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갖춘 후보, 돈 없어 탈락

희망 왕국의 국왕은 왕국을 이끌어가는 기본 목표를 도덕성으로 삼고 있다. 국회의원 공천이 있는 날. 번호표를 받은 다섯 명의 후보자들은 저마다 기대에 차있었다. 드디어 깐깐하기로 소문난 국왕이 서류뭉치를 한 아름 들고 비밀 감시단과 함께 나타났다. 1번에 대한 심사가 시작되었다. 비빌 감시단이 1년 동안 감시활동을 벌인 결과 바람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국왕: 그동안 비밀 감시단이 1번 후보인 자네를 살펴본 결과 여자관계가 복잡하고 바람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네. 그래서 국회의원으로 공천 받을 수 없게 된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네.

1번 후보: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국왕: 말이 안 되긴 뭐가 말이 안 되나? 자네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하고 바람이 나서 세계적으로 망신당한 일을 모르고 있진 않겠지?

1번 후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국왕: 그럴 수도 있다니?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렇게 바람을 피우고 난후 힐러리 여사와 함께 오랫동안 상담 받은 것도 알고 있겠지. 난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은 질색이라고. 그리고 미안하지만 자네 같은 사람은 우리 왕국에 도움이 안 돼!

1번 후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정말 섭섭합니다. 그래도 전 국왕님이 다니신 학교도 졸업했는데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전 정말 엘리트라고요.

국왕: 나랑 같은 학교 졸업한 게 뭐 대수라고 그러나. 그리고 자네가 말한 엘리트, 엘리트 좋지. 그런데 난 도덕성을 갖춘 엘리트가 필요해.

1번 후보: 제가 이번에는 너무 억울한데 국왕님께서 그렇게 억지를 부리니까 다음에 또 도전하겠습니다.

국왕: 내가 무슨 억지를 부렸다고 그래. 자네에 대한 자료는 비밀 감시단에게서 나온 걸세. 그리고 다음에 또 도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네.

1번 후보: 그건 왜죠?

국왕: 이유야 간단하지. 클린턴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곤욕을 치르고도 또 이혼녀와 바람피운 사실을 알고 있겠지?

1번 후보: 물론 알고 있죠.

국왕: 그러면 됐어. 내가 긴 설명하지 않을 게. 한번 바람피운 사람은 그 못된 버릇을 못 버리고 또 그 짓을 하거든.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 간단 말도 있잖아. 마누라도 있는 사람이 왜 그랬겠어. 쯧쯧. 난 우리 왕국 국회의원들이 말썽부리면 창피해서 외국에도 못 가잖아!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겠어. 그리고 이번에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후보 중에 여자한테 치근덕거린 후보가 있어서 그 사람이 당선될까봐 잠을 못 잤다니까. 하여튼 다행이지 뭔가. 그런 사람이 당선이 안 된 게 말이야. 처자식 두고 왜 그러는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그리고 그 후보를 잘 감시 못한 비밀 감시단원도 잘라버렸어.


국왕: 2번 후보는 비밀 감시단의 보고 결과 아주 성실하고 도덕성도 갖출 만큼 갖추고 아주 좋아요. 내 맘에 쏙 들었어. 그런데 결정적인 흠이 있어.

2번 후보: 그게 뭔데요?

국왕: 불행하게도 자네는 돈이 너무 없다는 거야.

2번 후보: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월급을 많이 받을 건데 국왕님은 난데없이 왜 돈 얘길 하세요?

국왕: 그게 설명하기가 좀 애매해. 국회의원이 되면 여러 군데서 청탁을 많이 받을 텐데 뿌리치기가 힘들지. 청탁에는 으레 돈이 따라다니지. 그래서 그런 돈에 안 넘어갈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2번 후보: 그런 건 생각도 못했는데, 돈 없는 게 죄입니까? 그건 국왕님의 억지 주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국왕: 억지 주장이라고 비꼬지 말게. 움직일 때마다 돈이 들어갈 텐데 국회의원 월급 갖고 다 인사치레하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청탁하며 내미는 돈에 약해지는 거야. 뭐 내가 한두 번 당하나. 사건이 벌어지면 하는 말이 “한 푼도 받은 게 없다”고 잘도 들러대지. 그런데 조사해보면 받을 것 다 받아서 챙기고 말이야. 내가 정말 검찰 관계자들 볼 면목이 없다니까. 하여튼 자네는 내가 비서로 점찍어 놓았으니까 그렇게 알고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하도록 하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날 믿고 때를 기다려보도록 하라고. 이게 다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오해도 하지 않기 바라네.

