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 18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4조 5685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국회가 추경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전부터 흔히 있어왔던 일이라 그것 자체는 특별한 뉴스 거리도 안 되지만 이번 추경안 통과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매우 컸다.

이번 추경안 통과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높인 결정적인 계기는 추경안 통과 과정에서 연출된 한나라당의 유치한 코미디였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지난 11일에는 국회에서 추경심사소위원회를 12일 새벽에는 추가경정예산 심사 전체회의를 열고 정부가 제출한 약 4조 8600여억 원 규모의 2008년도 제1회 추경안을 약 6000억 원 정도 삭감해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의결정족수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해 추경안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추가경정예산 심사 전체회의 통과는 무효가 되고 말았고 본회의 통과조차 무산되기도 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소속된 한나라당 의원 수는 과반수가 넘는 29명이다. 이런 조건에서도 한나라당은 의결정족수 하나 채우지 못해 날치기마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대해 모든 언론은 한나라당의 한심한 행태를 한 목소리로 질타했다.

기자도 이런 한나라당의 모습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지만 기자가 이번 추경안 통과 과정에서 가장 아쉬움을 느낀 것은 이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번 추경안 처리에 있어서 여·야의 입장이 가장 극명하게 대립됐던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 국고 지원 문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점이 거론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이번 추경안 논의 과정에서 한나라당 측은 “고유가로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요금 인상 요인의 50%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자구노력으로 흡수하고 나머지 1조 2550억 원은 추가경정예산에 반영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측은 “지난 해 12월 기준으로 한국전력공사의 외국인 지분비율이 27.47%이고 올 7월 1일 기준으로 한국가스공사의 외국인 지분비율이 4.39%인데 추가경정예산으로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지원하면 외국인 주주들한테 국민세금을 주는 것이 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며 전액 삭감을 주장했다.

비록 지난 18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 국고 지원 예산이 애초 정부가 제출한 안보다 다소 삭감되는 것으로 추경안이 통과됐지만 여기서 진짜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비롯한 주요 정당들은 모두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것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외국인 지분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표방하는 입장과도 배치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현재 전기·가스·수도·건강보험 민영화는 반대한다는 입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외국인 지분비율이 이처럼 높은 것에 대해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문제를 삼지 않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지난 총선 기간 동안에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 전기·가스·수도·건강보험 민영화를 추진해 가난한 사람들은 아파도 병원에 못가고 전기료와 가스 요금도 폭등할 것”이라며 “민주당에 힘을 실어 줘야 전기·가스·수도·건강보험 민영화를 막을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고 이 같은 호소는 어느 정도 먹혀들어 지난 총선에서의 민주당의 선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은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외국인 지분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문제삼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외국인 지분비율이 매우 높게 된 것은 민주당이 여당이었던 김대중 정부 시절에 IMF 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주요 공기업의 주식을 외국인에게 팔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도 “전기·가스·수도·건강보험 민영화는 반대한다”면서도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외국인 지분비율이 매우 높은 것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여당일 때 그렇게 된 것”이라며 “외국인 보유 주식을 다시 정부가 매입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든다”며 나 몰라라 하고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전기와 가스를 공급하는 공기업의 외국인 지분비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정상적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사회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이렇게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주요 공기업의 외국인 보유 주식을 다시 정부가 매입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이광효 기자 leekhy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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