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달콤한 나의 도시' 저자 인터뷰

'달콤한 나의 도시'의 저자 정이현 / 이상운 사진기자 photo98@pcline.co.kr

“서울은 고향이지만 떠나고 싶은 곳이고 그러나 늘 못 벗어나는 곳이며 그래서 그리운 곳이다”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로 국내 유명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입성해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는 소설가 정이현(34)씨의 '달콤한 서울론'이다. 지난 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모 갤러리 카페. 가을 깊은 그곳 창가에 꽤 정교한 망까지 갖춘 허브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긴 정씨의 모습은 '38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는 소설 속 '오은수'와는 제법 거리가 있음을 직감케 했다. 1인칭 화자를 택해서일까. 성별과 연령대가 닮아서일까. 서울이라는 이 공간에 언제 어떻게 마주칠 지모를 동시대 인물이어서 일까. 주인공 '오은수'와 작가 '정이현'이 꽤 닮은 인물일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했었다. 그 어설픈 확신이 '오은수'와는 다른, 정씨의 자신감 넘치는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잠기는 순간이었다. '오은수'를 빚고 생기를 불어 넣은 '작가 정이현'이 거기에 있었다.

▲ 지난 달 30일 대학로 SH클럽에서 열린 제7회 문학나눔콘서트 '소설읽기의 방식'에 참여해 독자들 앞에 섰다. 얼마 전 '와우북페스티벌' 때도 문태준 시인과 함께 낭독회를 가진 바 있다. 최근 이같은 행보들을 보면 장 밖의 독자들과의 소통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저께 문학나눔콘서트에 참여했다. 정말 그렇게 많이 오실 줄 몰라 놀라웠고 호응도 좋았다. 작가들은 본인 소설을 낭독하고 이와 함께 연극이나 무용 등 다른 장르들과 접목해서 만나는 장이었다. 낭독회를 가지면 즉각적인 반응이 온다. 소설은 자기가 읽는 내밀한 행위로만 생각하는데 읽어 주면서 그 느낌을 공유하는 게 좋았다.

▲ 특히 신문연재의 경우 즉각적인 반응의 전형일 수 있겠다.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조선일보 연재작품이었다. 본인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했는데 어땠나.
-그간 독자들을 멀고 추상적인 존재로만 생각해 왔는데, 연재하고 부대끼면서 독자들이 이렇게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기존에는 문학전공이나 문학을 찾아 읽는 분들만 생각했는데 신문연재의 경우 전혀 다른 층의 독자들이 공존했다. 그리고 그분들도 미학에 대한 욕구가 굉장한데 접근법에 미숙한 분이 많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문학콘서트나 낭독회 등 다양하게 만나는 게 좋은 것 같다.

도시의 방이란 무엇일까. 시골마을에서는 이웃에 가려면 언덕을 넘고 개울을 건너야 한다. 그러나 도시의 방과 방 사이, 집과 집 사이는 다닥다닥 붙어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불편하다며 늘 투덜거리곤 한다. 타인과 가까이 있어 더 외로운 느낌을 아느냐고 강변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언제나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줄 나만의 사람, 여기 내가 있음을 알아봐주고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갈구한다. 사랑은 종종 그렇게 시작된다. 그가 내 곁에 온 순간 새로운 고독이 시작되는 그 지독한 아이러니도 모르고서 말이다.

(3부 '위태로운 거리' 중)

등은 연기(演技)하지 않는다. 타인의 등을 본다는 행위는 눈을 마주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건 어쩌면 그 사람 내면의 더욱 깊은 곳을 훔쳐보는 순간이다. 이 순간, 나는 이 남자의 무엇을 훔쳐볼 수 있을까?

(5부 '연인들의 거리' 중)

▲ 최근 '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이런 가운데 '달콤한 나의 도시'는 소위 '잘 팔리는 책'이다. 평소 독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경계 짓고 있나.
-독자들에게 맞춘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독자 10만명이 읽으면 10만가지 해석이 나온다. 어떤 분은 어떤 부분이 싫다 그러고 어떤 분은 바로 그 부분이 좋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다 각각 개인기 때문에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진다. 독자들에게 영합, 부합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많이 듣고 있고 실제 그렇다. 간결하고 깔끔하며 발랄한 문체다.
-잘 안 읽히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문장에 관련해서 가장 좋은 것은 주제에 맞는 문장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의 경우에도 '오은수'가 만연체로 고백을 하면 굉장히 어색했을 거다. 그래서 화법에도 관심이 많다. 여기 문장들은 내가 쓰지만 1인칭 화자인 '오은수'가 하는 말들이다. 대학을 나오고 사회생활을 하는 미혼의 30대 초반의 여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이런 호흡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썼다.

