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어 가까스로 과반을 넘겼고 올 초까지만 해도 50석도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통합민주당도 81석을 얻어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총선은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모두 그런대로 선전한 총선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정말 최악의 결과를 맞은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 민주화 운동과 개혁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386들이다.

이번 총선에서 학생운동의 메카라 불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 1-3기 의장을 지낸 이인영 의원, 오영식 의원, 임종석 의원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지난 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그 해 일어난 6·10항쟁을 주도했던 우상호 의원마저도 원내 재입성에 실패하는 등 지난 2004년 총선에서 탄핵 역풍 등에 힘입어 원내에 대거 입성했던 386들이 거의 다 낙선해 386들은 '국민에 의해' 제도 정치권에서 퇴출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유권자들의 보수화 탓이라 진단하기도 한다. 정말 우라나라의 유권자들이 보수화된 것인지에 대해 본인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본인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일부 언론에서 보수화됐다고 진단하는 유권자들은 바로 5년여 전에 모두의 예상을 깨고 노무현 후보를 57만 여 표차로 당선시켜 준, 4년 전에 노무현 탄핵 반대를 외치며 수십만 명이 광화문 거리에 나와 촛불 시위를 하면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에 170여석을 안겨준, 바로 그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설사 유권자들이 '보수화'됐다고 하더라도 이런 유권자들보다 훨씬 더 먼저 '보수화', '기득권층화'된 집단들이 바로 386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생각이었지만 지난 2004년 총선 직후만 해도 본인은 “이제 국회에 대거 진출한 386들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고 사회 양극화를 해소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얼마 안가 처참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 발생한 김선일 씨 납치 사건 당시 이라크 무장 세력들은 당장 철군하지 않으면 김선일 씨를 죽이겠다고 경고했지만 당시 참여정부는 즉각 “철군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결국 김선일 씨는 처참한 시신이 돼 돌아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시 386 의원들 중 어느 누구도 김선일 씨를 살리기 위해 이라크에서 철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광주학살 등을 자행한 군사독재정권에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 가며 투쟁했다는 그 386들이 말이다.

황우석 파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황우석 씨 연구 성과가 가짜였다는 것을 알기 위해선 고도의 과학적 배경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의 연구 성과가 가짜였다는 것을 모르고 그를 찬양한 것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황우석 씨의 연구과정에서 자행된 수 많은 여성들의 난자 채취와 그로 인해 위협받는 여성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에 대해선 최소한 우리 나라 민주화 운동과 개혁을 상징한다는 386들은 목소리를 내야 했다는 것이다.

난자 채취를 당한 여성들은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 엄연한 의학적 사실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정신으로 하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라는 386들은 당연히 여기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했으나 당시 386들 중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황우석 씨를 칭송하는 데 급급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미 FTA로 우리나라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영세 서민들과 농어민들의 삶이 위협받으리라는 것은 사실상 상식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별명을 얻어가면서까지 모든 것을 다 내주는 한·미 FTA 협상을 강행할 때도 386들 중 어느 누구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목소리가 철저하게 무시되고 사용 기간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비정규직법들이 통과돼 전국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린 순간에도 386들 중 어느 누구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본인과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진보적인 성향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386들의 몰락은 자업자득이야”


투데이코리아 이광효 기자 leekhy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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