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학교’논란 속 사교육 과열 우려도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추진 중인 국제중학교 설립 계획이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국제중학교 입학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더욱 과열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일부 상류층들을 위한 '귀족학교'라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국제중학교 설립취지를 '국제화·정보화 시대를 선도할 글로벌 인재 육성'으로 밝히고 있다. 교육청은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서울시에 새로 생기게 될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의 경우 거의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웬만한 영어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수업진도를 따라가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 국제중학교에 입학하려면 경시대회 입상 경력을 쌓아야 하고 구술시험에 대비해 논술 실력도 갖춰야 하는 등 선발기준을 고려해 볼 때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부담감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제중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초등학생들은 저학년 때부터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수학, 논술학원 등에 다녀야하는 실정이다.

영어수업에 영어실력 필요없다?
내년에 개교하는 서울의 대원국제중학교는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주요4과목 수업을 영어 70%, 한국어 30%의 비율로 진행한다. 영훈국제중학교의 경우는 4과목을 비롯해 도덕과 기술·가정까지도 100% 영어로 수업할 계획이다.
대원과 영훈국제중은 장기적으로 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의 영어수업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구사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설사 합격을 한다고 하더라도 영어수업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교육청은 국제중학교 입학의 특별전형 선발비율을 20% 늘려 32명을 선발하고 재단 장학금 지급 대상도 20%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전형 대상자는 기초생활수급자, 다문화 가정 등 저소득 계층의 지원자들이다. 그러나 공교육 외에 영어수업을 따로 받은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저소득 계층의 학생들이 영어를 70%이상 사용하는 수업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 교육청이 제시한 입학전형 방식에 따르면 1단계는 우수한 내신성적이 있어야 통과할 수 있다. 필기시험을 전혀 치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신성적을 평가하는 학생생활기록부에 포함되는 영어말하기대회나 수학올림피아드 등의 경시대회 경력들이 사교육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2단계는 면접과 토론이기 때문에 응시생들은 면접과 토론 준비를 위해 전문 스피치 학원을 다니고 전문가를 초빙해 면접에 관한 과외 등을 준비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추첨제'방식을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1·2단계를 통과한 후 남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하기 때문에 무작위 추첨 선발방식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새로 생기는 두 국제중 외에도 부산에 위치한 부산국제중학교와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청심국제중학교가 있다.
부산국제중학교 역시 입학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토익이나 토플 등의 영어공인점수를 따야하고 수학 등의 과목은 초등교과 과정을 심도 있게 공부해야 한다. 또 외국어 구술시험도 본다.
새로 설립되는 국제중과 같은 형태인 사립 특화중인 청심국제중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별전형으로는 EBS주관 영어능력평가인 토셀(TOSEL)시험중에서도 수준이 높은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 3급이상을 획득해야 하며 시사문제에도 능통해야 한다.
국제중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이정원(초5) 학생은 영어와 수학학원은 물론이고 논술을 대비해 학생 기자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매달 2번씩 토론을 연습하는 인터넷 모임에도 나간다고 한다.
기본이 되는 영어는 물론, 그 외에 가산점이 되는 봉사활동을 하고 면접에 필요한 언어구사능력까지 익혀야 하는 초등학생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에 국제중학교를 설립한다고 발표한 이후 학원가에는 '국제중 대비반' 개설이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증가하는 등 우려했던 사교육 과열현상이 가시화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단속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어 허위광고나 시설변경 미통보 같은 사례들만 단속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국제중학교 설립문제가 사교육 조장 때문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의무교육인 중학교 교육에서부터 일반적인 지식과 인성교육을 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특성화된 교육'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또 영어외의 수업도 모두 영어로 진행해 아직 가치관이 올바르게 서지 않은 학생들에게 '한글'과 '우리말'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낳고 있다.

상위1% 위한 '귀족학교'
국제중학교에 대한 논란은 사교육 조장문제 뿐만이 아니다. 새로 설립되는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의 연간 교육비가 480만원정도로 발표되면서 일반 학생들에게 심리적 박탈감을 안겨줄 수 있는, 일부 상류계층들을 위한 '귀족학교'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제중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사립초등학교를 나와 국제중에서 공부를 해 특목고에 입학해 명문대나 외국유명사립대를 가는 소위'엘리트 코스'를 밞게 된다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는 “이미 1천만원 이상의 사교육비가 들어 문제가 되고 부유층 자녀들만 다닌다는 청심국제중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중 설립은 교육양극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청심국제중학교 입학생들 가운데 제조업이나 운송업, 농업, 수산업 등 서민업에 종사하는 부모를 둔 학생은 단 한명도 없다.
반면 의료계, 금융계, 법조인, 공무원, 사업가 등 전문직종이나 부유층에 속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10명 중 9명이다.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둔 이모씨는 “특정 부류의 부유층 자녀만 모아놓은 국제중에서 일반 서민들이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며 “국제중은 입학을 해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초등전문교육 사이트인 와이즈캠프닷컴에서 초등학생 700여명을 대상으로 “국제중에 대한 생각은?”이라는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57%가 '과도한 경쟁이 우려된다'고 응답했다. 또 15%는 '사교육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라고 응답해 70%이상이 국제중 설립에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하는 응답자는 7%미만으로 '국제화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답했다.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기 위한 인재양성과 조기유학을 막기 위해 국내 공교육 영어시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립되는 국제중학교이지만 사교육 시장에 거센 돌풍을 몰고 와 국제중학교 설립에 대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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