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야구인, 문화재청 ..3인 3색 반대 목소리 높여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거기에 대규모 공원과 쇼핑센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동대문운동장내 풍물시장 상인들과 체육계, 문화재청 등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어 서울시의 계획이 난항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서울시는 금년 말까지 동대문운동장의 공원화 및 디자인 컴플렉스 건립사업에 대한 다양한 시민 아이디어를 접수 선정해 2007년 1월 선정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본계획안을 마련하고 2007년 11월 말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03년 청계천에서 쫓겨나 동대문운동장내 풍물시장으로 이전한 기존의 청계천 상인들을 비롯 체육계와 문화재청 등에서 생존권과 운동장의 문화적 보존가치를 내세워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 갈 곳 잃은 청계천 노점상

지난 2003년 이명박 전 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과정에서 청계천 일대의 노점상인들을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밀어 넣으며 “세계적 관광명소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동대문 풍물시장이라는 그럴듯한 간판도 달아주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햇볕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운동장내 풍물시장은 흉물스럽게 변해 세계적 관광명소는 고사하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다.

풍물시장에서 낡은 옷가지를 팔고 있는 이모씨(56. 남)는 “청계천에서 쫓아낼 때는 잘 먹고 살 수 있게 해 줄 것처럼 구슬리더니 고작 3년 만에 대책도 없이 나가라고 하니 살길이 막막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또 골동품 등을 팔고 있는 박모씨(63. 남)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우리 같은 사람들을 대책도 없이 나가라니 곧 죽으라는 소리와 뭐가 다르냐” 반문했다.

뿐만아니라 동대문운동장에서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안모씨(49. 남)는 “안에 있는 사람들(풍물시장 상인)도 걱정이지만 지금껏 잘 운영해오던 매장을 떠나야 한다니 우리도 걱정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축구장 안 풍물시장에서 영업중인 청계천 노점상인들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또한 전국노점상총연합은 “서울시는 이 전 시장의 약속을 이행하라”며 주장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이종범 선수협회장 “야구의 역사와 미래위해 철거 결사 반대”

프로야구선수협회는 4일 정기총회에서 서울시의 동대문구장 철거 계획에 결사반대 의견을 밝혔다.

선수협회는 이 자리에서 “서울시가 야구인들과의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동대문구장의 철거를 진행하는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동대문구장을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스포츠마저 개발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오세훈 시장의 개발주의를 규탄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종범 선수협회장은 “프로야구는 어차피 잠실구장에서 열리기 때문에 상관없을 수도 있지만 한국 야구의 역사와 미래를 위해 철거를 적극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전국 초·중·고 아마추어야구감독협회와 전국 대학야구 감독자협의회도 “동대문구장은 한국 야구사 최초로 홈런이 터진 장소이고, 아마추어야구와 프로야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등록 추진

'근대문화유산'이란 개화기 이후 지어진 건축물 가운데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는 것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는 제도이다.

문화재청 소속 문화재위원 3명은 지난 11월 현지조사에 나서 “동대문운동장은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으므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하며 동대문운동장의 철거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1925년 일제에 의해 세워진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은 식민지시대부터 해방이후 정치적 혼란기까지 축구와 야구를 통해 울분을 달래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오다, 84년 잠실종합운동장이 건립되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이 바뀌고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동대문 운동장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가장 큰 체육행사였던 경평축구가 열렸었고, 비운의 야구천재 이영민 선수가 최초의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그는 54년 아들의 친구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또한 해방에서 분단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대규모 군중이 모여드는 집회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1976년 말레이시아와의 박스컵 개막전에서는 경기종료 7분전 4:1로 뒤진 상황에 차범근이 출전해 내리 3골을 넣으며 국민적 영웅이 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2007년 11월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라며 “전체를 철거하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강경한 입장이다. 만약 철거가 실제로 추진되면 노점상들과 체육인, 문화재청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