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요
작년 11월, 그리고 12월, 비슷한 시기에 두가지 공사가 완공됐다.
하나는 서울의 청계천, 또 하나는 내가 사는 동네의 골프장이 그 것이다. 청계천은 서울에 있으니까 할 수 없고 여기 골프장은 개장 하는 날 직접 가서 봤다. 알맞게 쌀쌀한 11월의 이른 아침, 전망 좋은 클럽 하우스에 앉아서 커피도 한 잔 했다. '죽기 전에' 여기서 골프를 한 번 해보기는 하겠구먼.
지난 10여년의 묶였던 세월을 풀어 내듯 골짜기에는 느슨한 안개가 자욱했고 새 골프장에 온 사람들은 처녀 장가를 드는 총각들 처럼 들떠 있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2005년 12월 어느 날 서울에서는 청계천 복원이 끝나고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복원공사 얘기가 나온지 얼마 됐다고 벌써 완공이냐. 비록 오래 전 기억이기는 하지만 청계천은 많은 소상인들이 모여서 와글 거리는 복잡한 곳이었는데 언제 그들을 다 몰아내고 꿈 같은 징검다리와 불꽃 같은 조명을 설치했단 말이냐. 상인들의 이주 대책과 보상문제, 역사 유적지의 보존 방법들이 이미 다 강구되고 확정되었단 말인가.
그 동안 교통은 어떻게 정리했으며 덮혔던 고가도로와 복개 상판은 어떻게 처리 됐는가. 궁금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개통식 날 사진을 보니 와! 장관이다.
대충 희미한 기억을 돌이켜 봐도 공사를 시작한지 2년 밖에 안됐다.
공론화 단계와 청문회, 공청회를 한 기간까지 다 해도 4년 남짓이다.
4년! 내 경우, 4년이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서 비로서 눈을 뜨기 시작하는 기간이다. 이제 겨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고 전략을 세워야겠다는 안목이 생기는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청계천은 뚝딱 완성됐고 물은 흐르고 있다.
4년이란 기간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기간이지만 뭔가를 이룩해 낼 수도 있는 기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 동네로 처음 이사왔을 때 시청에서는 시외곽에 골프장을 건설하는 문제에 대한 청문회가 있다는 통지서를 보내왔다. 뭘 어떻게 하려나? 한 번 가 봐야지. 골프장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 후로 나는 골프장 건설에 대한 시청의 행정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유심히 들여다 봤다.
이 것만 완성되면 멀리 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리한가.
10분 안팍이니 우리 집 안방이요 우리 집 뒷마당이다.
그러나 새 골프장 건설에 들떴던 나는 곧 지쳐 버리고 말았다. 청문회 통지는 계속 날아오고 있지만 골프장 건설은 진척이 되지를 않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포기하다시피했다. 그러면서도 한가닥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죽기 전에' 언젠가 되기는 되겠지.
처음 청문회 통지를 받은 것은 이사 온 직 후, 골프장 건설이 공론화 된지 이미 3년쯤 지났을 때였다.
그 후로 7년이 흘렀다. 그 동안 시청측과 주민들은 무슨 토론을 어떻게 했는지 드디어 결론은 났는가 보았다.
지역 신문에 건설이 시작됐다는 보도와 더불어 유지들 몇 명이 삽으로 흙을 뜨는 기공식 사진도 났다.
시들었던 기대가 되살아 났다. 어서 완공만 되거라.
신문에는 가끔 황무지 언덕에 불도저가 굴러 다니는 사진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불도저'의 성능이 시원치 않았던 탓인지 그러면서 또 몇 년이 흘렀다. 또 다시 포기한 상태에서 3~40분을 운전해야하는 골프장을 찾아 다녔다. '죽기 전에' 거기서 한 번 라운딩을 할 수 는 있는 것일까.
아! 드디어 완공됐다. 작년(2005년) 11월, 청계천 복원공사 완공과 비슷한 시기였다. 지역 신문에 머릿 기사로 올랐다.
나는 그 신문을 앞에 놓고 얼핏 기억 속에서 맴도는 과정을 정리해 봤다.
공론화 이 후 청문회와 공청회를 거치는 동안 10년, 그리고 건설과정에 3년, 도합 13년이 걸렸다.
청계천 복원과 골프장 건설 사이에 있는 장애물과 그 극복의 어려운 정도를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물론 골프장 건설에도 환경 보호론자들의 극렬한 반대와 해당 토지의 수용과 보상이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 쯤은 나도 안다. 그러나 청계천 상인들의 저항이나 이주 대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이미 건설돼 있는 구축물을 헐고 새로운 건설을 하는 것과 아무 것도 없는 벌판을 밀어 버리고 약간의 배수 시설을 한 다음 잔디를 심는 것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청계천은 길게 잡아 4년이고 골프장은 짧게 잡아 13년이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지러울 정도롤 빨리 해치우는 능력을 가진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 미국의 거북이 행정 조직 아래서 살고 있다는 묘한 역설 때문에 나는 한 동안 혼란스러웠다.
결론은 한민족이 엄청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거나 아니면 미국의 행정이 느림보 걸음 이라는 두지기 중의 하나인 것이다.
첫 번째 결론이라면 자랑스럽다. 그러나 두 번 째 결론이라면 걱정이 되는 것이다.
미국이 당면한 심각한 행적적체 현상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려터져서야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결과을 보려면 '죽기까지' 기다리다가 완성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대비가 필요한 것이다.
행정 책임자가 임기 내에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 보여야하는 한국하고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면 또 하나의 알 수 없는 문제가 떠 오른다.
그런 느림보 행정력으로 어떻게 미국이 오늘 날 세계의 최강국으로 존재 할 수 있단 말이냐.
행정력만 따진다면 한국은 벌써 미국을 따라 잡고도 남았어야 할텐데 현실은 어떤가. 이래 저래 모르는 일 투성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주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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