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 시집 실종, 스타마케팅 등 기형적 영업만 활개

정지영 아나운서의 번역이 아닌 대필로 드러난 작품

책이 팔리지 않는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베스트 셀러는 많지만 정작 국내 문인들의 창작 문학작품은 찬밥 신세다.

최근 유명 아나운서 정지영씨의 번역으로 알려졌던 '마시멜로 이야기'가 대필로 드러나면서 장본인 뿐만 아니라 출판가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유명인을 내세운 홍보전략으로서의 대필은 일찌감치 우리 출판계를 잠식하고 있었던 것. 그러다가 정 아나운서 즈음에 와서야 그 배신감은 극에 달하며 양지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공공연했던 출판사의 사재기 관행도 더불어 뭇매를 맞았다. 왜 이런 일들이 출판계에 잇달아 터지는 걸까.

국내 대표 대형 서점인 K문고에 가면 책이 넘쳐난다. 말 그대로 없는 책이 없고, 책 공화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런데 거기에 놓인 소설이 1쇄에 대개 3천권, 시집이 1천권에서 1천500권 밖에 출판되지 않는 현실을 알고 있을까.

2쇄를 찍는 문학책은 지극히 드물며, 특히 시집이 2쇄를 찍는다는 이야기는 정말 유명 작가 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별나라 이야기에 가깝다. 안 팔려도 너무 안 팔린다는 게 요즘 출판가의 시름 깊은 한탄이다.

1쇄 1천권을 찍은 시집을 예로 들면 권당 1만원이나 쳐 준다 해도 합이 1천만원이다. 거기에 작가 인세가 대개 10%선이다. 작가는 1백만원 겨우 가져 간다는 이야기다. 고로 전업작가는 꿈 같은 이야기이며, 내 입에 밥을 넣어 줄 수 있는 직업을 따로 가져야 한다.

시심을 경제논리로 이야기 해야 되는 건 슬픈 현실이지만, 내게 밥을 먹여 주지 않는 글쓰기에 대한 의욕 저하는 결국 문학의 질과 양 측면에서 효용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그럼 해당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어떤가.

책이 나온 걸 알리려면 필수적으로 홍보를 해야 한다. 광고비가 만만찮게 추가되는 것. 1000권이 다 팔린다고 가정했을 때조차 빚지기 않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유명 작가가 아닌 신인의 경우는 제 아무리 작품 퀄리티가 높아도 선뜻 손잡고 출판하자고 나설 수 없는 게 출판사의 속사정이다.

그러다보니 하나의 기업으로 경제논리 위에 서 있는 출판사의 살아남기 위한 편법이 음성적으로 판쳐 왔으며, 이를 그 누구도 쉽사리 제재 못해 온게 사실. 그러는 사이 문인들은 여기저기 치여 형편없는 모양새로 전락했다.

기자가 만난 유명 소설가 K씨는 십여년 전에 고려원에서 냈던 책을 최근 해냄출판사에서 재출간했다. 해당 책이 인기리에 절판돼서가 아니라 빛조차 보지 못한 채 거의 매장당하다시피 했기 때문. 사유인 즉, 지금은 망한 고려원에서 이 소설가에게 10% 인세를 주기로 계약하고 책을 찍은 후에서야 10% 인세에서 광고비를 충당해야 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요구를 한 것.

이미 책은 나왔는데 인세를 나누지 않으면 홍보를 해주지 않겠다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이럴 경우 작가가 판권을 회수하고 다른 출판사를 알아볼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법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적인 손해 계산에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

독자가 드문 시집과 이를 쓴 시인의 경우는 소설 출판 환경보다 한층 심각하다. 특히 젊은 시인들의 시집을 구경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형식의 파괴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시의 특성상 소설보다 한층 젊은 피들이 문단 내 계속 수혈되어야 하지만, 이 뜨거운 피는 자본의 힘에 무참히 밟히고 만다.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한 젊은 시인 K씨도 신춘문예를 통해 정신등단 절차를 거쳤지만 첫 시집 출간을 기다리는 동안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이름을 감춘 채 대필, 야설 작가 등을 겸해 왔다고 고백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시집 메이저 출판사인 M출판사의 경우, 시집 출판이 확정돼도 실제 출간되기 까지는 최소 이삼년은 기본이란다. 문제는 아주 유명하거나 연륜이 있는 작가들이 중간에 책을 내달라고 청하면, 신인들은 작품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또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 속으로 밀려난다는 것. 그러다보면 신인의 경우 시집 한 권 분량을 맡긴 채 7년 가까이 기다리는 경우도 적잖단다.

젊은 시인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하소연 하는 것이 "시 쓰는 것으로 코너에 몰려야 되는데 출판이라는 구조 속에서 코너로 몰리다 보니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것.

이처럼 정식 등단 이후에도 구조적으로 음지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젊은 시인들은 "출판사들이 스타화할 수 있는 작가들만을 내세워 특히 소설가들 위주의 연예기획사처럼 돼 간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스타마케팅에 적합한 틀은 시집보단 소설이며 시인보단 소설가이기 때문. 지하철 안에서도 1시간 뚝딱 읽고 책 읽었다는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짜집기식 책이 팔리는 시대에, 시집처럼 한번 더 해석하고 알레고리 구조를 파악하고 상징구조를 헤매야 어렴풋 보이는 텍스트가 인기 있을 리 만무하다. 더욱이 소설의 스토리구조는 영화, 연극 등의 메타 장르로 활용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

동명 영화의 원전으로 재조명 받으며 크게 인기를 모은 작품

최근 베스트셀러란을 당당히 누비고 있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은 영화의 흥행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누린 대표적인 케이스이며, 그의 이름 자체가 스타화 돼 있다.