▲ 이번 소설 속 남자들도 이전 소설에서처럼 특유의 남성성을 거세당한 것처럼 보인다. 반면 여성들은 사회에 잘 적응하며 당찬 편이다. 소설 속 '여성상'과 '남성상'에 대해 평소 염두에 두고 있는 성역할이 있나.
-우리 세대만 해도 또래 남자들을 보면 여성스러운 이들이 많다. 사려 깊고 다정다감하고 요리 좋아하고. 또 여자이지만 남성스러운 부분. 요즘은 이런 게 섞여 있는 시대다. 또 그게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우리가 정말 마초라 부르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들을 보면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신기하면서도 무섭다. 어떻게 사회화 됐을까. 그런 걸 관찰하는 게 흥미롭다. 그리고 그게 문학의 역할인 것 같다.

▲ '오은수'를 가장 허탈하게 한 인물은 '김영수'였다. 그런 김영수조차 가련한 인물로 그려내며 악역이 없다. 소설 속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기본적 생각을 듣고 싶다.
-문학은 사랑도 동정도 아닌 아가페 같은, 단일 문학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인류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가만 보면 사람은 굉장히 안쓰러운 존재다. 구조가 그렇게 만드는 거다. 사람 자체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올라야 한다. 나 같은 경우도 자연인으로 살다가 낭독회 같은 무대에 올라가야 되면 '작가 정이현'으로 확 바꿔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 결말부를 보면 주인공 '오은수'는 처음과 다를 바 없이 다시 제자리다. 그러나 분명 처음의 '오은수'와는 달라져 있을 거다. 그게 독자들이 '오은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기도 할 것이다.
-컸다 자랐다와 같은 수치의 문제는 아닌 거 같다. 성장은 더더욱 아니다. 성장은 그런 문제는 아닌 거 같다. 그렇지만 은수는 여러 가지를 겪었고 앞으로 더 부딪히며 살아낼 거다. 이에 앞서 은수가 좀 더 자기 자신과 친해졌기를 바라고 좀 더 단단해져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 겪을 일들에는 좀 더 덜 상처받고 말 그래도 행복하길 바란다.

이상운 사진기자 photo98@pcline.co.kr
▲ '달콤한 나의 도시'는 결말이 열려 있는 텍스트다. 다수 독자들이 해피엔딩으로 짠, 결말을 내 주지 않아 아쉬워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굉장히 평범한 하루로 끝냈으면 했다. 신문에 오늘까지 실리고 내일은 실리지 않지만 그 괄호 속에 실리지 않음 속에 은수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계속 살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작가가 전지적 시점에서 은수는 이렇게 됐고 저렇게 돼서 행복하다 혹은 불행하다, 이렇게 마무리 짓는 건 작가의 월권 같았다.

▲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늘 서울을 사랑하고 미워한다. 만일 지금 이곳의 무언가를 건드리지 못하고 지난 70년대 이야기만 하고 거기서 그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2006년의 독자가 70년대 이야기로 지금을 다시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이 시대와 이 공간과 같이 갈 수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나도 동시대인이고 변해가니까, 그 사유가 좁아지든 넓어지든 같이 공감하면서 같이 나이 들어가고 싶다.

▲ 다음 집필 계획은.
-내년 상반기 안으로 소설집이 먼저 나올 거다. 문예지 단편 발표작이 꽤 모여 10여편정도 정리만 남겨두고 있다. 그 다음 문예지 연재 장편 준비 중인데, 도시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정이현 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3)가 있다. 이와 함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를 조선일보를 통해 지난 2005년 10월부터 올 4월까지 연재한 바 있다. 이를 묶은 첫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정씨가 문학성 뿐만 아니라 소위 '잘 팔리는' 작가가 되는데 단단히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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