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뉴질랜드가 주요국 중 처음으로 지난 9일(현지시간) 0시를 기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조처를 해제하면서 코로나19 청정국 1호 국가가 됐다.

39세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여성 총리의 선제적이고 과감한 패기(覇氣)와 ‘감동 정치’를 내세운 ‘위기 대응 리더십’이 빛을 발한 결과라는 게 세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아던 총리의 결단력과 공감 능력, 과학에 대한 존중이 정부의 봉쇄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37세에 집권한 지 2년 반 만에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총리(지지율 60%)로 우뚝선 아던 총리의 탈권위적 소통·공감과 사랑, 진실성 등 ‘따뜻한 리더십’이 그 비결이다.

아던 총리는 지난 2월 28일 코로나 첫 확진자 발생 후 며칠만에 신속 과감하게 국경 빗장을 걸어 잠그고 전국 이동제한령을 내리는 한편 페이스북 생방송을 통해 국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작년 3월 15일 이슬람 사원에서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곧장 ‘테러’로 규정하고, 다음 날 검은색 히잡을 쓰고 유족을 찾아 위로했다. 변화를 이끈 ‘청년 정치인’의 표상(表象)이라 할 만하다.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희망인 청년(靑年)을 위한 청년정치와 청년정책을 표방한 정치권과 행정부의 나팔소리가 요란하다.

정부는 청년을 보호·육성하고 이들이 자립해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청년의 날’ 지정과, 총리를 청년정책조정위원장으로 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청년기본법 시행령 제정(안)'을 지난달 20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입법 예고했다.

이는 지난 2월 4일 제정된 ‘청년기본법’이 8월 5일 시행됨에 따라 법에서 대통령령으로 위임한 사항과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것이다.

이 법안은 2016년 5월 20대 국회 개원 첫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신보라 의원이 당론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한 지 4년 만에 빛을 본 것이다.

또 미래통합당의 홍문표 의원은 23개 부처에 산재해 있는 청년정책을 통합∙일원화하고 ‘청년청(靑年廳)’ 신설을 골자로 한 21대 1호 법안을 상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미래 꿈나무인 청년을 챙기고 보듬기 위한 이같은 움직임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활동이 진정성·실효성 있는 청년 정치와 청년 정책을 담보하느냐 하는 것이다.

청년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단기적, 임시변통용으로 겉포장만 요란하게 갖춘 “진심(眞心)이 담기지 않은 표심(票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건 지금까지 정치권과 행정부가 청년문제를 늘 그런 식으로 다뤄왔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선거철만 되면 무슨 무슨 청년위원회다, 공천에 청년 우선 배려 등을 내세운다.

21대 국회의원을 뽑은 지난 4·15 총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총선 기간 정치권은 온갖 청년 정책들을 쏟아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이색 선거 운동도 동원됐다.

그런데 정작 300명의 의원당선자 연령층을 조사해보니 평균연령은 54.9세. 4년 전 20대 국회의원 보다 0.6세 젊어졌을 뿐이다.

연령별로는 20대 2명(0.7%), 30대 11명(3.7%), 40대 38명(12.7%), 50대 177명(59.0%), 60대 69명(23.0%), 70대 3명(1.0%)의 분포였다.

이토록 국회가 고령자로만 가득찬 건, 한국 정치의 한 축(軸)이 단단히 고장났음을 보여주는 징표(徵標)다.

선진국과 한국의 40세 이하 의원 비율의 격차를 보자. 덴마크 41.3%, 내덜란드 33.3%, 프랑스 23.2%, 싱가포르 21.7%, 독일 17.6%, 일본 8.4%, 미국 6.7%, 한국 0.66%다(출처. 2018년 국제의원연맹·IPU 보고서).

대한민국의 ‘꼰대 정치‘는 30대 초반의 산나 마린 핀란드 여성 총리를 비롯, 오스트리아의 쿠르츠 총리,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 등 변화를 열망하는 30~40대 ‘젊은 정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세계적 흐름과 대조적이다.

