하고 있으며, 둘로 갈라지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지만 민주노동당에는 의석을 허락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진보신당에 대해서는 의석은 주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열어줬다. 이런 준엄한 심판을 할 수 있는 국민은 더 이상 '투표 때만 자유롭고 그 외에는 노예로 돌아가는' 루소 시대의 국민이 아님을 정치인들은 항상 뼈에 새기길 바란다.

임혜현/투데이코리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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