이와 함께 신경숙, 은희경 등의 유명 소설가들이 이따금 혹평에 시달리는 것 또한 문학출판사가 가진 스타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거론 자체가 관심갖고 해당 책을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연예인 x파일'이 그랬듯 일정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오히려 해당 작가의 이미지만 더 강하게 각인시켜 주는 것. 가장 무서운 건 무관심이라는 말이 딱이다.

'소설가 이상'으로 스펙트럼의 폭을 좁힌 '이상문학상'
이와 함께 손꼽히는 문학계의 큰 상인 '이상문학상'(문학사상사)의 경우를 살펴 보자. 이상은 1천편 이상의 시를 쓴 시인이자 6편의 소설을 쓴 소설가다. 이같은 그의 문학 스펙트럼을 보면, 현재 '이상문학상'이 소설만의 축제장처럼 굳어진 것에는 상당한 문제가 내재해 있다. 해당 주최 출판사가 이상을 소설가로만 그 영역을 좁혀 놓은 데에는, 이 역시 자본주의 시장에 나왔을 때 시로서는 승부걸기 힘들단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약 1만부를 찍는 '이상문학상' 입장에서는 자사의 손익분기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이는 '이상문학상'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77년부터 이어 온 '오늘의 작가상' 또한 시집과 소설이 의 좋게 수상작 자리를 번갈아 오다가 최근 10년 전부 소설로 바뀌었다. 뛰어난 시가 있어도 책으로 만들면 돈이 안되기 때문. 전형적인 시문학상으로 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발표되던 '김수영 문학상'의 처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신인상처럼 공모로 바뀌면서 예전 문학상의 권위는 크게 실추됐다.

앞서 말한 출판가의 대필이나 사재기가 관행으로 굳은 것 또한 '안 팔리는' 문학출판계의 총체적 현실과 맞닿아 있다. 시집의 경우는 이같은 '대필'이나 '사재기' 등의 시도도 이뤄지지 않을 만큼, 시장 가능성에서 최하점을 도맡고 있다. 다름 아닌 순수문학 소비자의 부재다.

좀체 문학을 위해 지갑을 열지 않는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총족시키기 위해 갈수록 자극적이고 이색적이며 엽기적인 문구를 내세울 수 있는 책과 문인만이 팔린다. 유명 저자더라, 얼마나 팔렸더라, 영화로 나왔다더라, 얼마나 야하더라 등에 정신이 팔려 정작 어느 책이 얼만큼의 퀄리티를 갖고 있다더라는 뒷전이다. 고급 예술 장르로 대접받던 문학도 가십에 지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당장 내 손에 쉽게 쥐어지는 책들의 질은 떨어지기 마련. 읽을 만한 책이 없다는 불평불만은 고스란히 독자가 짊어져야 할 업보의 굴레다.

출판계의 사정이 이만하면 정부가 개입해야 되는 건 당연지사. 다행히 노무현 정권 들어와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통한 우수도서 지원사업인 '문학나눔사업'이 이뤄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2004년 시행된 이 사업은 '문예진흥기금'에서 소액 규모로 시작됐다가, 2005년부터 복권기금으로 운용되면서 올해 예산 규모는 52억이며 이 중 40여억원이 우수도서 출판지원 사업에 쓰이고 있다. 매 계절 분기별로 소설, 시, 희곡, 평론, 아동문학 등 70종을 선정해 해당 도서를 정부가 구입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소설의 경우 20종, 시집의 경우 25종 정도가 선정되며, 각 1종마다 2천권 정도씩 구매해 준다.

출판사와 소설가 모두 한결 마음의 짐을 덜고 출발선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이다. .문학나눔사업국의 관계자에 의하면 신예작가의 첫 작품집의 경우 전체 선정 작품 중 10%이상을 유지하도록 내뷰 규정으로 두고 있다고 했다. 실제 이같은 규정이 아니어도 신예작가들의 첫 작품집 수가 많으므로 전체 선정 작품의 20% 이상을 꾸준히 상회하고 있다고 부언했다. 문학나눔사업단 추진위원회의 우수도서 선정위원인 한 소설가는 "이 사업이 창작 일선에 있는 작가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밝히면서 "선정도서가 제한돼 있긴 하지만 이 정도의 문턱은 있어야 경쟁심리도 일 것이고 멀리 봤을 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사업의 취지를 고려할 때 가장 소외된 구조에 놓인 신예작가 작품집 선정은 한층 폭넓게 진행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사업이 '문예진흥기금'이 아닌 '복권기금'에서 집행되고 있는 것은 아쉬움을 남길 수 밖에 없다. 해당 사업국의 관계자는 "2007년 집행 예산이 올해 대비 10% 적게 배정됐다"며 "일단 표면적으로 로또 복권 판매량이 전년에 비해 감소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업이 지속적으로 한국 문단과 출판계에 기여하려면 불안정한 수급 구조의 복권기금에서 집행되는 일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불과 삼년을 넘기지 못한 채 '로또의 확률'에 기댄 오락가락하는 규모의 사업은 문제가 있는 것.

역시 독자의 몫이 가장 크다. 정부가 언제까지고 국민의 세금으로 문학의 명맥을 위해 국민 대신 책을 사줘야 하는 기형적인 지원 형태를 유지할 순 없는 법. 한때 모 방송사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란 구호가 기아 상태로 굶주려 기형이 된 오늘의 출판계에 더할 나위 없이 절실하다.

그 중에서도 '시, 시, 시 시를 읽읍시다'라고 대신 외쳐 주고 싶을 만큼 시 독자를 기다리는 '소박떼기' 한국 시단의 출판계 현실이 가장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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