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맥아더의 다른 얼굴

좀 지난 얘기지만 한 때 한국에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자는 말이 있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어떻게 그런 발상이 가능한지 의아했다. 맥아더 장군이라면 우리나라의 은인이 아닌가. 그래서 동상까지 세워 놓고 그를 기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 것을 철거해야한다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한 무리는 각목과 쇠파이프를 들고 쳐들어가려 하고 또 한무리는 인의 장막을 치고 동상을 사수하는 사진이 보도 되곤했다.

참 세상 많이 달라졌다.

국민학교때 매주 월요일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들어야했다. 6.25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까 교장선생님은 자주 맥아더 장군의 공적을 치하하는 연설을 하곤 했다. 국민학교 아이들이 뭘 얼마나 알아들었을까만은 우리는 추운 겨울날 손을 호호 불기도하고 얼어들어오는 발을 동동 굴러가면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에 '세뇌'되어가고 있었다.

어렴프시나마 아직도 나는 그 때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교육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아이들에게(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똑 같은 말을 반복해서 주입시키면 그 것은 무슨 말인지 몰라도 바로 진리가 되고 추종자가 되어 버린다. 맥아더는 그렇게 나의 뇌리에 자리를 잡았다.

최근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전교조 교사들이 반미를 가르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서슴 없이 자주라는 미명아래 반미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쓰며 미제는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내가 맥아더를 구국의 영웅으로 믿은 것 처럼 그 아이들은 미국을 '미제국주의'라고 믿을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맥아더가 본국의 정치인들에게 주문했던 30~50발의 원자폭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중고등학교 앞의 자유 공원에는 맥아더 동상이 있다.

한 손에는 망원경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뒷짐을 진채 멀리 월미도 앞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그는 위엄과 자신감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그는 자신의 평생 신조였던 의무, 명예, 조국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생기기는 또 어쩌면 그렇게 잘 생겼는가.

'라이방' 색안경에 작은 난로처럼 생긴 파이프는 왜 그리도 멋있어 보이던지 - - - - -. 아침 저녁 등하교 길에서 만날 때마다 나는 그에게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했다.

트루만은 왜 그 때 맥아더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가 하자는대로 북진을 계속했더라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비싼 댓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 아닌가.

부끄럽게도 나는 그의 정치적인 야망이나 일각에서 비판받기 시작한 전쟁철학을 잘 모르고 있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 전쟁을 끝낸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배웠으니까.

국회에서 한 연설은 또 얼마나 멋있었는가. '- - - -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 - - - '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맥아더 동상의 기억은 차츰 멀어져가기 시작했고 그리고는 잊혀졌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뜸 트루만이 맥아더를 해고한 것을 옳다고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다분히 분단 한반도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묻는 질문이었다.

아무 방비(?)도 없는 상태에서 받은 돌발질문에 나는 딱부러지게 해줄 답을 찾지 못해 잠시 당황했다.

그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그 때 맥아더가 하자는대로 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통일 한국이 돼 있을 것 아니냐. 트루만이 잘못했다. 나는 40여년 전 맥아더의 동상 앞을 지나다니며 그에 대해 가졌던 존경의 기억을 찾아냈다.

그의 주장대로 북진을 했더라면 통일은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화를 한 사람은 북진이니 통일이니 하는 문제보다는 핵폭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맥아더가 핵을 쓰자고 한 사실에 주목해야한다고 했다.

물론 군인은 전쟁에서 이겨야한다. 그러나 인류는 이미 일본에서 원폭의 가공할 피해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단 두발에 무고한 사람이 히로시마에서 20만명, 나가사끼에서 15만명이 죽었다. 그로해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그런 폭탄을 30발에서 50발까지 중국에다 쏟아부어 '3차대전'까지 이겨 보겠다고한 그의 인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 뒤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했을까.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전쟁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행히 트루만에 의해서 그의 의지는 저지 되었고 무고한 생명은 희생을 면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는 허리가 끊어진채였지만.

갑자기 핵폭탄의 위력이 생각나는 이유는 김 정일의 '핵곡예'가 너무 위험해 보이기 때문이다. 맥아더가 핵무기를 쓰겠다고 한 것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김 정일의 핵은 구걸 밖에 더 되는가.

마치 진흙 묻은 손으로 예쁘게 차려 입은 여인 앞에서 뭔가를 내놓지 않으면 더럽히겠다고 떼를 쓰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생존하고 싶다면 좀 더 세련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언제까지 성질 팍팍 부리면서 떼만 쓰고 있겠다는 말인지 보기에 딱하다.

과연 우리는 그를 한민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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