대한민국 3대 청년문제로 지목되는 ‘주거·일자리·육아’, 빈곤의 가장 큰 이유는 기성세대가 만든 제도적·사회적 틀이 변화하는 환경과 경제상황을 따라가지 못해서다.

그 배경에는 청년을 위한 정책을 설계하면서 막상 당사자인 청년의 참여를 배제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깔려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정년(停年) 연장’ 논의만 해도 그렇다.

현재 60세인 정년을 65세로 늘리면 기업들이 떠안는 추가 비용이 연간 16조 원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최근 ‘정년 연장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기업인들은 “코로나19로 경영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청년 고용은 유지하면서, 정년 연장 비용 부담까지 지게 될까 우려스럽다”며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1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정년 연장의 비용 추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65세 정년 연장에 따른 60~64세 추가 고용 비용은 도입 5년차부터 15조 900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정년 연장은 ‘청년 고용 감소’ 우려와 늘 연동(連動)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근로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의무화한 뒤 민간기업에서 청년 취업이 줄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3년부터 2019년 민간기업의 고용 자료 분석 결과 직원 수 1000명 이상 규모 기업의 경우, 정년 연장 수혜자 1명 당 고령층 고용은 1명 늘어난 반면 청년 고용은 1명 줄었다.

KDI는 “정년 연장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은 청년 신규 채용을 줄일 수 있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통계청이 10일 발표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가 2693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9만2000명 감소했다.

1년 전보다 실업자가 13만3000명 더 생기면서 역대 최대 127만8000명이 됐다. 실업률도 0.5%포인트 오른 4.5%를 찍었다.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 가장 큰 숫자다.

취업 준비생 등 청년 계층의 체감(體感) 실업률을 나타내는 청년층 확장실업률은 26.3%로 2015년 1월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지난달 20대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3만 4천 명이나 줄었다.

인구 증감을 감안하면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큰 감소다.

그래서 20대 고용률은 2.4%포인트나 떨어져 1982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다. 식당 서빙 알바도 20대 1 경쟁이고, 청년 넷 중 한 명은 사실상 실업상태라는 하소연이다.

특히 기업들은 코로나 감원사태를 맞아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 보다 인턴, 계약직, 아르바이트 청년들을 우선 내보내고 있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구직급여(실업급여)를 새로 신청한 29세 이하 청년은 2만 500명으로 1년 전보다 38% 급증했다.

특히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 2월부터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 중 20대 증가율이 압도적이다.

반면 20대가 주축이 되는 신규 채용시장은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취업사이트 ‘워크넷’에 등록된 기업의 지난달 구인규모는 14만 4000명으로 1년 전보다 4만 3000명이 줄었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로 인한 고용피해가 젊은 층에 집중(기업의 장기간 고용책임 기피)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13일 전국에서 치러진 ‘2020년 지방공무원 지방교육청공무원 8·9급 공개경쟁임용시험’엔 20만명의 ‘공시족(公試族)’ 청년이 몰려 취업난과 안정된 직장선호 추세를 반영했다.

청년 문제의 핵심은 ‘취업’이다. 취업 실패(실업)는 결혼, 출산 등 일련의 이후 과정을 포기하는 ‘N포’로 이어지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청년들에게 미래를 보여줘야 할 이유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국가 재정을 이용해 단발적 임시방편용 청년 고용을 끌어올리는 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며 “시장의 힘으로 민간이 주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밑을 막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청년들이 일자리를 갖기 전에 미래를 준비·설계할 어느 정도 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며 청년 소득보장 정책을 언급했다.

정치권이나 행정부가 청년문제를 오래전부터 장기적·근본적·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단기적·근시안적·즉흥적인 대증요법(對症療法)을 구사해 왔다는 증좌(證左)다.

전문가들은 현재 청년 문제가 위험 수위라고 입을 모은다. “부모세대 보다 가난하고, 부모세대 보다 좋은 직업을 갖기 힘들다”는 청년들의 좌절감과 무기력함은 집단적인 사회 병리현상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 청년의 문제는 오늘,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와 정부, 지자체는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근본부터 재점검하고, 청년들을 위한 고용, 주거, 교육, 문화 정책을 우선적으로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도 살고, 청년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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