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대가 있었다. 그만큼 문인이 되는 것은 어려웠고 등단의 기회도 좁았다. 재수는 물론 삼·사수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만큼 '등단'은 문학에 '뜻'있는 자들의 쓰라린 노력에 대한 '찬사'였다.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간 소수의 문인들로 채워진 한국 문학계는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작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문인의 '당연한' 의무였다.

시대가 변했다. 지금 우리 주변은 문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작가는 아무나 될 수 없다'는 말은 옛 이야기가 돼 버렸다. 그럼과 동시에 그들은 '이 시대의 대변인'의 역할을 포기했다. 일기장에나 쓸 법한 낙서로 '베스트셀러' 작가 명성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됐다.

문인이 많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만큼 매력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또한, 문인에 대한 '특별 의식'이 사라짐으로써 문학이 '고급' 향유물에서 '일상'으로 내려와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문인들의 범람으로 문학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 '무늬만 문인'들과 그들을 '만드는' 문학상들은 한국 문학에 칼을 겨누고 있다.

▲ 문학상 범람‥ 문학상은 문인 배출 기계로 전락해

한국 문학의 폐단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각종 단체에서 문인 추천과 신인상을 남발하기 때문. 더 이상 문예지와 신춘문예는 '실력'있는 문인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 십 개씩 문예지가 생겨나는 지금, 등단의 '명예'는 빛을 바랜지 오래다.

이 같은 사태는 '넘쳐나는' 문예지의 영향이 크다. 문예지를 만들 수준이 안 되는 사람들이 문학잡지를 내고 있어 문학과 등단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급증하고 있는 문예지가 문인 등단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문학 평론가 유임하 씨는 이 같은 동향에 대해 “지방 문예지 중심으로 이루어진 토착화가 '문제되는 등단'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등록돼있지 않은 지방 문예지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 문예지에서 많게는 분기별로, 적게는 한 해씩 문인을 '찍어내고' 있다.

지방 문예지에서 나오는 문인들은 대부분 주부들로 알려졌다. 문학계에서 이들은 소위 '장미 부대'로 불린다. 문학에 대한 허세와 동경심으로 문단에 진출했다는 것이 그 이유. 이들에 대한 비난 여론의 대부분은 문인으로서의 '자질'문제다. 문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문학계에 부는 '줄서기' 바람

문학계에도 '줄서기' 바람이 불고 있다. 지방 문예지는 '인맥'을 가장 중요시한다. 출판업 관계자는 “실력만으로 문인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어떤 '줄'을 섰느냐가 문인이 되는데 강한 영향력을 행사 한다”고 전했다. 문인은 단순히 글을 잘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인맥관리'에 능통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것. 이렇게 '인맥'으로 문인을 뽑다 보니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문인으로 발탁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단 지방 문예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와 중앙 문예지의 문학상 또한 이 같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국내에서 역사와 명성에서 손에 꼽히는 어느 문예지는 최근 내부 수상자를 내정한 후 심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대해 문학계에서는 “그것은 문학계의 공공연한 비밀” 이라며 함축했다.

이 같은 줄서기는 심사위원들에게도 적용된다. 신춘문예인 경우 심사위원이 중복 심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몇 년씩 같은 심사위원이 심사를 담당하기도 한다. 이런 허술한 관리 속에서 소위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문인 등단은 이제 '상품', 장사치들이 판친다

어드북스 남명우 대표는 “현재 문예지들의 99%가 장사를 하고 있다”며, “잡지에 글을 실어줄 때 돈을 요구하고, 해당 문예지에 등단한 신인에게 정기 구독을 요구하는 잡지사가 대부분이다”고 밝혔다.

문학 평론가 유임하 씨는 이와 관련해 “지방 잡지인 경우 신인상에게 잡지를 강매하는 경우가 많다. 신인상으로 뽑혀도 상금이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부지만, 집안 식구들에게 상을 돌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문학계에서는 이 같은 일은 이미 '일반화'돼 있다. '문학'을 사고파는 일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문학이 상품화가 되고 장사의 일부로 받아들여진 데는 출판업계의 불황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문예지는 소위 '잘 팔리는 책'이 아니다. 때문에 광고가 들어오지 않고 '밥벌이'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출판계는 “문학상이 많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고급문화'를 자청하는 그들의 행동이 문학의 질을 떨어뜨리고 문학을 상업으로 보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지방 자치와 결탁을 해서 '장사'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인 지금, 그들의 '투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길 잃은 문학계, 스스로 일어서라

문학상이 넘치고 문인들이 길을 잃었다. 그리고 한국 문학이 위기에 빠졌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문학 스스로가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예지 '문예지평'은 3회 추천제를 도입하는 등 등단 기준을 엄격히 해 화제가 됐다. '문예지평'을 발간하는 어드북스의 남명우 대표는 “이 같은 등단 규정은 각종 문학지들이 등단을 남발해 문학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등단 작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작가라면 이 정도는 써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도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인다운 문인을 배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문예지평'의 입장은 지금 한국 문학이 빠진 '유혹'과 거리가 멀다. '돈'의 유혹을 떨치고 '정통성'을 찾는 의지가 돋보이는 것.

이번 한국 문학의 위기는 문학계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오명과 얼룩 뿐이지만, 이것은 한국 문학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경제와 사회가 무너질 위기에서도 살아남았던 '문학'이 아니던가. 지금, 한국 문학의 '지혜'와 '저력'이 절실하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