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살예방협회, 보건복지부와 자살예방(생명사랑) 캠페인을 하고 있는 투데이코리아는 미디어의 자살보도가 자살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관계자들과 접하면서 인지하게 됐다. 이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의 '자살관련 미디어 모니터링 분석'을 바탕으로 주요 언론들의 자살보도 행태를 분석하고 자살행동에 미디어가 끼치는 영향과 그러한 자살보도의 요인들, 그리고 자살에 대한 보도원칙에 대한 필요성 등을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한다.

자살방법 묘사.미화된 기사 후속자살에 큰 영향

강북삼성병원의 오강섭 박사는 “자살에 관한 미디어의 문제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발생 한다”며 “자살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은 물론이고 자살을 선정적으로 묘사하고 미화하는 형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기업에 막대한 피해나 물의를 일으킨 기업인의 자살 행위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고 자결하는 듯이 미화하는 것” 등이 그 예라고 지적했다.

사실 미디어의 광범위한 자살보도는 '모방자살 copycat suicide'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논란의 여지가 돼왔다. 자살에 대해 연구가 시작된 것은 1774년 독일의 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the Sorrows of Young Werther)' 이 출판되면서이다. 작중에서 사랑에 실패한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당시 이탈리아, 라이프치히, 코펜하겐 등지에서 젊은이들의 자살이 잇따랐고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자살의 전염성을 베르테르 효과(the Werther effect)라고 부르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의 일부가 미디어의 영향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제안이 대두되면서 자살과 미디어의 관계, 나아가 미디어가 자살보도에 대해 가지는 책임과 윤리성 등의 중요한 사안들이 연구주제로 주목받아왔다.

최근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다양한 국가들에서 신문이나 TV를 통한 자살보도가 후속 자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되고 있고 그 결과 대부분이 자살의 대대적인 보도이후 자살자의 수가 급증한 것을 일관성 있게 보고하고 있다.

유명인사의 자살 보도 모방 가능성 14.3배 높아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를 통한 자살보도는 후속 자살과 관련하여 중요한 몇 가지 요인들을 가지고 있다. 우선 연예인이나 유명 정치인의 자살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가 그것이다. 유명인사의 자살보도는 그 외의 사람에 대한 자살보도보다 후속 자살을 일으킬 가능성이 14.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살했다는 사실 기사가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자살보다 그 영향력이 4.03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매체의 종류에 있어서 신문이 TV보다 자살보도에 대한 영향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신문기사는 TV기사와 달리 다시 볼 수도 있고 스크랩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문기사의 경우 자살경위에 대한 세부자료를 싣고 있어 자살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보도 노출 범위에 있어서 자살보도를 다루는 언론매체의 수가 많을수록 모방자살의 파급효과도 커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메이저 언론계 세 곳에서 자살보도를 하는 경우 한 곳에서만 보도하는 경우보다 모방자살의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2005년 5월부터 11월 30일까지 4개 일간지의 자살관련기사 통계를 살펴보면 자살관련 기사의 총수는 544개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바람직한 기사로 분류되는 것은 54개이고 그 내용을 유형별로 분석해 보면 '자살률 등 자살관련 지식을 제공한 경우'가 25개로 가장 많았고,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경우'가 14개, '자살의 징후들을 소개한 경우'가 13개, '자살위기에서 벗어난 사례를 명시한 경우'가 2개였다.

반면에 자살관련 보도에 대해 바람직하지 못한 기사로 분류되는 것은 58개로 나타났고, 빈도가 높은 유형을 살펴보면 '자살방법을 자세히 묘사한 경우'가 25개로 가장 많았다. 그 외에 '자살이유의 정당화 및 단순화의 경우'가 14개, '유명 연예인을 많이 거론한 경우'가 13개, '자살에 대해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의 경우'가 6개로 조사됐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80년대에 미디어가 지하철 자살을 드라마틱하고 충격적인 기사거리로 보도하면서 자살과 자살빈도수가 급격히 늘어난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오스트리아 자살예방협회는 비엔나의 신문에 실린 자살보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1987년 가설들을 이용한 언론보도 지침을 만들어 언론사에 배포했다. 그 결과 효과는 바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1988년부터 지하철 자살률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미디어 책임과 윤리성 차원 보도원칙 마련 시급

수원자살예방센터 김연숙 간사(사회복지사)는 자살예방을 실질적으로 하기 위해서 “언론의 역할은 독자들이 기사를 읽고 자살 예방을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면서 “미디어는 대중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강조했다.

우리 학자들과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이미 미디어의 자살보도에 대한 원칙의 필요성이 강조돼왔다. 자살 사건에 대한 기사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아닌 언론인 스스로가 참고하여 활용할 수 있는 자살사건보도 원칙이 만들어진다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도 보다 건강한 미디어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권승문 기자 ksm@todaykorea.co.kr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