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작시집 '가재미'로 돌아오다


'서정의 힘'을 믿고 시의 미학으로 삼다
지난해 미당문학상에 이어 올해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는 쓰는 사람도 혼자 있게 하고 그 시를 읽는 사람도 잠깐 혼자이게 한다"

최근 문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문태준(36) 시인은 시를 읽고 쓰는 즐거움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를 만난 건 지난 14일 서울시 마포구 불교방송국 근처 카페에서였다.

이날 마주한 문 시인이 '혼자'를 강조한 건, 혼자인 그 시간만큼은 자기를 고요히 되돌아 볼 수 있기 때문.

그는 스스로와의 밀회를 즐길 줄 아는 천상 시인이었다.


“참 못쓴다고 혼도 많이 났다”
문 시인이 시를 처음 접한 건 시집이 아닌, 중학교 백일장 때였다고 한다.

“시집 한 권 못 본채 시부터 썼다”는 그는 대학시절 국어국문과 문학모임에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무렵 시를 못 써서 혼도 많이 났다는 그의 말은 여전히 믿겨지지 않지만, 그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들과 원고들로 스스로를 단련시켰을 지 짐작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종삼, 김수영, 신경림 시인의 영향을 주로 받았는데, 특히 신경림 시인의 시를 좋아해 초창기 그의 그늘 아래 있었다고 했다.

요즘 문 시인은 황동규, 최하림, 이성복 시인의 시를 즐겨 읽는데, “뵐 때마다 이런 분들을 시인이라고 하는 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좋으신 분들이라고.

본인은 어떠냐는 물음에 그는 “저는 아직 멀었죠”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서정성에 손을 꼭 잡아 주신 거죠”

최근 문 시인은 시단의 굵직한 상들을 한꺼번에 품었다.

시인과 평론가 120명이 뽑은 '2005 문예지에 실린 가장 좋은 시'에 이어 '제5회 미당문학상(2005)'과 '제21회 소월시문학상(2006)'을 수상한 것.

지난 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래 '수런거리는 뒤란(2000)'과 '맨발(2004), 그리고 올 여름 내 놓은 시집 '가재미'까지 시집 3권만에 시단의 화두로 떠올랐다.

시의 질과 발행권수가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적은 권수에도 문단의 평가가 눈에 띄게 호의적이라는 말에 그는 “시도 위태하고 서정도 위태한 시대인데 시의 서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잘 봐주신 것 같다”며 “말을 줄여서 시를 쓰는 것에 대해 손을 꼭 잡아 주신 거죠”라며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는 이어 “시는 말을 하면서도 말을 숨겨 뒷공간을 많이 만들어 놓는데 그게 서정의 힘이고 시의 미학”이라며 “연애랑 비슷하기도 한데 요즘 그렇게 연애하면 별로 인기 없겠죠”라며 소탈한 웃음을 던졌다.

“상이라는 건 기대가 있다는 것이어서 부담이 되지만, 답은 지금 해온 것처럼 하는 것”이라고 차분히 밝힌 그는 이미 일상의 정연함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한편, 문 시인의 신작시집 '가재미'에 실린 가재미 연작시는 그에게 상도 안겨줬지만 그에 못지않은 사연이 숨어 있었다.

“비가 막 오던 재작년 여름 큰 어머니가 위독하시단 얘길 듣고 가족들과 김천의료원에 갔었는데 보자마자 손을 꼭 잡고 우셨다”며 “시 '가재미'는 큰어머님을 떠나보내는 이야기였다”고 문 시인은 밝혔다.

이를 시로 쓰는 동안 참 힘들었다고 말문을 이은 그는 “다들 잠든 밤 빈 방에 혼자 앉아 썼는데 많이 울었다”며 “정든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시로써 밥을 먹고 산다는 건”

문 시인은 최근 문화예술원회 등에서 많이 애써주고 있지만 여전히 시로써 밥을 먹고 산다는 건 참 어렵다고 시단의 현황을 짚었다.

그러다보니 산문이든 동화든 시 밖의 것도 불가피하게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것.

그냥 시만 쓰는 분들은 최대한 적게 가지고서 말 그대로 근근이 산다고도 했다.

소설도 시원치는 않아 크게 형편이 다르지 않다고.

그러나 많은 분들이 궁리하고 계시니 차차 좋아질 것으로 믿는다는 문 시인은, 불교방송 포교제작팀의 '무명을 밝히고' PD로도 일하고 있다.

첫 직장으로 11년째 불교방송과 함께해 왔다는 그는 “수행하는 스님들 모시고 말씀을 듣다 보면 나도 수행자적인 입장에서 고민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요즘은 막행막식(莫行莫食)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경전도 상당히 문학적이고 멋쟁이 큰 스님들도 많다”며 “특히 스님들이 주고받은 편지글들을 보면 맑은 시내를 보는 것 같이 무고한 문장들이어서 괜히 내가 막 신이 난다”고 장난기 가득 담아 말했다.

그런 문 시인에게 직장은 또 다른 문학경전으로 매일같이 그에게 읽히고 있었다.


“시골이 도시를 먹여 살려야”

요즘은 작가지망생들마저 순문학보단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짙다.

이에 대해 문 시인은 “시와 소설을 너무 안 읽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시나 소설을 읽고 그 후에 바꿔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단도직입하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토대가 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걱정스럽다는 것.

그는 이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면서 궁리하는 걸 참 싫어하는 것 같다”며 “시나 소설은 '생각을 하는 속도'인데 '재촉을 하는 속도'인 영상 쪽으로 너무 많이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지금 우리가 재촉하는 속도를 선택했지만 결국 나중엔 그 속도에 우리가 끌려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문 시인은 “너무 정확한 시간을 살려고 하는데 그게 잘 사는 건진 모르겠다”며 “12시 이런 말보다 '밥 때' 혹은 '저물 때' 같은 말이 좋은데 시골에서는 많이 쓰지 않느냐”고도 했다.

“요즘은 시골이 도시를 먹여 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마음은 일찌감치 시골에 닿아 있었다.


"시도 계절을 타죠, 사람의 마음인데"

문 시인은 언제 시인으로서 가장 즐거웠느냐는 물음에 “시인이 시인을 만났을 때”라고 막힘없는 답을 했다.

특히 맥주집 이런데서 만났을 때 한동안 못 뵈었던 선배시인이 별 말은 않아도 손을 꼭 잡아줄 때 이럴 때 시인이 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시가 말을 참듯이 사람들 마음에 그런 게 몇 개쯤은 있었음 좋겠다”며 “그럴 때 사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온기 담은 말을 건넸다.

서리 내리기 전까지의 지금 이 계절이 가장 좋다는 문 시인은 “시도 계절을 타죠, 사람의 마음인데”라며 “좋은 시를 만나면 맛있는 밥 한 그릇을 뚝딱 얻어먹은 기분”이라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성큼 밀려들어온 가을바람이 그에게도 그의 시에도 '맛있는 성찬'이 되길 기대해 본다.

글 채지혜 기자 cjh@todaykorea.co.kr
사진 이상운 기자 photo98@pc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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