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 >

미국의 43대 대통령선거에 나설 민주당 후보를 지명하는 전당대회. 팽팽한 긴장감속에서 치러지는 한국식 전당대회에 익숙한 사람에겐 풋볼경기 응원전을 방불케하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정당의 정치행사라기 보다는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페스티벌 같았다.

4일간에 걸친 대장정의 마지막 단계인 후보수락연설이 예정된 덴버시의 인베스코 풋볼경기장엔 3시부터 운집한 8만여 관중이 꼭대기자리까지 가득 메웠다. 선거구별로 동원된 당원들이 주종인 우리 전당대회와는 달리 대부분의 관중은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마치 풋볼경기 보듯이 참여했다. 우리 앞줄에 앉은 한 청년은 미리 준비해온 반지로 깜짝 청혼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싸우기만 하는 우리정치도 이렇게 축제처럼 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정치와 미국정치의 본질적 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도의 차이인 듯하다. 우리 전당대회는 현장에서 투표를 통해 후보를 결정하기 때문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미국의 경우는 수 십차례의 주별 예비경선이나 당원대회를 거쳐 이미 사실상 확정된 후보를 공식화하는 자리인 만큼 긴장이나 격전은 없기 때문이다. 대신 후보를 홍보하고 당원간의 단합을 공고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45년전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그 유명한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는 연설이 있었던 바로 이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 후보가 탄생함으로써 그 꿈의 한조각이 이루어졌다는 감동적인 멘트로 오바마 후보 지명의 역사적 의미를 최대한 고조시켰다. 1960년 케네디의 LA 콜로세움 연설이후 48년만에 처음으로 옥외연설 방식을 택함으로써 “뉴 프론티어”의 기치를 내걸고 미국 전역에 개혁과 변화의 돌풍을 일으켰던 케네디, 민주당원들의 최고 영웅일뿐 아니라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아직도 각인되어 있는 케네디에 대한 향수를 적절히 자극하기도 했다.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연설할 수 있다는 옥외연설의 이점은 방송통신기술의 발달로 퇴색된 반면 땡볕, 마이크 성능의 한계, 행사 내내 공중에 떠 있는 헬리콥터 소리 등 연설내용의 전달력과 관중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옥외연설의 단점 때문에 오바마의 카리스마를 제대로 각인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측들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8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오바마의 후보 수락연설에 스무 번이 넘는 기립박수와 열광적인 환호로 답했다. 정치적인 구호뿐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자본이득세 폐지, 개인파산법 개정,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격차 해소 등 구체적인 공약들에 발을 구르며 환호하는 모습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이러한 오바마 열풍이 8년간에 걸친 부시행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든 미국의 미래를 위한 변화의 열망이든 한낱 바람에 그치지 않고 과연 결실을 맺을수 있느냐는 치열한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고 당내 단합을 제대로 이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힐러리 지지자의 이탈외에도 레이건계 민주당원들도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애송이에다 국정운영능력이 없다”는 공화당의 집요한 공격을 46세의 초선 상원의원이 잠재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힐러리의 깨끗한 경선승복과 클린턴의 강력한 오바마 지지 선언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지지자 중 11%정도가 메케인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승자의 포용과 배려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8년 전 엘고어 후보 당시 투표에서는 이기고 선거에서는 진 분루를 삼키며 이번에는 꼭 집권할 수 있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듯 존 레전드의 노래에 맞춰 “Yes we can"을 발을 구르며 신들린 듯 외치는 8만여 관중의 포효가 물거품이 되느냐 마느냐는 진정한 배려와 포용을 베풀어야할 당사자인 승자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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