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연대활동가 정은희


정은희(33) 문화연대 활동가

최근 개봉한 캔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면 '정부'와 '국민'의 관계 혹은 '권력'과 '주체'의 관계를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 여럿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아일랜드 독립군인 IRA가 세운 독립법정의 첫 번째 재판에 관한 이야기다.

민중을 위한 법정에 선 법관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상당한 빚을 진 한 노모의 부채를 탕감한다는 이야긴데, 결국 독립국가를 자임하는 정부에 해당하는 IRA의 주동자들은 고리대금업자의 편을 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전쟁에 필요한 무기대금을 댈 지주를 감옥에 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국민을 위한 정부가 결국 국민을 등지는 사례는 비단 역사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는 아닐 게다. 최근 문화의집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그렇다.

문화의집은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매체' 접근 중심의 문화시설이 아닌 동아리, 예술체험 워크샵, 지역의 문화지형도 알기 워크숍 등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생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공공문화시설로서 보다 체험적인 문화향유를 갈망하는, 동시대를 가로지르는 문화적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2005년에는 이용률이 53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따라서 문화의집에 대한 공공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최근 정부는 아예 등을 돌려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의집에 대한 지원 정책은 김영삼정부로 거슬러올라간다.

1996년 김영삼정부 당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문화복지정책 수립' 정책을 통해 설립되기 시작했고 이후 김대중정부 때 '새문화관광정책'에서 5백개소 조성 및 운영활성화 지원 계획이, 노무현정부 또한 발족 초기 '새예술정책'에서 2011까지 5백개소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계속적인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정부의 이런 방침 하에 기간 문화의집이 확장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화의집 운영 활성화를 약속하였으나 지원은 생색내기 차원에 그쳐 전반적인 운영 활성화는 문화의집 운영 당사자 몫으로 남았던 한편, 2004년에는 문화의집 조성사업을 지방사업으로 이양하여 국비 지원을 전면 철회한 한편, 복권기금으로 지원되던 프로그램 운영비 또한 2007년 예산 전액을 삭감시키고 말은 것이다.

이렇게 문화의집이 유기된 정책적 배경은 국가균형발전계획에 의한 지방이양에 있다. 그러나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말은 좋지만 실제 이를 어떻게 추동하느냐가 문제인데, 이양사업에는 문화의집, 도서관 도서구입비 같은 문화복지 사업은 물론 전국 문화기반시설 평가사업 등 중앙부처가 하지 않으면 요원한 사업까지 포함돼 사실상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노무현정부 들어 문화관광부는 도서관정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박물관정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넘겼는데, 도서관이나 박물관은 주민이 문화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적인 공공시설들이고, 문화프로그램이나 인력 등 유기적인 지원 정책이 설계 운영되어야 하는 한편, 여성,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타 부처가 소관하는 정책과 통합적인 행정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별 국가기관에 이양하여 이 또한 사실상 포기한 것과 다름이 없다.

자본을 위한 한미FTA, 기업도시, 관광레저도시에 올인하고 정작 지역주민들이 갈급해하는 문화복지를 외면하는 정부에 과연 세금을 계속 내야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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