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하다 이명박 욕해도 집시법 위반?

지난 달 초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 반대 촛불시위는 우리나라의 시위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위 양상을 보였다.

비록 90년대 말경부터 민주화의 진전으로 화염병 시위는 사라졌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시위라고 하면 시위대들이 쇠파이프 등으로 전경들을 공격하고 여기에 전경들은 방패 등으로 응수하며 과잉 진압에 나서 양측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기 일쑤였다.

이에 반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시위는 쇠파이프 시위가 거의 사라진 대신 10살 미만의 어린이에서부터 초·중·고생, 대학생,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에 걸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시위 현장에서는 어김없이 시위대들이 마련한 각종 문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또한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경찰버스의 유리창을 깨려 하거나 전경을 붙잡기라도 하면 대다수 시위대들은 일제히 '비폭력' 구호를 외치며 평화시위를 호소한다.

너무나 자의적인 금지 기준

문제는 이렇게 우리나라의 시위문화는 급격히 달리지고 있지만 현행 법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에 대해 정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을 근거로 각종 제재를 가하고 있다.

현행 집시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선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현행 헌법 제21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며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누구나 경찰 등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집시법에 의하면 집회나 시위를 주최하려는 자는 집회나 시위를 시작하기 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신고서를 관할 경찰서장에게 제출하고 사실상 허락을 받아야 한다.

또한 경찰이 집회나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기준이 너무 자의적이다.

먼저 현행 집시법에서는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는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집회나 시위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너무 모호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산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지난 12일 <투데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이 규정대로라면 경찰은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 또는 시위는 모두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로 규정해 금지할 수 있다”며 “현행 집시법의 가장 큰 문제는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한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가 지기만 하면 불법집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행 집시법은 집회와 시위를 열 수 있는 시간을 근거도 없이 너무 일률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현행 집시법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개최됐던 촛불시위는 그 시위가 아무리 평화적으로 진행됐어도 해가 지기만 하면 어김없이 불법시위로 규정돼 갖가지 법적 제재를 받아야 했다.

이에 대해 김산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현행 집시법대로 한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해가 진 후에 두 남녀가 공원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여자가 남자에게 '자기는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자 남자가 '나는 한반도 대운하에 반대야. 한반도 대운하는 환경재앙을 일으켜'라고 답했다면 두 사람이 모여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것이므로 해가 진 후에 집회를 한 것이 돼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위와 문화제를 구분하는 것이 힘들어지게 된 변화된 시위문화에도 현행 집시법은 너무나 맞지 않는다.

지난 달 초부터 개최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개방 반대 촛불시위는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개최되고 있다.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어김없이 시위대들이 마련한 각종 문화 공연이 펼쳐지는 등 이것이 시위인지 문화행사인지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런데 현행 집시법에서는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문화행사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집회나 시위를 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문화행사로 개최됐다고 해도 문화행사 도중 해가 진 후에 어떤 사람이 연단에 나와 자유발언 등을 하는 도중에 '한반도 대운하는 환경재앙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있어 수입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발언을 했다면 바로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것이므로 그 문화행사는 졸지에 해가 진 후에 개최된 불법 집회가 돼 버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촛불시위도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개최되고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같은 '정치적'인 구호 때문에 아무리 평화적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해가 지기만 하면 '불법집회'로 규정되고 있다.

집회금지 장소도 문제다 현행 집시법에서는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 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집회 또는 시위가 금지돼 있다.

이에 대해 김산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미국에서는 백악관 바로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통합민주당 천정배 의원(경기 안산시단원구갑), 통합민주당 문학진 의원(경기 하남시), 통합민주당 최영희 의원(비례대표)을 비롯한 통합민주당 의원 22명은 지난 달 30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집회 및 시위 원천 금지 조항(현행 제5조) 삭제 △집회 및 시위의 금지시간 폐지 등이다.

참고로 현행 집시법 제5조는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집회나 시위를 주최하여서는 아니 된다”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 이광효 기자 leekhy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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