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고른 상품은 전시용, 배송 땐 다른 물건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 등에 있어서는 설 명절이 연중 가장 큰 대목중 하나다. 명절 선물이나 제수용품들은 가격이 좀 비싸더라고 포장이나 배송 등 상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이용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내 일부 백화점과 대형마트들 가운데 소비자가 직접 고른 품질 좋은 상품들은 전시용으로 남겨두고 배송시 다른 상품을 보내는 곳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 알까지 밴 특등품이라더니…

설 연휴를 앞둔 얼마 전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 모씨(31. 남)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과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의 집으로 시내 모 백화점에서 30만원 상당의 최고급 굴비 두 세트를 구입해 백화점에서 각각 배송했다.

그동안은 명절이면 상품권이나 약간의 현금 등으로 대신해 왔지만 올해는 3개월 뒤 결혼을 앞두고 있어 큰 맘 먹고 거금을 투자해 양가에 선물을 한 것이다.

굴비세트를 구입하던 날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는 설 연휴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평소보다 많이 북적대고 있었다. 곳곳에 과일, 갈비, 사골, 굴비 세트 등 셀 수 없이 많은 선물세트들이 따로 마련된 코너에 진열돼 있었다. 선물세트들은 이것저것 할 것 없이 하나같이 화려한 포장에 최고급 특등품이라는 수식어들이 붙어있었다.

김씨는 함께 간 약혼녀와 함께 수많은 선물세트 가운데 갈비와 굴비세트를 놓고 고민하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아직도 바다의 향기를 뿜어대고 있는 굴비세트를 보고 마음을 굳혔다. 김씨의 결심에는 알까지 벤 특등품이라는 매장직원의 조언도 크게 한 몫 했다. 김씨는 서둘러 계산을 마치고 매장 직원을 통해 택배로 양가에 굴비세트를 배송했다.

며칠 뒤 여자친구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된 김씨,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굴비가 참 좋다고 연신 고맙다며 저녁식사에 김씨가 선물한 굴비를 내놓았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내놓은 굴비는 김씨가 백화점에서 고른 굴비와는 좀 달라보였다. 크기도 좀 작아보였을 뿐만 아니라 매장직원이 침이 마르게 자랑했던 알도 온데간데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김씨는 자신이 선물한 굴비세트를 확인해 보았다. 당초 김씨가 고른 굴비세트는 10마리 모두가 통통하게 살이올라 알까지 벤 특등품이었지만 여자친구의 집으로 배송된 굴비세트는 10마리중 2마리가 알도 없을뿐더러 전체적으로 크기도 좀 작아보였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에 김씨는 백화점 수산물 판매점으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지만 백화점 측에서는 “관계자가 자리에 없어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통화한 수산물 판매점 관계자는 “설 연휴 기간이라 일손이 부족해 손님이 직접 물건을 가지고 가지 않는 한 배송시 일일이 손님이 고른 물건을 확인 후 보내 주기가 힘들다”며 “손님이 고른 물건이 아니더라도 똑같은 세트임에는 틀림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 뿐이었다.

본지가 취재한 바에 의하면 명절 대목이면 김씨의 경우처럼 소비자가 고른 물건이 아닌 같은 종류의 다른 상품을 고의로 배송하는 일들이 서울 시내 백화점 및 대형 할인마트 등에서 즐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같은 등급 다른 물건

같은 특등품 상품이더라도 명절 대목 손님을 끌기위한 전시용 상품은 따로 있다. 소비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상품을 고르더라도 매장에서 배송할 때 그 상품은 다시 진열대로 돌려보내고 대신 다른 상품을 배송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변칙 판매행위는 주로 청과물, 수산물, 축산물 선물세트 등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고가의 과일이나 옥돔, 굴비, 쇠고기 등은 품질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갈수록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하지만 사실상 소비자가 눈으로 상품의 등급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수산물 전문가는 “굴비 선물세트의 경우 시중 백화점에서 10만원대 초반에서부터 40만원대 중반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나와 있지만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소비자들이 직접 30만원대 A++등급의 상품과 40만원대 A+++등급의 상품을 구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해 추석연휴 동안 서울의 모 백화점에서 굴비와 옥돔 선물세트를 포장해 배송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대학생 최 모씨(25. 남)는 “질이 좋은 전시용 상품의 배송주문이 들어오면 나중에 그 보다 한 등급 떨어지는 상품으로 다시 포장해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동네마트도 아닌 대형 백화점이 이런 식으로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다는데 대해 아르바이트 이전에 한명의 소비자로써 기분이 언잖았다”며 아르바이트가 끝나고는 주위사람들에게도 그 백화점 이용을 자제시켰다”고 전했다.

지난 해 까지 다른 백화점에서 식료품점 매니저로 일했다는 이 모씨(33. 여)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웬만큼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명절 대목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등급의 상품이라도 약간씩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좋은 물건은 한정돼 있어 같은 등급 중에서도 좋은 물건을 뽑아 전시해야만 짧은 명절 연휴동안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백화점에서도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학생 최씨가 지난해 아르바이트로 있었다는 백화점에 전화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백화점 관계자는 처음 “그런 사실은 절대 없다”고 부인하다 나중에는 “짧은 시간동안 부족한 일손으로 일일이 수많은 고객들의 상품을 하나씩 다 챙길 수는 없다”며 “명절 연휴 때는 많이 바쁘기 때문에 간혹 고객의 상품이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똑같은 등급의 똑같은 제품”이라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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