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따로 집행따로, 정책 무시하는 공무원들

지식경제부 장관이 내 놓은 정책을 담당 공무원들이 엉뚱한 규정이나 이유를 들어 정책 적용을 회피하고 있다. 뿌리 깊은 전봇대 행정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장관 흠집 내기의 전형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지난해 정보통신부가 해체되고 정보통신산업 진흥 업무가 지식경제부로 이관된 이후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중소 소프트웨어 및 IT 업체의 발전을 위하여 소프트웨어분리발주 및 공공소프트웨어 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등을 강화하는 등 의욕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분리발주의 경우 기존 재량 사항이던 SW분리발주 제도를 원칙적으로 의무화 제도로 강화하여 지난 3월 5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공공소프트웨어 사업 대기업 참여 제한의 경우 그동안 매출 8,000억원의 기업과 대기업의 경우 각각 20억원, 10억원 미만의 사업에 대하여 참여를 제한하던 것을 각각 40억원, 20억원으로 상향해 지난 4월부터 시행 중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책이 타 부처의 비협조와 담당 공무원들이 제도적인 허점을 이용하여 동 제도의 시행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일반 사업을 시범사업으로 둔갑시키거나 개별 사업을 하나의 큰 사업을 묶어 대기업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 같은 내용들은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업계의 푸념으로 치부해오던 것이 사실이었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업 참여를 해야 하는 업계로서는 갑인 담당공무원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지가 전문가들과 함께 지식경제부가 내 놓은 'RFID 기반 귀금속․보석 유통정보관리시스템 구축' 사업계획서 및 다른 사업계획서를 비교 분석해 본 결과 이 같은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RFID 기반 귀금속․보석 유통정보관리시스템 구축' 사업계획서는 1차 시범사업을 바탕으로 유통거래 전 과정의 프로세스 체계 구축을 검증하기 위해 2009년에 2차 시범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에 대기업의 참여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소프트웨어 분리발주 가이드라인(정보통신부, '07.5.1)에 따라 분리발주 대상 선정 기준(사업규모 10억원 이상인 사업에서 사용되는 5천만원 이상의 S/W 등)에 부합되는 소프트웨어가 없다는 점만을 들어 분리발주가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잘 못된 점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우선 소프트웨어 분리발주의 경우 규정 적용부터가 잘 못되었다는 것이다. 국가를당사자로하는계약에관한법률」시행규칙 제84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담기관인 한국전자거래진흥원 내부 지침인 u-IT신기술 검증확산사업 관리지침 16조에 언급한 기준조차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법규정을 지키지 않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 과거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하여 분리발주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가를당사자로하는계약에관한법률」시행규칙 제84조에 따르면 분리발주가 어려울 경우 해당 소프트웨어 제품이 기존 정보시스템이나 새롭게 구축하는 정보시스템과 통합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한 비용상승이 초래되는 경우, 소프트웨어 제품을 직접 공급하게 되면 해당 사업이 사업기간 내에 완성될 수 없을 정도로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가 있는 경우, 분리발주로 인한 행정업무 증가 외에 소프트웨어 제품을 직접 구매하여 공급하는 것이 현저하게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등의 특별한 사유가 있어 분리발주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사유를 사업계획서 및 입찰공고문에 명시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RFID 기반 귀금속․보석 유통정보관리시스템 구축' 사업계획서에는 이 같은 명시 없이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을 적용하여 5천만원 이상에 해당되는 소프트웨어가 없어 분리발주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분리 발주한 또 다른 경우 분리발주 규모가 2천여만원인 사업이 있는 점에 비추어 5천여만원에 해당되는 소프트웨어가 없어 분리발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규정 적용을 잘 못하고 있는 증거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관련 규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지식경제부와 전자거래진흥원이 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분리 발주를 하지 않기 위해 꼼수를 썼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의 추진에 있어서도 사업계획서에 유통거래 전 과정의 프로세스 체계 구축을 검증하기 위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업계획서의 내용을 살펴 본 결과 사업의 전반적인 내용이 이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이다.

또한 프로세스 체계 구축은 이미 2007년도 정보전략계획(ISP)수립과 1차년도 사업에 이미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사업에 대기업을 참여시키기 위해 억지로 이유를 만든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장관의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할 지식경제부 담당 공무원들이 장관의 정책에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난 3월 청와대가 이러한 폐단을 방지할 대책을 지식경제부에 지시한 것도 이들 공무원들이 나서서 무시하고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더 나아가 뿌리 깊은 전봇대 행정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결과로 비춰지고 있는 상황이다.

투데이코리아 김태일 기자 teri@todayl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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