2번 후보: 국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일단 국왕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 대신 저에게 한 가지만 약속해주십시오.

국왕: 약속이란 게 뭔가?

2번 후보: 다음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까지 국왕님께 충성을 받치겠사오니 그때 가서 절 버리시면 안 됩니다.

국왕: 이보게, 난 왕국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일세. 날 여기 저기 붙어서 이익이나 챙기는 소인배로 보지 말게. 내가 앞으로 그런 소인배들은 우리 왕국에 발을 못 붙이게 만들 거야. 두고 보게. 나처럼 국제적이고 정직하고 도덕성을 갖춘 국왕이 어디 있나. 자네가 좀 억울한 생각이 들더라도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고 우리 왕국을 위해 일한다면 개인적인 사욕을 챙기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네. 사람들이 뽑아주었으면 일들을 잘해야지 말이야, 일 잘못했다고 매스컴에서 한번 때리면 그저 잘 보이려고 고개나 숙이고, 모든 걸 책임진다고 사표나 내던지고. 그 짓거리 보는 것도 정말 지쳤어.


국왕: 3번 후보는 다 좋은데 골프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게 영 마음에 걸려.

3번 후보: 그게 공천 받지 못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국왕: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지. 이번에도 보게. 일 잘하라고 실컷 뽑아주었더니 말이야 왕국이 수해를 당해 어려운 판국에 한가하게 골프장에 가서 골프나치고. 이래서야 국왕인 내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외국에서 이런 사실을 알아봐. 우리 왕국을 얼마나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겠어. 자네는 골프 치러 새벽3시에도 나간다면서? 그건 너무 심한 중독 아닌가? 게다가 돈 내기 게임도 한다고 들었는데?

3번 후보: 그건 약속이 되어 있으니까 그런 거고, 마약도 아닌데 무슨 중독입니까? 하여튼 앞으로는 돈내기 골프를 안 치겠습니다.

국왕: 내 경험으로는 그런 말은 믿지 못할 것으로 분류되어 있다네.

3번 후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우겨대는 국왕님은 마치 독재자 같군요.

국왕: 내가 독재자란 이유를 대봐. 내가 사람을 죽였어? 아니면 억지로 세금을 내라고 했어. 아니면 재산을 몰수했어. 나처럼 착한 국왕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3번 후보: 전 이 나라를 떠나겠습니다. 국왕님의 억지 때문에 국회의원에 출마도 못하고 차라리 다른 왕국에 가서 시도하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국왕: 자네 뜻이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딴 나라에 가서 돈내기 골프 치면서 우리 왕국을 욕 먹이는 일은 자제하기 바라네.

국왕: 4번 후보는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벌은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그렇게 불법적으로 돈을 벌고도 세금도 안 냈더구먼?

4번 후보: 그건 중상모략입니다. 제가 뭐 집과 땅을 샀다가 금방 팔은 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것이지 투기 목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세금을 안 낸 것은 하는 일이 많다보니까 깜빡 잊어버리고 그런 것입니다. 오늘 당장 세금을 내겠습니다.

국왕: 몇 년 동안 세금을 안 낸 사람이 어떻게 오늘 당장 세금을 내겠어.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집과 땅을 사고 마음에 안 들어서 팔았다고 했는데, 감시단의 보고에 의하면 경치도 아주 좋고 교통도 편리한 곳이라고 하던데?

4번 후보: 그럼 절 공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겁니까?

국왕: 당연하지. 자네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 문제 일으킬 소지가 많아서 어쩔 수가 없어. 그러니 자네는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지내도록 하게.

4번 후보: 아니 돈이 없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돈이 너무 많아도 안 되니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합니까?

국왕: 돈이 많으면 좋지. 불행한 일이 생기면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자네는 정상적으로 돈을 벌은 게 아니고 게다가 제때에 세금도 안 냈으니 국회의원 될 자격도 없는 사람이란 걸 잘 파악하고 두꺼비 집이나 짓고 진득하게 봉사활동 하는 데나 충실하도록 하게.


국왕: 5번 후보는 다혈질에 막말도 자주하고 어학 실력도 없고 오로지 열정만 갖고 국회의원이 되겠단 말이오?

5번 후보: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어서 모든 일에 적극적입니다.

국왕: 감시단에 의하면 일 년 동안 싸워서 경찰서에 다섯 번이나 갔다 왔다고 하드구만. 자네는 기본이 없는 사람이야. 게다가 경찰서에 가서도 욕을 하고. 만약에 자네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 어학 실력도 없어서 외국에서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라도 오면 피해 다닐 궁리만 할 걸세.

5번 후보: 경찰서에 간 건 그쪽에서 먼저 덤벼들어서 문제가 커진 거고, 어학은 지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국왕: 자네같이 성격이 급하면 회의할 때 싸움을 자주 일으켜서 곤란하거든. 내가 말이야 그 의원들이 싸울 때마다 머리가 아파서 며칠씩 누워있는 거 알지. 그리고 다른 나라 국왕들 얼굴보기가 아주 민망해서 정말 죽겠어. 그러니 성격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처음부터 공천을 안 해 주는 게 상책이지. 그리고 자네처럼 지금부터 어학공부 한다고 되는 게 아냐. 그러니 국왕인 내가 체면까지 구겨가며 외국으로 돈 빌리러 다녔잖아. 그리고 큰 일이 터질 때마다 해결하러 외국으로 날아가고. 그동안 내가 너무 지쳤어. 이제부터는 기본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은 왕국에서 일을 못하게 될 거야.

5번 후보: 국회의원 공천 받는데 그런 게 왜 필요하지요?

국왕: 당연히 왕국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지. 툭하면 국회에서 싸우니까 우리 왕국에 투자하려던 외국회사들도 ‘툭하면 싸우는 꼴 지겹다’고 다른 왕국으로 떠나잖아. 그 외국 사람들이 그러는데 정책에 일관성이 없어서 언제 뒤집어질지 모른데. 그래서 우리 왕국을 믿을 수 없다고 하잖아. 그리고 우리 왕국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왕국으로 이민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잖아.

5번 후보: 그렇다면 다음 기회에 국회의원 공천을 받기 위해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국왕: 내 힘 빼지 말고 다른 일거리 찾아봐. 왜 그런가하면 잘못했다고 조금 반성 했다가 사람들이 잊을만하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서 설치고, 그러면 왕국 꼴이 우습거든. 난 그 꼴 못 봐.

5번 후보: 국왕님은 어떻게 그렇게 사사건건 나라 일에 참견을 하세요?

국왕: 그래도 내가 이렇게 참견을 하니까 왕국이 잘 돌아가잖아! 내가 얼마 전에 우리국민들과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까지 보너스로 천 달러씩 챙겨준 거 알지?

5번 후보: 그건 알지만∙∙∙.

국왕: 알면 됐어. 그게 다 내가 열심히 세일즈해서 번 돈이잖아! 그러니 불평 늘어 놓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나도 말이지 국왕 자리에 있는 게 편치만은 않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 나이가 벌써 육십이 다 되었잖아. 내가 이 나이에도 말이야 외국에 물건을 팔기위해 그 사람들 눈치보고 비유 맞추고 있는 거 알지? 날 비난할 생각은 하지 말게.

5번 후보: 잘 알았습니다. 국왕님. 다음부터 말썽 안 부리겠습니다.

국왕: 암, 그래야지.


마치 국회의원이 된 것처럼 당당하게 나타났던 후보들은 풀이 죽어서 돌아갔다. 오로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공천을 받지 못한 2번 후보만 국왕과 차를 한 잔 마신 후, 언젠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디지탈 뉴스: 박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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